로체샤르, 다울라기리 박철암 선생의 사인을 갖게 되다.
경희대 고(故) 박철암 교수는 한국 산악계상 '최초'의 기록을, 그것도 상당히 의미있는 '최초'를 많이 갖고 있다. 그분의 사인본을 갖게 되었다.
2001년 한국티벳연구소에서 "티벳탐험"창간호를 냈다. 박철암 선생이 주도한 모임이다.
창간호 축하 광고에는 대한산악연맹 김상현 회장, 한국산악회 문희성 회장. 한국등산학교 이인저 교장 그리고 한국히말라얀클럽의 고인경 회장이 함께 하고 있다.
모르긴 몰라도 이때가 한국 산악계가 14좌 붐이 일기도 전이고, 그리고 세상과 언론이 알아주진 않았지만, 가장 낭만적인 시대가 아니었을까 싶다. 산악계도 세계의 일원이지만, 남이 알아주어서 꼭 좋을 일은 아니다. 세상과 그리 소통하려 했고, 언론사마다 14좌가 어떠하니, 등로주의가 어떠하니 한껏 띄워주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시라.
뭐 이건 재개발 소식도 없는 퇴락한 동네, 노인네들 옛날 이야기하며 술잔만 호기롭게 건배하면서 슬슬 막차시간만 살피는 동네 같지 않은가. (음, 이 표현 나쁘지 않네)
박철암 선생이 당시 대한산악연맹 전무이자 외대산악부OB인 김병준 선배에게 증정한 사인본이다.김병준 선배도 당시 산악계 행정을 했지만, 77에베레스트와 87 K2 등정으로 한국산악계 최고의 산악인이자, "K2 죽음을 부르는 산"으로 필명을 드높이던 시절이다.
맨오른쪽 한자가 '증정'이 아닌데 무슨 글지인지 모르겠다.
김병준 선생님 혜존, 박철암 ㅁ증.
펜글씨로 유려하게 썼다.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글씨체는 크기가 다 다르다. 일제시대 공부를 한 사람이라서가 아닐까 싶다. 그 시절 엽서 또는 글씨체를 보면 이렇게 글씨체의 크기를 단정하게 하지 않고 있다.
티벳연구소에는 김영도, 손경석, 김장호, 김성진 등의 산악계 지식인들은 함께 하지 않고 있다.
원로중에 내가 알만한 분은 티벳에 관심 많던 곽귀훈 선생이 눈에 띤다.
회원 중에 관심을 끄는 이는 오키 마사토 교수이다. 오키 마사토 교수는 일본산악계의 원로로 대표적인 친한파 일본 산악인이다. 저시절에 이미 박철암 교수와 교류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산악계가 내설악 박철암 기념관(또는 박물관)이 있는 줄 모르던 시절에 이미 오키 교수는 그곳을 찾고 기록을 남기고 있다. 박철암 선생이 돌아가신 마당에 그의 이름도 묻힐 뻔했는데. 하루재클럽에서 그가 쓴 히말라야 관련 책을 곧 출간한다니, 이것도 박철암 선생이 기뻐할 한국산악계와의 인연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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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암 선생은 말년에 "박철암의 산과 탐험"을 세상에 남겼다. 그러나 이 책은 너무 소략해서 아쉽다. 일제시대 행적을 '독립운동'이라는 포맷으로 기술을 하는 바람에 글이 다소 이상해진 느낌이 든다. 청춘의 고민을 굳이 독립운동이라고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리고 산악계 활동이 너무 주관적이고 짧아서 자료로서의 가치가 부족하여 아쉽다.
그는 다른 대학산악부보다 훨씬 이른 시절인 1949년 경희대 산악부를 창설하고, 1962년 다울라기리 2봉 원정에 도전하고, 1963년 한국최초로 탐사보고서은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산군의 탐사기"를 발간했다.그리고 1971년에는 로체샤를 원정대장을 하면서 최초로 8000m를 올랐다.
열악하기 그지 없더 시절 그의 이런 '최초'는 그 이후 허다한 최초라구 주장하는 후배들을 무색하게 한다. 그는 여타 한국산악회 회원들이 조로(早老)하고 글로써, 말로써 원로의 길을 걷는 대신에, 1990년 한중 수교후 티베트 무인구 탐사를 진행한다. 그에 의하면 그리하여 2007년 "세계 최초 무인구 횡단 4,600km"에 성공한다.
"무인구, 티벳트 무인구 대탐험"(경희대 출판국)을 그가 냈다. 자그마치 책값이 10만원에 달해서 산악계에 이 책을 소장하고 있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손경석 선생님께서 '등산 24시"라는 주제로 노스페이스에서 전시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한국산서회 총무로 그 행사에 참가했는데, 박철암 선생이 혼자 적적하게 서성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좀 그래서 가까익 가서 말씀을 드렸다.
- 선생님, 무인구 잘 보았습니다
-- 그래요? 그 책이 어떻던가요?
이말에 나는 순간 당황하여
- 산이 높은 줄만 알았는데, 깊은 줄 새삼 알았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뭐 그리 나쁜 대답은 아니었는데, 선생님께서는 더 말씀이 없어서 아쉬웠던 기억이 항상 새롭다.
그때 그분이 참석하는 줄 알았더라면, 여기에 사인을 받았을텐데 아쉽다.
그리고 오늘 박철암 선생의 사인본을 발견해서 너무 반갑다.
이제 내 일차적인 관심은 이숭녕 박사. 권효섭 선생. 안광옥 선생. 설악산의 이기섭 박사, 변완철 선생, 양두철 선생 등등도 있지만, 김정태 선생 그리고 김장호 교수의 사인본이다. 언젠가 산악인들의 사인본을 모두 모으려는 내 충정(^^)을 갸륵히 여기시는 분들께서 그 기회를, 소중한 인연을 함께 해주리라 믿는다.
나의 이 노력이 계속되어, 나의 순정이 이해될 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