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잊지 못할 김영도의 글투. '서재의 등산가'를 읽으며
김영도 선생님이 새책 "서재의 등산가"를 내셨다. 책의 서평은 내 몫이 아니고, 이 책 발간을 알릴 겸 잡글 하나를 끄적여 본다.
선생님이 좋아하는 글투가 있다. 이번에 알았다.
한여름 덕유산에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바다로 갔는지 아무도 없었다. 무주 구천동을 거쳐 백련사에서 시작하는 오름길은 끝이 없는 듯했다. 가도 가도 전망은 열리지 않았고, 가파른 돌길이 이어져 걷기가 매우 힘들었다. 준비한 물은 동난 지 오래였으며, 확확 달아오르는 지열에 숨이 꽉 막혔다.
덕유산의 여름은 원추리 꽃으로 유명한데, 그 많던 야생화가 한 송이도 눈에 띄지 않았다. 모두 타죽은 모양이었다. 나는 덕유산을 오를 때마다 히말라야를 연상한다. 에베레스트의 아이스폴을 지나 6,000미터 고소부터 로체 사면 밑까지 펼쳐지는 대설원을 걸었을 때 흰 눈의 복사열이 어찌나 심했던지 잊히지 않는다. 한여름 덕유산을 오르며 그 생각이 떠올랐다. (115p)
"잊지 못한다"이다.
당장 책이 옆에 없어 더 찾지는 못했지만, 그는 '잊지 못한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는 현재와 과거를 겹쳐서 본다.
그는 사인도 대충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 맞는 글을 만들어 해준다.
"내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ㅁㅁㅁ에게"라는 사인을 받은 이가 있다. 부럽다.
'잊지 못한다'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잊지 못할' 장면이 있다.
2013년 한국산서회에서 속리산 자락에서 산서 전시회를 하고, 선생님의 강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 행사를 끝내고 돌아오는 버스, 맨 앞자리는 총무인 내가 앉고, 버스 기사 뒷자리에는 김영도 선생님이 앉았다. 모두들 노곤한 산행과 다량의 음주로 인해 잔다고 버스 안은 조용했다. 나도 졸다 깨다 무심코 옆을 보았는데, 그는 졸지 않고 있더라.
무얼 하는가 싶어 물끄러미, 조는 척 하며 보았는데, 책을 몇줄 읽더니 고개 들어 창밖을 보고. 또 고개 숙여 책을 몇줄 읽더니 다시 고개들어 창밖을 보더라. 책을 덮고 생각을 하더니 다시 책을 펴서 몇줄 읽고 창밖을 보는 행위를 반복한다. 짐작으로는 창밖을 보면서 책의 내용을 새기는 것 같았다. 세상이 고요했다.
나는 산서회에 제법 오래되었지만, 김영도 선생님과 의미있는 대화를 나눈 건 몇번 되지 않는다. 일부러 피한 건 아니고, 그의 옆에는 항상 그와 함께 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어 굳이 그 사이에 끼지 않았다고 해야 될 것이다.
그래서 대체로 멀치감치 그를 보게 되는 셈인데, 내가 김영도 하면 떠오르는 몇몇 장면이 있다. 그 중에 이 장면도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 같다. 무언의 가르침이라는 게 아마 그런 걸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