첩첩한 산을 '파도 같다'라는 비유는 어떤가요?
'바다'가 아름다운 고유어이듯. 비슷한 발음의 '파도'도 무심코 고유어라고 생각했었다. 여기에 작은 파문을 일으킨게 있다. 일제 때부터 6,70년대까지 해인사 앞에 있던 홍도 여관이었다. 김동리의 글에도 나오고, 나혜석의 글에도 등장하는데, 홍도여관의 홍도는 '홍도야 우지마라'의 복숭아빛 홍도가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파도의 파(波)는 작은물결을 뜻하는 듯 하다. 그래서 잔물결을 파문(波紋)이라 하고, 남은 잔물결을 여파(餘波)라고 한다. 도(濤)는 큰물결이다. 그래서 '육군 노도부내, 성난물결할 때의 노도(怒濤)가 되는거다. 따라서 해인사앞 홍도여관의 홍도는 단풍(붉을 紅)이 물밀듯이(濤) 밀려와 우리를 압도한다는 뜻이 되겠다.
지리산이 특히 그러한데, 지리산의 멋 중의 하나가 산들이 끝없이 첩첩하다는 것이다. 해질무렵이나 아침 또는 구름이 피어날 때 산의 마루금마다 또렷한데 그 너머 산 사이에는 안개로 인해 흐릿하게 경계를 지으면서 산의 라인이 점점 엷어지는 걸 보다보면, 뭔가 인생의 오의를 알듯도 하다.
산과 바다를 대비하여 보는게 깊이 뿌리박혀 쉽지는 않겠는데, 이런 경치를 '산들이 물밀듯이(濤) 밀려온다'라고 하면 어떨까? 무언가 감동에 압도당할 때 우리는 '물밀듯이'라고 표현한다. 첩첩 산들이 그렇게 밀려오는 것 같기도 하다. 행여 지리산에 오르거든.
산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를 한자로 표현하면 '산도(山濤)가 되겠다. 이런 표현이 있는가 싶어 검색을 해보니, 삼국지의 위나라와 서진시대의 학자이며 죽림칠현 중 한사람 이름이 산도라고 한다. 죽림칠현이 산에 숨어 사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니, 탁월한 이름이 되겠다. 산에 압도되어 있는데, 어찌 저자거리로 나가겠는다.
그리고 일본의 사케가 있다. 일본의 북알프스의 첩첩산들에서 연유한 건가 싶었는데, 아쉽게도 중국의 죽림칠현 시리즈 중의 하나이다.
산도라는 말은 표의문자로서의 한자가 거의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만들기 어려운 신조어일 것이다. 아무튼 지리산에 행여 가시거든, '산이 물밀듯이 밀려온다'를 한번 되내여보시길. 산에 압도되시길....
파도에 밀리듯이. 조금더 이야기해보자. 현재 김영도 선생님이 번역하고 곧 하루재클럽에서 나온다는 '풍설의 비박(風雪のビバーク)'의 주인공, 괴물같은 송도 명(松濤 明)의 송도는 바로 '솔바람이 물밀듯하다'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일본식으로 읽으면 마츠나미 아키라가 된다.
산이 겹겹인 것을 두고 '파도같다'라는표현이 내것이라면 얼마나 좋으랴만...
원래 이 생각을 하게 된건 미타 유키오(三田幸夫)의 '아득한 산들'(山なみはるかに)제목을 보고서이다. 야마나미(山なみ)의 나미(なみ)가 쓰나미 할때의 파도 나미인줄 알아서이다. 검색해보니 산이 줄지어 있음, 산맥, 연산(連山)등을 뜻하는 산병(山並)이다. 아쉽다.
이참에 미타 유키오 선생을 알고 가자. 그는 마키 유코가 1915년 창립한 게이오대학산악부에서 오시마 료키치(大島亮吉) 등과 산악활동을 했다. 1924년 마키 유코 등과 함께 일본 최초의 해외 원정이라고 하는 캐나다로키산맥의 앨버타산(3919m)을 초등반한다. 이후 1953년 제1차 마나슬루원정대장직을 수행한데 이어 일본산악회 회장(1968-1973)을 맡는다. 저서로는 나의 등고행(わが登高行), 아득한 산들(山なみはるかに)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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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다'에 해당하는 말은 중국말 해(海), 영어 씨이(sea), 일본말 우미(うみ)라고 있는다.
김기림이던가. 아니면 정지용이던가.
이 말들 중 '바다'가 물이 가득한 실체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한게. '바다'라는 글자에는 파란 빛도 들어있고, 말을 해보면 '아' 형태로 입이 열리는게 끝없는 공간을 형상하는 듯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