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문제) 왜 백령회는 일제 경찰의 눈에 띠지 않았을까요?
참으로 놀라운 의문 하나:
백령회가 비밀결사인지 왜 일제의 경찰들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요?
심지어 같이 등반했던 일본인 클라이머들도 몰랬대요.
그들은 보안의 '보'도 몰랐는데,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오늘은 그 의문을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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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한놈만 패는'스타일이 아니다.
매일매일 그날의 관심껏 산에 관해 아무거나 블로깅 하고,
이게 모자이크처럼 하나씩 모여서 뭔가 의미를 만들어 나가는 게 좋다.
백령회와 김정태는 사실 내 관심을 떠난지 오래되었다. 그런데 산서회 회보 "산서"에 북한산 백운대 철심의 정체에 관한 글을 투고하면서, 김정태를 다시 호명하고 있다. 일본어를 쪼매 아는 이로서, 일본어를 통해 산악계에 뭐라도 벽돌을 하나라도 올리고자 하는 이로서 '백령회와 김정태'를 한번 더 같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질까 한다.
독립운동단체라는 건 다른 백령회 회원들이 질겁(!)을 하는 터라 논외로 치자.
그들의 활동에 대해 그 악랄한 일본 경찰은 눈치조차 채지 못했을까?
1942년, 1943년 백령회의 활동을 모은 기록집 "백령"이 기록집, 이 내용을 읽은 이는 몇 안된다.
한때 손경석 선생님이 소장하고 있었는데, 그가 느꼈을 곤혹감을 느끼게 된다. 일본어를 조금 더 알면 더 그렇게 될 것이다.
지금 확인 가능한 것은 168페이지로, 오늘날 우리는 그 내용을 볼 수 있다.
어쩌면 영원히 사라졌으면 좋았을 법한데 살아 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건 무엇때문일까?
표지 제목 부분이 덧대여져 있는건 무슨 까닭일까?
쇼와 19년 1월 그러니까 1944년 1월달 스키 연성 합숙 예정표입니다.
연성이라는 말은 지금은 결코 써서는 안되는 극악한 왜색 용어입니다. '전시하 황국신민으로의 연마육성(練馬育成)'이라는 뜻이니까요.
펜글씨 밑에 백령회라고 필체도 다르고 볼펜글씨가 눈에 띱니다. 분명히 후에 덧붙여진게 분명합니다. 이 것 말고는 백령회라는 말이 168페이지에 다시 등장하지 않습니다. 표지에 덧댄 ' 백령'하고 이게 무엇을 말하는 걸까요?
스키 연성의 취지와 내용인데요. 빨간 줄친 부분이 꽤 재미있습니다. 오늘의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입니다. 다만 이 사진파일 한장은 기존에 공개되지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비공개를 원하시면 닫겠습니다.
'대강'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현재 시국하에서 모든 사람들은 총후(-후방에서도 전방과 똑같다..뭐 그런 뜻입니다.)로서 적을 물리쳐야 하고... 미증유의 상황에서 정신대....스키는 그자체로 심신 연성에 좋고, 그자체로 직접무기이고, 전술이고 충분히 첨병이 된다....
스키연성을 하는 이유가 일본제국주의 군대가 표방하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정도로 강하게 나오니 일제가 도저희 의심을 할 수가 없겠어요.
결론은 이겁니다.
그들이 공식적인 친일단체보다 더 친일스럽게 활동하다보니까, 너무 드러내놓고 친일을 표방하는 액션을 취하다보니, 감히 일제 경찰이나 같이 등반했던 일본인 클라이머들도 눈치를 챌 수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이런걸 손자병법에서는 성동격서라고 하는거겠죠. 그들의 전술은 성공했습니다. 지금도 드러나지 않는 까닭이 밝혀지지 않았으니까요.
허나, 이건 이 하나의 페이지로 견강부회한 것에 불과하니,
이걸 제게 너무 심각하게 따지지 마시길 바랍니다.
아참. 그리고 글 도중에 마치 장난(!)처럼 쇼와18년 백령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런 투의 글씨체는 다시 찾아보아야 합니다. 마치 차후에 한장을 삽입한 건 아닌가 의심이 들정도로..
왜 168페이지(물론 글 중 상당수는 '매뉴얼'이기 때문에 중요하지 않지만) 내내 백령회라는 말을 이렇게 아낄까요? 비밀결사라서?
대신에 백령회의 전신이라고 하는 금요회 - 정확히 말하면 금요일회-라는 명칭이 한번 있습니다.
금요회는 제목에서 보다시피 매달 한번씩 금요일 '연구, 조사'를 하는 만남 또는 모임을 말합니다.
김정태 등의 기록에는 매주 한번씩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매달 한번씩이군요.
금요일회라는 명칭은 지금처럼 명확히 1942년 12월부터 1943년까지 나옵니다.
지금 이 글은 그들의 공식기록 담당에 의해 작성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백령회가 '비밀결사'이니, '독립단체'이니 하는 게 아닙니다.
설령 그들이 주장하듯, 금요회에서 백령회로 명칭을 개칭했다고 합시다.
언제부터 '백령회'라고 바꾸었는지는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1970년대 이후 백령회 회원들 중에는 1937년이라고 못박아 증언하는 분도 계시는데,
보다시피 1942년 12월에도 금요일회라는 명칭을(도) 쓰고 있습니다.
백령회가 1937년 전후라는 것은 그들의 흐릿한 증언 말고는 아직까지 '물증'이 없습니다.
과연 1930년대 백령회라는 말이 적혀 있는 물증이 등장할까요? 있을까요?
백령회가 뛰어난 클라이머가 많았다고 하는데, 과연 1930년대 개척등반한게 있을까요?
백령회가 과연 김정태와 엄홍섭이 가입하기 이전에 어떤 활약을 보였을까요?
김정태 없는 백령회의 등반기록이 하나라도 있을까요?
일찍 돌아가신 분들도 있지만, 양두철선생같은 분도 계십니다. 그들 사진자료는 왜 없을까요?
실체는 있다고 해도, 언제부터 '백령회'인지 어떤 자료를 가장 신뢰해야 할까요?
뜻있는 분들이 자료로 준 김정태 선생과 손경석 선생의 '근대등반사'관련 자료들 모음입니다.
여기에는. 김정태 선생의 회고와, 이재수, 양두철, 주흥렬 등 백령회 회원들에 대한 자료들이 있습니다. 한번 그들의 자료를 엑셀로 만들어 볼까요?
어떤 자료가 가장 공신력이 있을까요?
저는 해방후 불과 7년뒤인 1952년 37세 김정태 선생이 라테르네에 어린 고등학생 친구들에게 자상하게 기고한 글을 가장 왜곡과 과장이 없는 자료라고 판단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