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회 2 - 누가 염초봉릿지, 만경대릿지, 오봉릿지를 초등개척했는가
백령회 1937년설을 쓰려니 시간이 부족해서, 백령회 관련 재미있는 기록을 하나 할까 합니다.
북한산 3대 릿지라고 하면 흔히 염초봉 릿지, 만경대 릿지 그리고 숨은벽 릿지라고 합니다.
그 중 염초릿지, 만경대릿지 그리고 도봉산 오봉릿지는 누가 초등, 개척했을까요?
이 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오늘 그 답을 공개합니다.
물론 기승전'백령회'가 아니라 기승전'김정태'^^가 되겠습니다.
지금 이 페이지는 해방후 최초로(추정) 작성된 "록클라이밍 대상 코스와 초등반기록"입니다.
이 자료집은 일제하 백령회와 김정태 연구에서 제일 중요한 초기 자료 중 하나입니다.
출처는 손경석의 "등산백과"(등산학의 출발점이자 도착점), 1962년 초판입니다.
초판이니만큼 지금 이 자료표는 아마 처음 보는 분이 대부분일 겁니다.
그런데 이 기록은 손경석이 마사지한 작품이 아니라, "한국산악회등반위원회"입니다.
이 등반 위원장이 누구일까요? 바로 김정태입니다.
따라서 1962년 당시 김정태가 정리한 일본인 산악인들, 김정태, 백령회의 초등기입니다.
이 자료를 갖고 '1937년 백령회가 창립되었을 리가 없다'라는 주제의 글을 올릴 예정입니다.
C.A.C라는 영어는 기억해야 합니다. 일제하 일본인들이 주축인 조선산악회의 이니셜입니다.
참고로 등산백과 초판의 표지는 이렇습니다.
2012년 초판발행 50주년 기념식- 이런 기념식 아무나 영광을 못누리죠 - 을 했는데, 이 표지를 구하지 못해 아쉬워 했다고 합니다.
이 자료는 이후 "등산백과"가 개정될 때마다 조금씩 '각색' 또는 '교정'됩니다.
그랬거나 말거나 이 표를 눈여겨 본 이는 최근까지 거의 없는 걸로 보입니다.
코오롱 등산학교가 2006년 펴낸 '즐거운 암릉길'을 펼쳐보니 언급하지 않았네요.
알았더라면, 개척자가 무명인도 아니고 김정태 선생이라는 걸 언급하고도 남을^^ 테니까요.
사람과 산에서 펴낸 북한산 부록 중 릿지편에도 없습니다.
아쉽습니다. 클라이밍 말고 릿지하는 분들 적지 않지만, 그들은 산악사에 관심 없기 쉽습니다.
그들이 산행기를 쓸 때, 김정태라는 이름을 알게 되면서 일제시대 조선산악인들, 산악사에도 관심을 가질 실마리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백운대 북서렁, 원효봉에서 백운대를 말하니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염초릿지, 원효릿지가 되겠습니다. 1934년 오쿠노 마사이와 카와무라ㅁㅁ가 초등했군요. 오쿠노 마사이는 조선산악회에서 대표적인 일본인 클라이머 중 한명입니다.
이듬해인 1935년 병풍암 능선(용암문 - 만경대)는 김정태와 엄흥섭팀이,
그리고 이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는데요. 만경대능선(병풍암-위문)도 역시 같은 팀이
그리고 만경대 능선(노적봉 측면)도 김정태가 초등합니다. 만경대 릿지가 두개인 셈이군요.
이를 오늘날 다시 찾아 내면 좋겠습니다.
오봉 릿지도 초등은 김정태가 했다고 같은 자료에서 적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걸 그대로 옮겨 적으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그 밑에 개척산악회가 C.A.C 즉 그놈의 조선산악회라고 적혀 있으니까요!
알려져 있다시피, 김정태는 1937년 C.A.C에 가입합니다.^^
따라서 이 기록은 조작, 각색된 겁니다.
지금 당장은 확인되지 않은데, 1970년 6판에도 똑같이 실려 있는 걸로 기억합니다.
1926년생 (또는 1928년생) 손경석 선생님(당시 36세)은 왜 이걸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냥 실었을까요? 그 이유는 손경석이 저시절만 해도 아직 본격적인 등산사가(= 검증, 체크)로서 발을 내딛기 전이어서라고 보입니다. 그런 까닭에 김정태(1916년생)의 기록과 말을 그대로 믿은 거겠죠.
1934년 오쿠노 마사이의 원효릿지, 염초릿지는 믿을만한 기록이라고 판단됩니다.
왜냐고요? 김정태에게는 '라테르네2호"를 보면 조선산악회의 연보 "조선산악"과 월보(또는 계간 소식지)가 자료로서 있었습니다. 그 월보를 기초로 해서 적은 걸로 보입니다.
오늘의 결론.
우연히 이걸 유심히 읽었다고 칩시다.
그래도 김정태의 말은 그대로 '받아쓰기' 하면 안된다는 거.
알겠죠?^^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우리는 김정태의 글과 말은 해석을 한걸음 더 나아가야합니다.
김정태가 만약에 말입니다.
연도를 잘못 적었거나 연도를 기억하는데 깜빡 실수했다고 말하면 될까요?
즉 C.A.C가입 이후 그러니까 1937년 이후에 염초릿지와 만경대 릿지를 개척했다고 미세조정하면 될까요?
안됩니다. 등산사가의 타이틀쯤 가지려면, 1937년 이후 김정태의 행보에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그는 등반력이 일취월장해서, 더 험난하고, 더 어렵고, 동계 등등으로 나아가지,
아장아장 초보 수준의 바윗길인 염초릿지와 만경대릿지를 탐내거나, 관심을 줄 여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김정태가 염초릿지, 만경대 릿지를 초등했다고 한다면,
클라이밍 초기, C.A.C 간판을 어깨에서 뗀 1935년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그는 그렇게 무리해서 1935년 C.A.C라는 별을 달려고 했을까요?
그때까지만 해도 김정태는 순진하거나, 쉽게 속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쉽습니다.
그보다는, 주반야친(낮에는 반일, 밤에는 친일)으로,
그가 민족의식, 또는 독립의식이 강하다고 남들에게 말은 하지만,
그건 낮에 '하자는 말'이고 밤에는 C.A.C 시절을, '추억을' 그리워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다른 국내파 백령회원이나, 김정태의 말을 그대로 믿는다면, 1940년대에 리더급만 해도 60명이 되었다는 조선인 클라이머와 달리 자기는 조선산악회라는 성골진골출신이라고 자부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산악계 내에서도 그런 사람 많잖아요. 만나면 '어느 산악회 출신인지' 묻는, 대학산악부나 명문 클럽이 아니면 더 관심갖지 않는^^ 귀여운 아재들에게 오늘도 아웃싸 김진덕씨가 한말씀 드립니다.
내일 또 봐요...~~~
김정태는 조선인의 자부심으로 인수B길을 개척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길을 그는 같은 해인 1935년에 개척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조작입니다.
조선산악회에 가입 이전인 셈인데, 놀랍게도 당시에는 어떻게 불렸는지 아는지요?
'쿠사쯔키"라고 불렸습니다. 쿠사는 풀(草 くさ) 쯔끼(付く·附く), 즉 크랙에 풀이 많아서라는 뜻입니다. 개척이전 이름일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개척 이후에 붙인 이름일테고, 언제적 개척했는지, 당시 김정태가 어느 팀이랑 교유했는지를 짐작할 수 알게 됩니다.
* 김정태 별명은 '곰'입니다. 힘이 세다고 해서요. 당시 기록을 볼때 누군지 감추려는 의도로 '곰(우마)'라는 별칭이 있으면 김정태라는 걸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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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숨은벽은 1960년대말에 백영호, 최선웅 등에 의해 '발견'되어 이름 붙어졌죠.
그렇지만 무명시절 숨은벽 릿지 초등자는 누구일까요.
아무래도 숨어있다 보니 일제까지는 올라가지 않을 겁니다.
그쪽은 일제때에도 주목을 받지 못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