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회 단상, 1944년, 45년 스키여행이 가능했는가?
카테고리 없음2020. 11. 19. 13:16
전담 선생의 집안은 말그대로 클라이밍 명문가라고 할 수 있다.
국립산악박물관에서 진행한 구술조사 전담편에 의하면,
그는 1943년 44년에 그는 삼촌 따라 원산의 삼방스키장에 주말이면 다녔다고 회고하고 있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43년 44년이면 일본이 총력전을 펼치고, 점점 패전의 늪으로 빠지고 있던 터였다. 정확한 연도를 체크해 보아야겠지만, 금강산 전철의 철로도 철거하여 평양에서 출발하는 산업용 철로로 이용했다.
금강산 철도는 순전히 관광용이기 때문이다.
총독부는 정책상 여행과 관광을 제한, 금지했다.
기차를 이용하는 시민들도 여행이나 관광객 차림새를 비애국적 자세라며 꺼려했다.
스키장은 신체단련(그들 표현으로는 연성)의 일환이라 예외였을까?
별 대수로운 건 아니지만, 앞으로 관심갖고 찾아보아야겠다.
일본 본토는 더했다. 각급 명문 대학산악부들도 형편없이 만들어버렸다.
정확한 팩트를 확인해야겠지만, 대충 이 시기 그러했다.
1943년과 44년쯤 되면 일본은 이랬다.
이화여대나 세브란스 대학도 대학이길 그만두어야 하고, 총력전의 총후기지역할을 했다.
1943년에 이화여전은 청년 연성소 지도자 양성과로 강제 변경되었다. 폐교나 마찬가지다.
이희호 여사도 이 즈음 다닌 걸로 알고 있다.
거듭 이야기 하지만, '연성'이라는 왜색용어는 황국신민이 되기 위한 단련과 육성이라는 뜻이다.
군대 훈련소 또는 인간성 개조소 같은 곳이다.
이런 기초지식을 갖고 백령회의 '한가로운' 한일간 등반경쟁 스토리를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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