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영래 기자를 악돌이라 부를까요?
한국잡지사상 최장 연재를 계속하고 있는 월간산의 만화 "악돌이"는 한국산악계의 한 성취입니다.
악돌이 박영래와 인연담 하나 없는 이라면 한국 산악인이라고 할 수도 없겠습니다.
그런데 "악돌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해서 탄생했을까요?
오늘은 궁금해 하자고 들면 궁금한 '악돌이' 이야기 한토막입니다.
산악계 바깥사람이라고 한다면, '악돌이' 하면 악(惡)을 쓰는 놈쯤 되겠지만,
우리는 악돌이 하면 한자로 대충 악(岳)이 떠오릅니다.
거기다가 호돌이, 순돌이, 갑돌이 할때의 '돌이'를 붙였다고 하기 쉬울텐데 과연 그럴까요?
그렇다면 '악돌이'는 바위하는 이에게 붙여질 최고의 영예로운 별명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박영래일까요
당시 난다긴다하는 바위꾼들 정말 많았는데요. 이걸 생각하면 좀 궁금해질 겁니다.
악돌이는 원래 박영래 기자를 부르는 별명이었습니다.
이 별명이 붙여진 시기는 정확히 1970년 여름 전후입니다.
한국산악회의 원로이자 전문산악인의 태두인 김정태, 양두철, 안광옥 선생이 붙여주었죠.
올여름 박영래 기자와 몇번 만나 장시간 이야기를 나눌 때 이부분을 여쭈어 보았죠.
기자는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그냥 얼버무렸습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이제 그때 그시절로 한번 돌아가보겠습니다.
다행히 한국에는 '등산박물관 - 우리들의 산'이 있습니다.
김정태, 양두철, 안광옥 선생은 1970년 당시 50살 전후의 원로^^였습니다.
아침을 드시고는 느지막히 한국산악회 사무실로 나와 정담을 나누다 낮술을 드셨죠.
다들 술을 아주 좋아했습니다.
김정태 선생은 모르지만, 양두철 선생과 안광옥 선생은 대단한 못말리는 술꾼이었죠.
양두철 선생은 맥주컵을 한잔씩 돌리고 돌리고 했더랬습니다.
1970년은 고려대의 백경호, 한양대의 한우중옥, 서울대 이재운 등을 포함하여.
강호의 최고의 클라이밍 고수들이 1969년 KCC라는 이름하에 모여든 시절입니다.
모두들 한국산악회원(예비회원)들로 적장자들, 성골 진골들입니다.
이 친구들이 명실상부한 '악돌이'에 어울리겠습니다.
어울리겠습니다만!
그때 불쑥 등장한 20대 초반 벌거숭이 친구가 바로 박영래(1947년생)입니다.
박영래는 겨우 그림 좀 그릴 줄 아는, 6두품, 아웃싸이더 중의 아웃싸였습니다.
박영래는 1969년 9,10월경 서점에서 월간 산을 보고 만화를 기고했더랬죠.
그걸 유심히 본 최선웅 당시 편집장이 박영래에게 만나자고 기별을 했습니다.
그래서 박영래는 마틴 스콜세지 영화 "굿 펠라스Good Fellas"처럼 젊은 산악인을 만나게 됩니다.
백경호, 최선웅이 이끄는 인수봉 서면벽, 숨은벽 그리고 노적봉 개척팀에 함께 합니다.
그리고 1970년 3월경 월간 산 기자가 되어 출근을 합니다.
그때부터 김정태, 양두철, 안광옥을 알현^^한 걸로 보입니다.
그들은 다짜고짜 박영래를 좋아한 걸로 짐작됩니다.
그들에게 '악돌이'라는 별명을 선물받고, 그해 가을 9월인가 10월부터 '악돌이'를 연재합니다.
박영래 스스로 밝히듯이, 박영래는 뛰어난 클라이머가 아닙니다.
실력은 평범합니다.
그냥 재미로 초급바위루트를 오르고, 친구를 좋아하고, 술을 좋아한 클라이머입니다.
그런데도 박영래를 악돌이라고 붙여 주었대요.
이제 좀 슬슬 궁금해지시죠?
이제 일제하 산악운동에 관해 가장 많은 팩트를 갖고 있는, 공개하고 있는 양정고보 산악부의
"양정산악 70년"을 펼쳐 보겠습니다.
양정고 산악부는 양정산악 60년'에 이어 '양정산악 80년'에 이어 당시 자료들을 원문 그대로,
후학들을 위해 자기들이 편집한 것이 아닌, 원문 그대로 양정산악90년인가 100년을 펴냈죠.
일제하 정식이고 제대로 된 첫 산악부로서 귀감을 살 행동입니다.
그들은 1942년 함경북도 차일봉, 북수백사느, 운수백산을 등반합니다.
뒷줄 오른쪽부터 세번째가 엄익환입니다. 백령회 회장인 엄흥섭의 장남이죠.
멋있습니다. 이 산행기는 마지막 백령회원이라고도 하는 고희성선생이 썼는데요.
글의 중간에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먹는데는 악돌이, 일에는 꾀돌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달려와서 먹기만 하는 태도에 못마땅하여 불만의 연발이다."
어랏...
저 시절에 저런 속담이 있었나.
먹는데는 악돌이라
국립중앙 도서관이나 네이버 뉴스라이버러리에 검색해도'악돌이'는 나오지 않아 더이상 확인은 어렵겠다. 그러나 입을 비칭하는 '아구'가 있는 걸 보면, 먹는거하고 악돌이가 연결지을 수 있겠다.
''''''''''''''''''''''''''''''''''''''''''''''''''''''''''''''''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악돌이는 악(岳)돌이가 아니다.
박영래가 술잘먹고 입담좋고 싹싹한 친구라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생각한다.
KCC의 성골진골들은 김정태, 양두철, 안광옥 앞에서 살가운 행동을 어떻게 했을까?
벌벌 메었을 것이다.
박영래는 '그랬거나 말았거나' 아웃싸로 천성이 싹싹한데다 붙임성이 좋았다.
말빨도 아주 좋았고....
게다가 그분들이 술값이 떨어져 전화를 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계산을 하길 좋아했다.
게다가....
그 말술. 소주 100잔을 마셔 사모님을 쟁취했다는 전설의 사나이 아니던가.
김정태, 양두철, 안광옥 세 어른들은 박영래의 이런 모습을 보고 '악돌이'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붙였다는 이야기.
악돌이와 백번 술마신 이들이라도 알기 어려울 = 관심이 없었을 '야그'하나 해보았습니다.
믿기지 않더라고, 적어도 바위잘해서는 아닙니다.
박영래 기자는 바위 잘 못한다니까요!^^
위는 제일 그럴듯한^^ 이야기이고요.
팩트로 말씀드릴 이야기 한토막이 더 남아 있습니다.
박영래는 언젠가부터 헬멧에 적십자를 더해서 '안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뉴스 사실은.... 다음에 전해 드리겠습니다.
이상 한국에 하나만 있어도 되는 "등산박물관"이야기였습니다.
''''''''''''''''''''''''''''''''''''''''''''
추가)
한때, 악돌이라고 하면서 한자로 악돌이(岳乭伊) 또는 악돌(岳突)이라고 했던 거 모르시죠?^^
박영래 기자 스스로 '악'을 바위 악(岳)이라고 풀었던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