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회 17-1)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은 주로 어느 시기에 활동했을까?

카테고리 없음|2021. 1. 7. 21:59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은 주로 어느 시기에 활동했을까?

 

이 글은 지극히 사적인 호기심에서 비롯된 것이고, 공식적이거나 정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

의사들의 연면한 독립운동이 시기적으로 1930년대, 장소적으로 국내에 한정하면 그 이전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를 통해 백령회원들이 1930년대와 1940년대에 독립운동을 '꾀'할 수 있을까를 어느 정도 비추어 볼 수 있겠다.

 

의사라는 한 특수계층의 독립운동사를 시기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적지 않을 것이다.

"열사가 된 의사들"은 한국의사100주년 기념재단에서 2007년 펴낸 책으로 독립운동에 나선 의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편찬위의 성격으로 보아 이 책은 의료계의 공식적인 발언이라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의대 입학 후 또는 독립운동을 한 후 의대에 진학한 이를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일제하 의사와 의대에 진학한 조선인이 총 몇명인지는 밝히지 않고 있어 아쉽다. 

 

책에 의하면 공훈심사가 완료되어 독립운동 유공 포상을 받은 이는 67명이고,

활동자료가 부족해서 확인하기 어렵거나 해서 공훈 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미포상 명단은 88명이다.

이들이 독립운동을 한 시기와 장소 등을 적시하고 있어 나름 분류가 가능하다.

 

기준은 (1) 3.1운동 이전, (2) 3.1운동 ~ 1920년대  (3)1930년 이후 (4) 해외(전체기간)으로 해서 분류해 보았다.

기준에 명확히 부합되는 분들도 있고, 겹치는 분들도 있는데 전체적인 흐름을 보여 주는데는 충분하다.

그 특징은 아래와 같다.

 

① 3.1 운동과 1920년대가 주요 비중을 차지한다.

② 3.1운동관련해서 활동한 분들 중에,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독립운동을 한 이들은 극히 드물다.

③ 해외에서 활동한 분들은 많다. 임시정부와 연계해서 활동한 분들이 다수이다.

공훈심사가 진행되고 있는 분들은 압도적으로 3.1운동과 관련있다.

 오늘의 주제인데, 1930년 이후 국내에서 운동을 한 분은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 급격히 줄어든다.

 

 

1 독립운동 유공 포상 명단 67명

  유공 포상자 67명 미 포상자 88명  
3.1 운동 이전 13 4  
3.1 ~1920년 27 59  
1930년 이후, 국내  7 3(12 *) * 조선민족해방협동당 사건
해외에서(전체기간) 20 10  

 

우선 보이듯이 유공포상자와 포상신청자 사이에는 구성비율이 서로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미 포상자 중에 3.1운동 관련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걸 알 수 있다.

전 조선에서 벌어진 운동이라서라서 주장하기도 쉽겠지만 심사가 그만큼 엄격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 미포상자 중 1930년 이후가 많은 까닭은 15명 중 12명이 조선민족해방협동당과 관련되어 있다.

이들은 구속되거나 피신했는데도 미포상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독립운동인지 징병기피인지 애매해서일까.

인터넷에서 조선민족해방협동단으로 검색하면 상당한 글들이 있어 참고하면 좋겠다.

 

오늘의 주제은 1930년 이후를 보자.

포상자 67명중 7명은 약 10퍼센트에 해당한다.

미포상자 88명 중 조선민족해방협동단을 빼면 3명이다.

 

의대생이라는 최고 엘리트 집단은 성공을 향한 욕망도 강했겠지만,

평범한 시민들보다 독립의 의의와 독립운동에 나설 기회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1930년 이후에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아마 다른 집단군을 놓고 보아도 1930년대에는 이전보다 급격히 줄어들었을 것으로 추정해도 무방할 것이다. 

 

 

백령회는 리더 엄흥섭만 국립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나머지 회원들의 학력은 잘 확인되지 않는다.

1930년대 후반에 발족한 평범한 시민들의 모임인 백령회가 독립이 시대적 사명이라는 자각이 있으려면,

단순히 '만족의식'이나 '차별의식'을 갖고 있어서는 안된다. 

 

봄날 햇살 받으면 저절로 싹이 터듯 독립운동을 하는건 1920년대에는 가능했을 것이나

1930년대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꾀하려면 어떤 남다른 계기나 각성이 있어야 한다.

특별한 위인과 교류했거나, 특별한 책을 읽거나, 일제로부터 극심한 대우를 받았거나 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회고나 증언을 읽어보면, 독립운동이 아니라 독립을 '꿈'꾸었다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지금 우리가 그러하듯이, 그때 그들도 사회에 잘 적응하려 노력했고, 산이 좋아서 산에 갔을 뿐이다.

아닐까?

 

 

 

(지금 지역,학벌, 빈부, 소수자인권 등에 차별의식을 갖고 있는 이 대한민국 국민 전부일 것이나 운동에 나서는 이 기하려뇨. 마찬가지로 민족의식, 차별의식을 가지지 않은 식민지 조선인들은 한명도 없었을 것이다. 이완용도, 이광수도, 최남선도. 잘나가는 조선인이라고 그게 어찌 없겠는가. 민족의식이 있다고 독립운동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반중주의자라 해도 '미래가 그쪽이다 싶으면' 자기 아이들은 중국에 유학보내는 법이고,

반미주의자라 하더라도 어떤 이들은 '미래가 저쪽이다 싶으면'  자기 자식은 미국으로 유학을 보낸다.

세상이라는 게 정지용의 향수처럼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고,

박인환이 목마와 숙녀에서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이 아닌가.

 

 

 

 

*참고로 일제시기 한국의사들의 독립운동 을 검색하면, 같은 주제로 2008년 씌여진 논문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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