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박물관이 서울역사박물관에 드리는 소소한 선물

카테고리 없음|2021. 1. 24. 11:04

산악박물관은 적지 않지만, 등산박물관은 전세계에 딱 한군데, 한국에만 있는 듯 하다.

 

둘 사이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전자(前者)는 산악인을 '고통을 이겨낸 위대한 인간승리'로 보고 산을 세상과 떼어놓는 경향이 있다.

등산박물관은 등산을 시민들의 일상으로 보기에 '등산'을 통해 세상에 나름 보탬이 되는 내용이 없지 않다.

오늘 그런 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동시에 우리나라 최초의 관광기념품이 무엇인지 궁금해 볼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서울역사박물관이 2017년 펴낸 "그림으로 보는 경성과 부산, 1920-1930년대"는 내용도 충실하고, 특히 뒷편의 논고에도 북한산과 도봉산에 관한 내용이 있어(관련부분은 추후 모셔옴) 관심껏 보게 된다.

 

일본인 화가들이 주목한 조선의 풍물은 아무래도 그들 눈에 생경한 것들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지극히 조선스러운 것일터라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거의 없다. 

단 한장의 그림을 빼고서 말이다.

바로 이사진.

 

화가 산시로가 1929년 10월 경성에서 찍었다는 사진 말이다.

산시로는 1,2,3,4,5 번호를 매겨놓았는데, 4번은 전통가면, 우리의 전통탈일테고, 5번은 나막신이다.

 

그러나 1번과 2번이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인 건 아는데, 사이즈가 나막산보다 조금 커 그 용도가 궁금할 것이다.

그 답은 아래에 적는다.

특히 3번 도안이 무엇인지 알아차릴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심지어 조선스럽다고 여기기도 어렵다.

나는 일본 사무라이 투구와 갑옷그리고 칼을 희화화한 줄로 알았다.

 

뉴스 사실은 무엇일까?

책에 각주나 설명이 없는 걸 보면, 역사박물관에서도 혹시라도 잘 몰랐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이건 '일반 시민들의 등산과 관광'으로 근현대사를 바라보는 등산박물관의 몫이 되겠다.^^

답은 맨하단에 있는데, 재미삼아 글을 천천히 읽어내려가 주시면 고맙겠다.

'등산과 관광'의 주제로 소장하게 된 "한국근대 목각인형".

 

검색해보면 알겠지만, 부산의 김길성 선생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컬렉터이다.

아이템을 고르는 안목이며 집요한 광기는 성공한(- 이 뜻을 오해마시라) 컬렉터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 책은 2018년과 2019년 연속하여 한국근대 목각인형전을 전시한 도록으로,

근현대 시절 이런 관광기념품 문화가 있었는지도 모른 채 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김길성·남영자씨 부부와 강경숙씨에 의해 '전모'가 드러난다.

나무를 깍아 만들었으니 그 이름이 목각인형인데, 크기가 30cm를 넘지 않는 소품이다. 

양반이나 신랑신부 등만 아니라 천하대장군도 주요 아이템이었다.

 

일본에서는 일도각(一刀刻)이라고 부르는데 김길성은 즉지각(卽枝刻)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선시대에 이런 기념품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조선의 여행가들은 거개가 그놈의 양반네들인데, 그들은 지독한 중화파들이라 조선의 물목을 경멸(?)했다.

 

일제시대 조선의 '관광'기념품 중 인삼이나 잣 등 실용의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순수한 의미의 관광 기념품으로서는 목각인형이 첫손에 꼽힐 것이다.(대량제작, 관상용, 선물용)

안타깝게도 이 목각인형은 조선에 건너온 일본인 목공예가들이 조선을 담은 기념품으로 만든 걸로 보인다.

첫 기념품조차 일본인의 손길이 닿은 것이라니...

 

상세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요^^

 

연극인 오영진은 '하나의 증언'을 통해 김일성 가짜설을 퍼뜨리기도 했는데,

해방후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에게 '조선'을 담은 선물을 주는데,... 놀랍게 이렇다.

 

헤어질 떄에 아내는 내가 서재에 두고 보던 고려 인형 한 쌍을 누닌 부처에게 선사하였다.'녹의홍상(綠衣紅裳)한 여자 인형은 춘향이라는 이름이며, 사모관대(紗帽冠帶)한 남 인형은 이도령이다. 유명한 우리의 고전 춘향전의 남녀주인공의 이름을 딴 것이다.
루닌부처는 '이런 좋은 것을 주셔도 우리는 갚을 것이 없는데'하고 한동안 망서리다가 감사하게 받았다.

나는 부처와 차-닌 뿌르소프 양 소좌에게 벽에 걸어 놓고 즐기던 '탈춤'의 목제와 바가지형의 가면 한 개씩을 우리농민들이 군무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붙여서 선사했다.

그들은 각기 만족해서 선사품(膳賜品)을 옆에 끼고 돌아갔다.

"벽에 걸어 놓고 즐기던 '탈춤'의 목제와 바가지형의 가면 한 개씩을 우리농민들이 군무할 때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을 붙여서 선사했다." , 이도령과 성춘향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걸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오영진의 집에는 조선을 상징하는 기념품이 이런 거 말고 따로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겠다. 

 

글을 너무 길게 끌어왔는데^^, 이제 오늘의 주인공을 보자.

 

이게 도깨비일까? 일본의 사무라이일까?

가슴에 씌인 한자는 무엇일까?

 

놀라지 마시라. 오늘 우리는 그 우리가 '묻어둔' 진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답은 이렇다.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이게 한때 조선사회에서는 널리 퍼져 있었나 보다.

머리털 모양만 빼고 똑 같다. 야구방망이 도안도 똑같고, 가슴팍과 다리 부분도 똑같다.

 

가슴에 적혀 있는 글자는 복신(福神)이다.

구글에서 복신福神, 한국복신 조선 복신 등으로 검색해 보아도 뜨지 않는다.

이 정체는 무엇일까?

 

혹....시.... 뿔이 하나나 두개 있고, 방망이가 있고. 이빨이 저렇고 호피무늬 반바지 있고...

이거 우리가 잘아는 '금나와라 뚝딱 도깨비'가 아닌가.

빙고.

 

이건 도깨비이다.

복(福)이라고 적혀있는 쌀이 가득한 되도 있고....

 

그런데 말이다.

놀라지 마시라.

지금 이 사진 두장은 한국도깨비가 아니다.  모두 구글에서 鬼, おに로 검색해서 가져온 것들이다.

 

조선시대때만 해도 도깨비에 뿔이 달렸고 하는 우리가 상상하는 '전형'적인 이야기는 극히 드물다고 한다.

뿔달리고 방망이 들고 하는 건 일본의 오니(鬼, おに)이다.

 

따라서 이 형상은 일본인들이 한국의 도깨비 이야기를 듣고 자기 식대로 '만들어낸' 것일 가능성 100퍼센트이다.

일본인이 한국의 도깨비를 듣고 자기가 가장 잘 알고 있던 이미지를 덧보탠 것이라니.

 

멀리서보면 비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이 있듯이,

가까운 근대사는 들어 갈수록 굴절되고 편향되고 역전되어 웃기면서 슬픈 이야기가 많은 듯 하다.

 

콩쥐팥쥐라는 지극히 전통스러운 설화도 서양의 신데렐라의 왜색화 또는 한국버젼이라는 말도 있듯이.

도깨비 역시  '만들어진 전통', '왜색화로 재창조한 전통'의 한 예에 불과하다는 쓸쓸한(ㅜㅜ^^)이야기로 끝을 맺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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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도깨비문화"라는 책을 미리보기로 보았더니 통일신라시대때 도깨비형상이 있다. 소뿔모양에 어금니다.

책을 유심히 볼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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