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할까? 사실일까?
요즘 교육 세태를 한심하게 여기는 이들의 주문(呪文) - 이른바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이 말이 그럴 듯 하다 싶었는데 글쎄다.
아무리 우리 상황이 그렇다기로서니 아프리카까지 끌고 들어와야 하나.
핀란드도 아니고 '우가우가' 아프리카라니 충격 아닌가?
아프리카의 마을들은 과연 아이들이 나고 자라는데 천국의 환경일까?
아이들은 아이들로 대접을 받아 -만약에 제국주의의 수탈만 없다면 - 행복할까?
나는 '저런' 아프리카는 없다고 본다.
'물적 토대가 달라도 한참 다른 우리가 차용하는 데에도 조심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아래는 이에 관한 생각이다.
설령 아프리카- 아프리카는 작은 마을이 아니다. 그런데도 한가롭게 아프리카 속담이라니ㅜㅜ -
에 저런 말이 있다고 하자.
그건 '그' 아프리카가 근사하게 말하면 마을공동체 사회, 대충 말하면 부족사회라는 뜻이다.
우리 동물의 왕국에서 많이 봤잖아요.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 부족단위로, 부족원들이 힘을 합쳐야만 가능한 사회라는 뜻이다.
이제 "한 아이를 끼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가 제약조건하에서만 사실임을 삼단논법으로 증명해보자.
아프리카는 부족의 남자들이 창을 꼬나들고 나가 얼룩말 한마리 잡아 돌아와서 함께먹는 사회를 말할꺼다.
부족의 아이들은 엄마아빠의 기쁨이 아니라 부족의 '자산'이 된다.
자본도 없고 생산력도 없는 그런 사회에서 유일한 자산은 노동력이다.
한 아이를 잃는다는 건 가족의 슬픔을 넘어서서 부족의 자산 감소이다.
따라서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지금 아프리카도-안가보아서 모르겠지만 - 원시사회가 아니라 상당히 도시화되어 있다고 한다.
2010년 현재 그들은 어떤 자세로 자식교육을 하고 있을까.
저 속담은 2만불, 3만불 사회에서나, 기사에서나 끄적이거나 술자리에서나 주억거릴 내용이다.
분명 우리 사회의 교육문화나 아이들 문화에는 문제가 많다.
그렇지만 아파트 문닫으면 남인 사회이지 부족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조건이 전혀 다른 아프리카 속담갖고 우리의 처지를 경책하려 들지 말자.
속담이나 비유 그런거 말고, 우리랑 비슷한 사회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살피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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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원문이 무엇일까 싶어 짧은 영어로 검색해보니 역시 구글에서 뜬다.
"It takes a village to raise a child" 이 되시겠다.
그런데 위키피디아에서 보면, 2016년 미국의 한 방송사가 저 말의 출처를 찾아보았다고 한다.
그 중 하나가 "A child belongs not to one parednt or home"이다.
"아이는 부모나 가족의 소유물이 아니다."
이 말이저 속담이 태어날 당시의 아프리카적 상황을 가장 잘 반영한 말일 것이다.
아프리카발 비슷한 속담으로 이런게 있다.
" if you educate a boy you educate an individual.
But if you educate a girl you educate a village"
만약에 당신이 아들을 교육시킨다면 그건 한 개인에게 미칠 뿐이고,
딸을 교육시킨다면 그 마을 전체, 나라 전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뜻인즉슨. 아들 교육시켜 보았댔자 어른이 되면 지만 챙기고,
딸은 자기 가족을. 결혼해서는 시댁을 그리고 아이들 교육까지 바뀌게 되니 국가를 교육시키는 것이다"뜻이다.
아직도 남여차별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차라리 이 말이 더 시의적절하겠다.
아니다.
가정의 주도권이 여자에게 있는 시국이라 이 말은..음...
글쎄다.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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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돌이켜 보면, 도시화와 산업화가 되기전 우리나라도 시골마을이 공동체 사회의 성격이 강했을 것이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건 당시 농촌이나 어촌 마을 하나하나가 다른 마을과 독립적으로 부족사회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짓거나, 장례식을 치러거나, 식량에 있어서나 '품앗이'가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아이들은 가정의 예비 노동력이며 자라서는 마을의 일꾼이 된다.
그러한 까닭에, 어린 아이들의 노는 꼴이 마음에 안 들면, 노인들이 소리를 질러야 했다.
소리를 지르지 않는 아재, 할배들은 별로 좋은 이들이 아니다.
같은 시기 서울이나 부산 등 도시의 달동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서로서로 '품앗이'를 해야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잠간 아이도 보아주어야 하고, 돈도 서로 빌려야 하고, 쌀도......
그러나 지금 시골은 어떠한가?
노인들만 살아서가 아니다.
농사 짓는데에 온 마을이 필요한 게 아니라 트렉터 한대만 있으면 되니 공동체 성격이 무너졌다.
'왜 쓸데없이 남의 아이 참견해서 욕들을 필요가 있을까?"
보기 흉한 일이 있으면 고개를 돌리고 만다. 끝.
서울은 어떠한가?
'마트'를 중심으로 형성된 도시문화에서 이웃은 사실 필요가 없다.
"제발 참견하지 마세요, 니나 잘해" 이게 도시문화다.
아파트 문을 닫으면 끝.
결론: 펀더멘탈이 다른 터라 우리 문제를 푸는데에 아프리카는 도움이 안된다.
우리 입맛대로 갖고 들어오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