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수도 개성에서 북한산이 보일까요?
고려수도 개성에서 북한산이 보일까요?
보인다면 '삼각산'이 무엇을 지칭하는지 바뀌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산학의 태두인 이숭녕 교수와 김윤우 선생은 아쉽게도 우이동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개성을 염두에 두지 못하다 보니 그들의 북한산학에는 옥의 티가 생겨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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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개성에서 서울까지 직선거리 50Km라고 합니다.(도로상으로는 60km)
과연 개성에서 삼각산이 보일까요? 아닐까요?
지난해 8월에 올린 적이 있는데요. 고은 유홍준 최창조 김주영 등 일군의 문인학자들과 함께 개성을 찾은 중앙일보 김형수 기자가 1998년 7월 24일 찍은 사진입니다.
저는 이 사진을 보고 감격했는데, 사진을 좋아한 친구가 조작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하더라고요. 개성에서 서울 사이엔 높은 산이 없다고 하더라고 낮은 구릉이 계속될텐데, 그렇다면 삼각산 밑자락이 보일 수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직접 김형수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을 했습니다. 사실이라는 거죠. 살짝 짜증을 낼정도로 두번 세번 확인을 했습니다. 그래도 친구의 말때문에 긴가민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진실을 발견했습니다.
개성공단에서 의사로 근무했던 'Good Dr의 블로그님의 블로그에서 이 사진을 발견한거죠.
공단에서 산책하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어보니 저멀리 북한산 비슷한게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으로 찍었다는데, 보시다시피 또렷하게 보입니다.
개성공단은 평지인데도 북한산 밑자락이 고스란히 보이는군요. 놀라워라.
이로써 개성에서 북한산이 보인다는 건 사실입니다.
10여년 넘게 갖고 있는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이제 이 사진이 '삼각산'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출발점이 된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삼각산은 역사적으로 고려시대 때 처음 등장합니다.
따라서 삼각산이 무슨 뜻인지는 고려시대, 개성인들의 관점에서 보아야 됩니다.
'서라벌'이 무슨 뜻인지 알려면, 시공간적으로 경주와 경주인들의 입장에 서보아야 하듯 말이죠.
개성사람들은 아침마다 눈뜨자마자 앞쪽에 이렇게 생간 산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삼각산이라고 명명했을까요?
그들은 삼각산의 별칭으로 왜 '화산(華山)'이라 불렀을까요?
여기서 잠간 개성 주변의 산세를 보고 갈까요.
그래야 개성인들에게 삼각산이 어떻게 받아들여졌을지 확실해지니까요.
송도(개성)의 진산은 산세가 부드러운 송악산입니다.
그 너머에는 이렇게 우리의 북한산이나 도봉산처럼(물론 그보다는 못한 듯 하지만) 천마산이 있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오관봉이 있습니다.
오관봉의 봉우리들이 소뿔처럼 생겼군요.
이렇게 해서 개성의 북쪽은 산세가 위엄이 있습니다.
천혜의 수도 입지인 듯 합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더 검색해 보았습니다.
위의 사진 좌측이 북쪽의 천마산 오관산이 거의 확실한 걸 보면 개성의 북쪽과 동쪽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아래 파릇파릇한 보리밭 뒤의 산세를 보세요.
말그대로 있는둥 없는 둥 밋밋합니다.
역시 이사진의 산들도 암봉이 없어 별 특징없이 평범하고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동쪽이 아닐까 싶습니다.
서쪽은?
서해로 이어지는 서쪽은 더 산같은 산은 더 없을거라 보아도 무방할 겁니다.
이렇게 해서 개성의 동쪽과 서쪽은 별 인상적인 산은 없다고 추정합시다.
이제 남동쪽으로 눈길을 주면.....
아름다워라, 우리의 북한산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송도인들에게 아침마다 바라보는 저 산에서 어떤 감흥을 받았을까요?
특히 햇살에 인수봉 바위가 눈부셨을 겁니다.
그러나 그 인수봉은 지금 우리가 우이동에서 바라보는 인수봉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나아가 그들은 구파발쪽이나 우이동쪽에서 북한산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건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삼각산은 소뿔 또는 세뿔의 음차일 가능성이 높은데, 소뿔이라고 한다면 인수봉이 포인트가 될 것이고,
세뿔이라고 하면, 인수봉-백운대-노적봉이 됩니다.
만경대는 백운대에 이어져 보여 독립 암봉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고로 고려말 무학대사가 만경대에 올라 조선의 도읍지를 구상했다는 것은 그냥 낭설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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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 사실을 통해 북한산학을 펼쳐낸 세분의 이론을 보겠습니다.
좌로부터 이숭녕 교수의 "산좋아 산을 타니", 김윤우 선생의 "북한산 역사지리" 그리고 민경길 교수의 "북한산"입니다.
이들은 책 한권에 걸쳐 북한산을 학문적으로 깊이 천착했습니다.
먼저 이숭녕 박사는 대체로 삼각산을 인수봉 백운대 만경대의 삼봉을 가르킨다고 합니다.
그리고 온조가 오른 부아악을 인수봉 또는 인수봉의 귀바위를 음낭을 뜻하는 '불, 뿔'의 음차로 보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그러하듯, 무심코 그는 기초적인 실수를 하고 맙니다.
지금의 우이동에서 북한산을 보거나 하루재고개에서 인수봉을 본거죠.
이 각도는 개성사람들과 정반대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이숭녕 교수가 왜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했을까요?
그 까닭은 그가 청량리(대학로?) 쪽에 오래 살다보니 항상 이길을 선호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깜빡한거라 봅니다.
우이동은 모르긴 몰라도 고려때는 눈길도 안줄 깡촌이었을 겁니다.
김윤우 선생은 부아악의 '부아'를 '뿔'로 보고, 고려시대때에는 '세뿔'로 이어졌고, 한자로 삼각산으로 차자했다고 한다.
그리고 세뿔을 우이동쪽에서는 인수봉-백운대-만경대, 구파발쪽에서는 노적봉-백운대-만경대로 풀고 있다.
그 역시 '개성에서 보면 어떻게 생겼을까'라는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던 걸로 보입니다.
민경길 교수의 '북한산1'은 지금 갖고 있지 않아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는 삼각산을 '소뿔'로 푸는 걸로 보인다.
그러니까 인수봉을 삼각산의 제일 특징적인 현상으로 본 것이죠.
이 견해도 일견 타당하나, 그가 개성인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는지는 책이 없어 지금으로서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려인들은 이 산의 별칭으로 '화산(火山)' 또는 '화산(華山)'으로 불렀습니다.
火의 음이 '불'이니 뿔을 뜻하려 음차한 한자어라는 것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화산(華山)?
일설에는 火山을 좀더 멋있게 표현하려 華山라고했다고하는데요.
불교국가인 고려사람들의 문화가 '꽃처럼 화려한' 문화라고 하죠.
저는 개성 주위의 밋밋한 산들 사이에 삼각산이 꽃이 핀듯 화려한 산처럼 보여서 붙여졌을거라 짐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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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하여 그리도 좋은 북한산에 대해 나도 한마디 말추렴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시절운^^이 좋아서 남북화해의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이렇게 해서 십여년 넘도록 품은 '개성에서 북한산이 보일까? 보인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의문을 끝낼까 한다.
결론은 이렇다.
부아악은 백제 때 생겨난 이름이다.
삼각산은 고려조때 생겨난 이름이다.
둘다 북한산을 북쪽에서 바라다 보고 지은 이름이다.
우이동이나 구파발쪽이 아니라서 개성쪽에서 보자면, 만경대는 빠지게 된다.
소뿔로 보자면 인수봉이 중심이 될거고,
세뿔로 보자면 좌로부터 인수봉-백운대-노적봉이다.
어떤 경우든 구파발이나 우이동쪽에서 보고 이론을 전개해서는 안된다.
어떤경우에든 인수봉의 귀바위나 만경대는 등장할 계제가 없다.
도선국사의 만경대 설은 낭설이다.
화산華山은 북한산이 연꽃이 핀 듯 아름다워서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