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윤 그리고 일제하 고시엔 야구에서 조선 대표팀의 에피소드

카테고리 없음|2021. 2. 6. 12:35

영화를 보면, 역사는 어떤 상황에서라도 재미있는 개그를 품고 있다.

일제하 고시엔 야구 관련해서 정말 재미있는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오우삼 감독,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솔깃한 영화 윈드토커는 2차세계대전 중 암호에 얽힌 내용이다.

미군은 나바호족 인디언의 언어를 암호로 사용했는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은 해독을 못했다고 한다.

 

이런 예가 우리나라에도 없을 수가 없다.

일제하 고시엔 야구의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대만, 조선 그리고 만주의 고교야구부원들의 꿈이었다.

한번은 일본인 학교인 용산중학교 야구부가 식민지 조선의 대표로 본선에 진출하여 현해탄을 건넜다.

그들이 본선에서 구사한 작전 지시, 이른바 사인은 무엇이었을까?

 

놀라지 마시라.

조선어였다고 한다. 

묵묵히 손짓, 발짓 할 것 없이 큰소리로 조선어로 주고받았다고 한다.

 

일본의 중등학교 야구부 관계자 중에 조선어를 아는 이가 없었을 테니 기발한 아이디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실력차가 엄연히 있어서 패전하고 말았지만 야구팬이 아니라도 기억해서 술자리에서 해볼만한 이야기겠다.

 

 

이상 "플레이볼"에서 읽은 내용인데, 야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강추할만한 책이다.

이런 글이 너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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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여기서 또다른 질문 하나.

일제하 고시엔 야구에 최초로 참가한 조선인 팀은? 

휘문고보이다.

휘문고보의 감독겸 투수는?

바로 박석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 팀하고 최초로 경기를 한 조선인팀의 감독은?

바로 박석윤이다.

 

일제시대 최고의 문제적 인간이라 하는 박석윤은 몽블랑을 조선인 최초로 오른 인물이기도 하니,

기억해 둘만한 인물이다.

 

박석윤은 일제시대 최고의 '문제적 인간'이었다고 한다.

교토3고에 도쿄제대 법대시절에는 사회주의에 경도되었고, 이후 케임브리지까지 유학을 다녀왔다.

잘생겼고, 똑똑하고, 스포츠도 잘하고, 언변도 좋고....

 

게다가 총독의 스폰을 받았고, 조선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라는 매일신보 부사장에 올랐다.

이후 만주국에 건너가 각종 친일파의 궤적에 어울리는 '민생단'을 조직하고 행동을 이어 갔다.

"친일인명사전"을 보면 손위 처남인 최남선보다 친일 이력을 적시한게 더 길다.

 

그렇다고 그게 또 그게 아닌게, 1945년 해방되는 마지막 순간 총독과 여운형 사이에 브로커 역할을 하기도 했다.

박석윤과 여운형은 정치노선이 극과 극이었지만 이럴 수 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아무래도 둘다 근대적 지식인, 만능 스포츠맨이었다는 사실이 놓여 있을 것이다.

둘다 야구면 야구 농구면 농구였고, 둘다 조선의 학생들에게 스포츠 전도사였다.

 

아단문고에서 디지털로 무료 공개한 1925년 잡지 "조선 체육계 3호" 중 그 박석윤에 관한 기사가 있다.

 

이동원이 쓴 "외유의 박석윤에게"가 바로 그것이다.

3호의 특집이 "야구강화"인데 야구계를 대표하는 당시 셀럽이 바로 박석윤이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그는 이때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났고, 1927년 7월 동경제대 출신의 일본인 등산가들과 함께 몽블랑을 올랐다.

몽블랑 초등이기도 하고, 조선인으로서는 가장 이른 시기에 로프워크(Rope work)를 경험한 인물이기도 할 것이다.

 

기사의 원문은 아래와 같다.

용어와 맞춤법이 지금과 달라 곳곳에서 좀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부분도 있는데, 재미삼아 읽어볼만 하다.

물론 주제는 야구 잘하고 인물 잘생기고 똑똑한 박석윤 칭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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