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의 흔적, 여기소를 아시나요?

카테고리 없음|2021. 2. 14. 09:44

북한산에 '여기소'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은평구에서 나름 '여기소'를 되살리려 노력하고 있는데요.

전설을 다듬고, 원래 있던 곳에 표지석도 세우고요.

 

이 글은 전설의 부박함을 한번 엿보고, 그들에게 아니 북한산을 좋아하는 분들에게 드리는 소소한 선물^^입니다.

 

한국산악회가 펴낸 '한국산악회 70년'과 국립산악박물관이 비슷한 시기에 펴낸 사진집 "한국산악회전"은 같은 주제이지만, 발행처의 성격에 따라 내용이 조금씩 달라 두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눈에 띤 것은 1947년 사진입니다.

 

 

"북한산 지도표(애림표어입) 건설 위치도"

5만분의 일 지도위에 20여 곳에 달하는 산림표어 위치를 표시하고 있습니다.

1947년 당시 벌써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가장 빠른 시기의 북한산 사진인데요.

물론 사진 사이즈는 작아 맨눈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만,

스마트폰에 경의를 표하시라.

작은 글자들을 모두 읽을 수 있습니다.

그 중에 생전 처음 본 게 있으니.

 

좌측에 붉은 원 안에 있는 글자가 눈에 띠더군요.

여안소(女按所)로 읽히는군요, 안(按)은 안마할 때의 글자라서 예사롭지 않더군요.

 

검색해도 나오지 않고 마음이 답답하던 터에.

 

좌측- "북한산"(서울 하이킹 코스 제1집. 1937), 우측-"북한산(1958년 발행. 서울시사편찬위원회. 김영상 엮음)

1937년 경성의 전차를 운영하는 경성전기에서 야심차게 펴낸 서울근교 하이킹코스 전 7집 중 첫권은 북한산입니다.

1958년판 서울시에서 펴낸 북한산은 해방 후 최초로 북한산을 주제로 펴낸 책이고요.

이 책에는 모두 북한산 지도가 들어 있어 펴보았습니다.

1937년판에는 여자기생장소라는 뜻의 여기소(女妓所)로 적혀 있습니다.

여자기생하고 관련있는 전설이 있을 듯 합니다.

 

1958년판 북한산은 안타깝게도 1937년판 지도 방식을 똑같이 차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소를 여기리(里)라고 오기하고 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리'는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이 전설은 여자 기생과 놀아나던 양반댁 자식이 매정하게 차버리자 기생이 자살한 곳 정도가 될 거라 짐작합니다.

또는 내시묘가 그쪽에 있듯이 늙은 여지기생들이 모여사는 곳 쯤 될 수도 있겠고요.

 

네이버에서 '진관동 이야기 여기소 북한산 초등학교' 로 검색하시면,

어린 시절 그곳에서 나고 자란 이의 회고담이 있습니다. 이분이 할머니에게 들었던 전설도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런데 '여기소 터'로 검색해서 어떤 전설일지 보았는데, 너무 앞서가는 느낌이 강합니다.

여기소를 은평구의 한 문화 컨텐츠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들이 만들어 낸 것 같은데요.

뭐냐하면, 북한산성 축조와 짝짓기를 하려고 하고 있네요.

북한산성 축조에 전국에서 동원되었는데, 한 관리를 보고싶어하는 기생이 왔다.

그런데 부정탄다하여 연락하지 않으니 기생은 섭섭하여 자살하고 그 양반은 통곡하여 울었다라는 스토리텔링인데...

 

북한산성 축조의 주체와 시기 등에 대해 자신이 없어 다시 읽어보아야하겠지만,

지금 기억으로는 한 6개월만에, 승려들을 동원해서라고 알고 있습니다.

 

양반이라는 자들은 균역 병역 이런 숭고한 일을 면제받았다고 고등학교때 배운 것 같은데요.

양반들은 전쟁중에도 기생첩을 끼고 놀았을텐데,

기껏 성을 쌓을 때 무슨 금기가 있었을까요.

 

우리나라 기생이 언제부터 양반찾아 삼만리를 했을까요?^^

조선은 그런 나라 아니잖아요. 양반들은 그런 작자들아니잖아요.

기생은 그런 계급, 직업윤리 아니잖아요.

 

 

그리고 위치가 북한산성쪽이 아니라 백화사쪽 '은평구 진관동 302-3 여기소 경로당 앞'이라고 하네요.

 

 

제 짐작으로는  여기소는 어떤 한글지명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라고 봅니다. 새재(또는 쇠재로 들리는 고개)의 '새'를 사이, 억새,금속인 철,날아가는 새 로 해석하여 한자로 간령 철령 조령이라 하듯이 말이죠

 

 

굳이 한자를 한자로 푼다고 한다면  평범한 여자기생이 자살했다는 것도 그럴 듯 하고요.

늙어버린 여자 기생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하고 살던 곳은 아니었을까라는 짐작을 해봅니다.

적어도 북한산성과 짝짓기 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입니다.

 

 

 

 

이상, 지금은 잊혀진 여기소터.

50년대까지만 해도 지도에 들어 있어 북한산을 찾았던 이들은 그 지명이 무슨 뜻일까 궁금해했을 

여기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당시 북한산성산행의 출발점은 지금의 산성입구 버스정류장이 아니라 여기소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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