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최구현 선생이 본 설악산은 이렇습니다.
말씀드린대로 어제 "1960년대 주목할만한 설악산 관광사진첩을 소개합니다."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최구현 선생이 1968년 전후 바라본 설악산은 이랬습니다.
어떤 장면은 지금도 똑같겠지만, 어떤 장면은 '기억하기 어려운' 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기 말고서는 다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사진들과 해설이 되겠습니다.
우선 그런 장면부터 소개하고 여느 사진들로 이어 보겠습니다.
찬찬히 새겨보면 볼수록 재미있고 의미가 담기게 됩니다.
1968년 사진입니다.
이 사진첩 말고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진귀한 사진입니다.
좌측에 신흥사가 있고, 꿈에도 아련한 옛 설악동 모습입니다.
이곳에는 상주(?)인구가 1000명가까이 되고 당구장 뿐 아니라 심지어 꽃집까지 있을 정도의 독립된 커뮤니티였습니다.
짐작으로는 권금성에서 찍었을 거라고 할텐데요.
아닙니다. 권금성 케이블카는 1971년에 세워졌고, 권금성에서는 이런 뷰가 아닐거라고 추측합니다.(갸웃 갸웃)
이 사진은 항공사진일거라 추정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설악산을 아주 좋아했고, 설악산 개발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죠.
모르긴 몰라도 최구현 선생은 당연히 그 헬기에 탑승할 자격이 있는 분이죠.
첫페이지에 실려 있는 설악산 등산 관광지도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골골이 지명이 붙어있는 외설악과 달리 내설악은 띄엄띄엄합니다.
당시 설악은 외설악 중심으로 개발되었으니까요.
어느정도이냐 하면 말이죠.
사진에는 정상 아래에 봉정암과 봉정산장이 큼지막하게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봉정암은 소개는 커녕 사진한장 없고, 봉정암 사리탑을 소개하기를
'신흥사에서 28km, qorekatkdptj 20km, 청봉에서 서쪽 5km라고만 하고 있습니다.
대청봉의 모습입니다.
지금과 비교해서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등산로가 없는 모습, 저시절 저곳을 찾은 이들이 너무 부러워집니다.
어쩌면 헐벗어 보인다고 여긴다면, 6.25 전쟁때 이곳에서는 이른바 '설악산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져서입니다.
지금 이 고사목도 그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청봉 진달래라고 하고 있을 뿐 놀랍게도 이 사진첩에는 에델바이스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설악산 = 에델바이스라고 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 까닭은 에델바이스에 대한 관심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개봉 덕분입니다.
1965년 첫 개봉했는데, 배급에 대한 갈등으로 우리나라는 1969년에 개봉했기에 사진이 없는거죠.
물론 그 이전에 음반은 발행되어 '에델바이스'라는 노래때문에 설악산은 에델바이스가 수난을 받습니다.
1970년경 벌써 멸종 운운하는 기사가 나올 정도죠.
사실 첫 사진은 이렇게 동해 일출입니다.
지금 우리는 이게 당연해 보이지만, 한번 낯설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해외의 명승지 화보집에 이렇게 일출이 제일 먼저 나올까요?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일출은 조선의 문화가 아니라 일본의 문화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고 봅니다.
그들은 국호에, 일본의 건국 신화에도 해가 들어가 있고요.
최구현은 일제시대 금강산에서 사진작가로서의 업을 시작했기에 이런 마인드가 있었을 겁니다.
이 사진첩에서 제일 아련한 장면입니다.
신흥사 쪽이라고 합니다.
벚꽃으로 보이는 꽃이 활짝 피었네요.
나무 수형도 좋고. 저 나무가 있었다는 사실.
화진포가 들어가 있는 사진도 다른 사진첩에서는 절대 없습니다.
좌측 상단의 검은 띠는 헬리콥터의 창문틀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구현 선생이 누린 당연한 특혜죠.
저는 화진포 안가보았지만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이 사진도 여기말고는 실린 사진첩이 없습니다.
금강산 정상인 비로봉에서 동해쪽을 바라보고 찍으면 대강 이런 비슷한 앵글이 나옵니다.
최구현 선생의 출신이 어딘지 느낄 수 있는^^
운해로 가득한 외설악입니다.
이 뷰포인트도 여기 말고는 다른 데에서는 볼 수 없습니다.
최구현 선생의 역작이라고 봅니다.
금강굴의 쇠난간.
이 쇠난간이 언제 설치되었는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1968년 경이던가. 확인해서 올리겠습니다.
아직까지 울산바위 쇠계단이 세워지지 않을 때입니다.
그런 시절^^이 다 담겨 있습니다.
1968년 신성일 문희 주연, 설악산 올로케 '원점'
이 영화는 유튜브에 있으니 꼭 보세요. 재미도 있고, 당시 아련한 설악산을 엿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신성일은 하도 바빠서 이 영화를 개봉후 50년이 지나서 처음 보았다던가.
당시 일년에 50편씩 찍어댔다던가...
영화에서는 신성일과 악당이 철계단에서 멋진 격투신을 벌입니다.
그런데 그때는 울산바위 철계단이 없었기에, 금강굴 철계단에서 찍게 됩니다.
이런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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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몇장을 빼고서는 대체로 다른 사진첩에서도 반복되고, 우리도 비슷한 뷰를 갖고 있는 것들입니다.
비룡교 1967년 재향군인회가 세웠죠.
당시 정부는 돈이 없어 지금 대규모 사업에서 그러하듯 민자 사업으로 추진한 것입니다.
의상이나 원효대사가 여기에 서서 신흥사 터를 잡지 않았을 까 싶을 정도로 좋은 구도라고 보입니다.
1968년 전후 비선대 산장의 모습.
지금하고는(사라질 당시)하고는 좀 많이 달라 보입니다.
댁에 혹시 흑백사진으로 원통보전 이렇게 적혀 있으면 낙산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룻배가 있군요.
아마 당시 이곳에 관광객용 나룻배가 있었을 거라 짐작합니다.
이상 1968년경 당시 최고의 사진작가인 최구현 선생의 설악산 사진첩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도란도란 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