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서, 등산서적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3. 5. 13:30

산악계에는 다른 스포츠나 취미들이 감히 명함을 내밀지도 못할 정도로 엄청난 책이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

왜 산서를 쓸까의 반대측, 즉 독자들이 산서를 즐겨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의 산서가 갖고 있는 아쉬움은 무엇일까?

 

산악계나 저자의 입장과 산악계 바깥은 약간 결이 다르다.

산악계 내에서 산서는 우선 '자료'의 역할을 할 것이다. 하인리히 하러가 아이거북벽을 등반하고 쓴 "하얀 거미"가 번역되어 아이거 등반 붐을 더 촉발했을 것이다. 해외 고산등반서적 뿐 아니라 한국의 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많은 산행에세이나 남난희가 쓴 "하얀 능선에 서면"등 백두대간 종주기도 이같은 성격이 농후하다. 저자들은 자기의 산행을 기록하면서 동시에 책을 읽을 이들에게 '자료'로서 작용하길 바라는 경우가 많아, 산행시간이니 교통정보 지도 등을 자세히 적고  있다.

 

이를 넘어서서 우리가 산서를 좋아하는 건 '생존드라마' 또는 '도전과 극복'의 테마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주어서일 것이다. 고산이건 한국의 낮은 산이건 등산은 육체적 고통과 함께 한다. 목마름, 추위 또는 비박을 할경우의 고통을 이겨내는 육체의 승리 아니 육체를 이끄는 정신의 승리와 슬픔을 우리는 공감하게 된다.

 

육체의 승리, 정신의 승리는 사실 산행기의 '메인 서사'이다.

여기에 덧붙여 특히 한국의 산행기들이 갖추면 좋을 법한 아쉬움이 없지 않다. 

바로 책을 읽으며 '지적 승리' 이른바 '인문학' 또는 '지적 쾌락'을 누릴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한국의 '산행'기들은 고산등반기이건 국내 산행 에세이이건 대체로 1차적인 서술이 대부분이다.

다소 진지하거나 유려한 글쓰기도 많지만, 그건 심리묘사나 풍경묘사를 탁월하게 해 낸다는 것일 경우가 많다.

'등산'을 지적으로 바라보는 '지적' 통찰은 만나기 쉽지 않다.

 

나 자신도 변변찮은 터에 지금 감히 '인문학'을 운운하려 드는게 아니라 '인용'의 문제를 말하고 있다. 외국의 책들은 챕터의 시작을 '인용'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문장 중에도 적절한 일화를 '인용'하고. 잘 모셔온 '인용'은 짧지만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지를 효율적으로 보여주고, 글의 품격, 다시 말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까지 올려준다. 산행기는 시간별, 날짜별 산행과 감상으로 내용을 채운다 하더라도 적절한 인용구절이 있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다.

 

그러나 우리의 책들은 이런 경우가 극히 적다. 산악명언이라고 인터넷에서도 쉽게 발견되는 것들은 진부해 진 것도 많아 차마 인용하면 글의 격이 떨어질 우려도 많다. 알랑 드 샤뗄리우스의 말이라며 "길이 끝나는 곳에서 산은 시작된다"가 있다. 누구나 읽자마자 곧바로 공감하며 아마 강연에서도 산의 독자성을 이렇게 말하고자 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연극평론가 안치운 교수에 의하면  이 문장의 원래 뜻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하고 정반대라고 한다. (한국산서회 다음카페에서 그의 글을 읽을 수 있슴)

 

인용을 위한 '지적' 수련은 쉽지 않은 문제이다. 산 안에서, 산서만 읽다보면 산을 제대로 못 볼 수도 있다. 산의 바깥에서 산을 바라볼 여러 참고 문헌들도 읽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인용의 승리'가 있으려면, 한국인이 쓴 그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전범이 되어 지적 자극을 받을 때 당장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부제가 '같은 길을 걸어도 다른 세상을 보는 법'인 '관찰의 인문학'은 추천할만하다.

 

사실 비오듯 땀을 흘리고, 갈증에 시달리고 피로에 지쳐도 등산을 하는 까닭은 주로 눈이 누리는 호사, 소위 말하는 '안복(眼福)의 호사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정상에서 무엇이 펼쳐져 있을까를 기대하면서 또는 해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서 오르고 참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마음은 충일해진다.

뉴욕 거리를 지질학자 곤충박사 야생동물전문가 도시사회학자 시각장애인 등 열한명의 전문가와 함께 걸으면서 각기 다른 시각으로 관찰을 한다는 것인데 재미있다. 같은 대상도 관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글이 된다는 사실은 우리가 산행기를 쓸 때 한번 유념해 봄직 하다. '알파인 스타일'의 등반도 단순히 '스타일'이 다르다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글도 달라지면 더 좋을 것이다.

 

그리고 챕터마다 '본다'라는 주제의 인용문구들이 있는데 우리도 한번 구사해봄직하다. 앞으로 산행기를 내실 분들에게 혹시라도 도움이 될지 몰라 몇을 모셔와 본다.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은 낯선 땅을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 다른 사람의 눈으로.

그것도 백명이나 되는 다른 사람의 눈으로 우주를 보는 것.

그들이 저마다 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기도 한 백가지 우주를 보는 것이리라(마르셀 프루스트)

 

"삶이 외부 세계를 여행하는 하나의 움직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어쩌면 동물만의 특권인 이동 능력이야말로 지식의 열쇠일지도 모르낟. (조지 산타아나)

 

우리는 언제나 우리가 보는 것들을 말해야 한다.

하지만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은 우리가 보는 것들을 제대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르 코르뷔지에)

 

당신이 얼마나 먼 곳을 여행하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보통 멀리 여행할 수록 결과는 나쁠 뿐이다.

당신이 얼마나 많은 것을 알아차리는지가 중요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소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보석을 보고 허리를 굽혀 줍는 건 그 보석을 보았기 때문이오.

그러나 보석을 보지 못했다면 무심코 지나쳐 돌아보지도 않을 것이오(세익스피어)

 

"세상은 명백한 사실들로 가득하건만, 아무도 관찰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네 (셜록 홈즈)

 

"본다는 것은 보고 있는 것의 이름을 잊어버리는 것이다.(폴 발레리)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싶으면 어제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라(존 버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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