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반데룽 (Ring wanderung)은 무슨 뜻일까요. 환상방황?

카테고리 없음|2021. 3. 12. 18:26

오늘은 '링반데룽(Ring wanderung)'이라는 등산용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다음의 세가지 이야기를 듣고서는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영화 25시의 안소니 퀸처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를 것입니다.

 

 

링반데룽의 용어 출처가 '허무, 허망'하다는 것이 첫번째이고요.

산악인들 사이에서만 나도는 은어가 아니라 스트리트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 두번째이고요.

그리고 세번째를 듣고 놀라지 마시라.

2018년 한국인들로 인하여 전세계 사람들도 비로소 '링반더룽'을 알게 되었다는 엄청난 사실 말이죠.

 

한국에는 산악계 내에서 횡행하는 작은 이야기들을 짜깁기 하는 데 만족하지 않는,

세계 유일의 '등산박물관- 우리들의 산'이 있어 오늘도 평온^^하다는 사실을 또 확인하게 됩니다. 

 

등산애호가들이야 진작부터 링반데룽이라는 용어를 알고 있습니다. 산에서 빙글빙글 도는 현상을 말하는 등산용어죠.

Ring wanderung의 Ring을 환상(環狀)으로 wanderung을 방황으로 직역하여 만든 용어입니다. 원어인 링반데룽이나 환상방황 모두 'ㅇ'이 많은데다 글자수도 4자라서 참 탁월한 번역이다 싶습니다. 그러나 이건 전세계에서 오직 '한국어'에서만 가능한 현상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번역은 일본에서 했을 겁니다. 일본어는 Ring은 아마 '링구'로 wanderung은 완데룽구 정도로 번역되어 '링구 완데룬구'로 글자수도 많고 '환상방황'은 '캉죠보코-'로 음절도 맞지 않고 'ㅇ' 음가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배두일이 제1회 산악문학상 수상작 제목을 그런데 링반더룽이 아니라 "환상방황"이라고 이름 지은 것은 저자의 선택이겠지만, 1990년대 초 사람과산 편집부가 등산용어의 한국어화에 강한 집착을 보여서일 수도 있겠고요. 또는 '링반데룽'의 뜻이 곧바로 일반인들에게 전달되지 않을거라 추측해서일 수도 있겠습니다. 인기작가 정유정이 2014년 펴낸 책 제목도 '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입니다. 그녀 역시 환상방황이 링반데룽의 번역어라고 알고 있었을 겁니다.

 

이제 이 용어의 역사를 찾아가볼까요?

1961년 손경석 선생님이 펴낸 "등산백과"의 등산용어 편에는 '링봔데룽'이라고만 되어 있고 환상방황이라는 번역어는 적혀 있지 않다. 다른 용어에도 번역어가 없는걸 보면 환상방황이라는 왜색용어를 몰랐을 리는 없다고 보낟. 1975년 김원모 선생이 펴낸 한국산악회판 '산악소사전'에는 아래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김원모 역시 940년경 출생으로 서울대 법대 출신으로 일본어에 능통했을거라 짐작한다. 그는 이렇게 독일어이며 환상방황이라고 번역어를 병기하고 있다. 더 이른 시기 일본의 등산용어집을 찾아보면 언제 유입되었는지 알 수 있겠지만 이는 다음에 보완할까 한다.

 

재미있는 것은 인터넷에서 '링반데룽'이라고 검색해보면 거의가 김원모식으로 해설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그동안 산악인들이 김원모의 해석을 조금씩 가감해서 산악계에 퍼뜨리고 그 글이 인터넷에 게재되면서 시민들에게 미친 걸로 보인다. 참고로 김원모에 대해 더 읽으시려면 '김원모를 찾아서'로 검색하면 되겠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고리타분하게 환상방황이라는 용어보다 원어 그대로 표기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2019년 김은정의 '링반데룽', 2020년 김용구의 링반데룽이 아예 책 제목으로 등장한다.

 

2001년에는 단편독립영화 '링반데룽'이 아예 제목으로 등장하고, 2017년에는 동덕여대 큐레이커학과 학생들의 졸업 전시 제목이 "환상방황(Ringwanderung"이다. 이 외에도 링반데룽이라는 용어를 언급하면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 드는 기사들도 눈에 띤다.

 

우리가 '잠든' 사이에 링반데룽이 등산계를 넘어서서 한국사회내에 널리 보급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나는 이 현상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약간은 놀랐고, 이 현상이 굳이 나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더 비근한 예로 '소득 크레바스'라는 용어는 아예 학술용어로 자리잡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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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반전이 일어난다. 반전은 나중에 한번 더 일어난다.

링반데룽이 과연 독일에 있는 용어일까?

언어괴물 신견식의 "콩글리시 찬가"라는 책이 있다. 신견식은 언어에 대해 무지막지한 사람처럼 보인다. 일본어 하나가지고 허덕이는 내가 보기에 정말 그는 '괴물'이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은데, 내겐 다소 어려워 정독을 하지 않았다. 만약 정독한다면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 올 수 있을 것이다. 

 

"농구 골대는 링이 아닐까"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독일어 고리/동그라미 (링)와 방황/ 떠돎(반데룽)을 합친 링반더룽은 정작 원래 독일어에는 없다! 라고 말이다.

 

링반더룽, 링반데룽이라는 단어를 이제 우리는 독일어에서 찾아보아야 할 순서에 다다랐다.

게다가 독일어 반데른Wandern은 '비교적 방향성이 있는 산행을 하다"의 뜻이지 영어 원더Wander처럼 방향성이 없이 헤매다의 뜻으로는 거의 안쓰인다고 한다.

 

최근 대학산악부 출신의 두 원정대 팀이 '원더러스'라는 이름을 붙여서 등반을 하고 보고서를 낸 적이 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한 원더러스는 방황이 아니라 방랑의 뜻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신견식에 의하면  영어 원더는 방향성이 적은 헤메임으로 보고 있다. 누가 옳을까? 아무래도 사전에는 그러할 지 모르겠지만, 전문등산분야에 대해서는 대학산악부원의 용례가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즉 영미권 등산가들도 영어 원더에 반데른하고 같은 뜻을 부여하고 있을 것이다.

 

손경석의 등산백과에는 머메리는 '참된 등산가는 원더러스(Wanderes)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그 뜻은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고 남들이 오르지 않은 산길을 오른다'정도이다. 

 

각설하고, 독일어 사전을 찾아보자.

 

우선 네이버 사전부터 시작하자.

아니! 이럴수가?

링반데룽이라는 단어가 없다니.

 

혹시나 하는 건 역시나이다.

캠브리지 독일어-영어 사전에 링반데룽을 넣었더니, 유사한(Similar) 스펠링과 발음을 보여줄 뿐이다.

물론 링과 반데룽은 있다. 그러나 이 둘의 합성어는 없다는 사실. 독일어는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놀랍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마지막 기대를 걸고 구글에서 Ringwanderung을 검색해 보자.

 

구글에서 Ringwanderung로 검색하면 겨우 87,300개가 등장한다. 이건 아주 작은 숫자일 것 같지 않은가?

물론 Ringwanderung means what? 등의 영어 질문도 상당히 많다.

고런데 놀랍게 문서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고 제일 먼저 동영상이 검색된다. 구글의 검색 알고리듬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건 분명히 뭔가 문제가 있다.

 

이제 우리가 하고 있는 링반데룽 오딧세이는 처음에는 방랑이었다가 점점 호러무비로 변하고 있다.

그렇다 동영상은 줄기차게 2페이지 3페이지에도 그 유명한 방탄소년단이 2018년 일본에서 펴낸 Intro Ringwanderung라는 앨범이 소개되고 있다.

 

이런 노래가 있었다니.

 

심지어 2019년 11월 23일에는 일본에서 여성 5인조 걸 그룹의 이름조차 Ringwanderung이다. 모르긴 몰라도 BTS의 저 인트로 제목에서 딴 것이기 쉬울 것이다. 

 

이제 상황을 정리하자.

구글에서 Ringwanderung means what? 라는 영어식 질문이 왜 생겨났는지 이제 우리는 알게 된다.

BTS가 부른 노래 제목이 하필이면 Ringwanderung인 것이다.

 

미국아해들이고 일본 아해들이고 아니 독일 아해들조차 BTS에 열광하는 이들은 이게 무슨 뜻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리고 87,300 검색결과도 유사한 것을 정리하면 겨우 128개밖에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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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링반데룽의 오디세이를 정리하면서 마친다.

세상이라는 게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더니 이건 가까이서 보아도 개그인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20세기 초 일본 산악계의 그 누구는 알프스로 원정 유학을 떠난다.

당시 알프스를 올랐던 일본등산계의 선구자들은 최고의 엘리트들이었고, 귀국하여 일본 산악계를 이끈다.

 

엘리트였던 '그'는 돌아와 알프스에서 겪은 현상을 기초로 링반데룽 Ringwanderung이라는 등산용어를 만들어 소개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일본의 산에서는 방황하다 죽은 나무꾼들 많았을 것이나, 그는 새로운 문화에 새로운 용어를 만든 것이다) 독일에는 없는(?확신하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링반데룽이 일본인에 의해 태어난다.

 

초급 독일어 Ring과 wanderung으로 이루어진 이 용어는 일본 등산계에서 점점 생명력을 잃고 사라진다.

하지만 해방 조선 산악계를 이끈 엘리트 산악인들의 지적 게으름으로 인해 이 용어는 '뭔가 있어' 보이며 죽지 않는다.

이런 정확한 예가 바로 머메리즘이라는 용어이다.

이 용어도 똑같은 궤적을 그린다. 같은 시기 일본에서 만들었고 현재 일본에서 쓰이지 않는다.

우리는 어떠한가? 머메리즘이 마치 신주라도 되는양 벌벌 메면서 떠받든다. 머메리즘 아니면 *도 아닌냥 말이다.

 

별로 방황할 것도 없는, 2000미터도 안되는 조선의 산을 오르는 산악인들은 이 용어를 즐겨한다.

우리나라 산에서 링반데룽이라는 용어가 존속될 이유가 있을까?

'지리산에서 링반데룽을 했다'가 좋은 문장인가, '지리산에서 산길을 잃고 한참동안 헤메였다'가 자연스러운가.

 

어쩌면 말이다. 중국에서는 송의 주자학 - 명의 양명학- 청의 고증학으로 이어지는데,

조선은 주야장창 주자학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이 오버랩된다.

왜놈은 갖고 놀다가 폐기한 용어를 우리가 근사한양- 실제와 부합여부를 떠나- 멋을 부린다.

점점 한국의 시민들도 이 용어를 굳이 쓸 필요도 없는 글에다가 '겉멋'삼아 차용한다.

 

그리하여 이 링반데룽 바이러스는 죽지 않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다 마침내 BTS라는 최강 숙주를 만난다.

그를 통해 2018년 3월 전세계에 일시에 퍼져나간다.

독일- 일본 출생 - 한국에 의해 일시에 전세계에 보급되다니...이게 실화임?

'무'를 '유'로 만들어 한국이 발원지가 되어 세계로 퍼지는 것, 이런 게 전례가 있을까? 

독일인들과 영미권 사람들이  Ringwanderung이 무슨 뜻인지 고개를 갸웃하게 하다니 이게 실화임?

 

우리는 링반데룽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링반데룽을 하지 않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고리에 갇혀서 링반데룽을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다는 거..

전세계에서 우리만 링반데룽하다가, 2018년 전세계를 링반데룽에 빠뜨린 거, 이게 실화임?

 

실화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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