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인가 재피인가 4 - 조선시대 무엇이 표준어일까
산초인가 재피인가 시리즈4로 이어집니다.
오늘은 초피 vs 재피 중 무엇이 조선표준어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시리즈3을 써놓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문득 이 의문과 답이 즉각 떠오르더군요. 유레카! 하고 도서관으로 달려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내 짐작이 옳을거라는 확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재피(제피, 잰피)는 남쪽 지방의 사투리라고 생각하실겁니다. 검색하면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한결같이 공식어를 '초피(椒皮)나무'라고 하기에 은연중 초피가 표준어이겠지 지레짐작하는거죠.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재피를 좋아하는 분들 중에는 오늘도^^ 조금은 놀랄지도 모르겠습니다.
힌트를 줄까요?
아직 마라탕을 먹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알알한' 느낌을 주는 향신료가 재피 사촌인 화초라는데, 중국어 발음은 화자오라고 한다는 것!
이 구절에서 뭔가 느낌이 확 다가왔습니다.
"초피는 초피나무의 열매껍질이다. 추어탕 먹을 때 가루 내어 놓는 그 초피가 맞다. 지역에 따라 제피, 젠피, 조피, 진피라고 부른다" 이게 한국에서 공식발언입니다. 재피는 사투리!!!
한의사 이상은이 주간경향 2019년에 기고한 이 글의 제목은 "[허브에세이]마라탕에 들어가는 초피, 한국 자생식물"이다. 자생식물이라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원산지가 촉이라고 하는 걸 보면 분명히 중국에서 도입된 것일텐데요. 언제 어떤 계기일까요?
"사마르칸트의 황금 복숭아"에는 '외국 수입의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외국 수입의 조미료가 필요했던 것이다'라고 적고 있다. 이건 당연한 것 같다. 피자나 스파게티 요리가 유행하면 관련 재료가 수입되듯이 말이다. 초피가 수입되려면 초피가 들어간 음식이 수입되어야 했다. 현재 초피가 있는 지방은 황교익에 의하면 전라도, 경상도 그리고 영동지방이라고 한다. 이를 염두에 두면 통일신라시대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백제권인 충청도가 빠지는 걸 보면 더 그럼직하다.
산서성에 자리잡은 당나라는 쓰촨쪽 음식답게 다양한 향신료를 좋아했고, 그 핵심은 바로 재피였으니, 삼한전쟁을 끝낸 통일신라의 귀족들도 당연히 화려함을 추구하고, 입맛이 국제적으로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때 수입한 외국의 신문물 초피를 신라사람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사실 도서관에 달려가 조선시대와 근대의 음식, 요리에 관한 3,40여권의 책을 훓어보고, 중국의 음식문화사에 관한 책 몇권을 훓어보아도 지극히 사소한 이 의문은 없더군요. 그런 까닭에 국내 최초^^의 가설이 되겠습니다. 문외한이라 오류에 그치더라도 재피에 대한 애정으로 보아 주시압.
오늘 우리를 이끌 책은 주영하 교수의 "음식인문학"입니다. 2010년대 중반까지 나온 주영하 교수의 책은 거의 다 구입하고 대강은 읽어본 것 같습니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등산사를 바라보는 데에 시사하는 바가 커서죠. 그의 책 중 "음식인문학"은 학술논문 모음집인데, 오늘 새로이 펼쳐보니 아니나 다를까 '고추와 산초, 재피'에 관한 좋은 글이 있더군요. 수십여권의 음식관련 책 중에 거의 유일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몇몇 구절에 문외한이 보기에 아쉬운 구절이 있어서 대목대목을 짚어볼까 합니다. 그 와중에 답을 제시하겠습니다.
'원래 진초는 다른말로 촉초, 애초, 죽엽초라 불렸으며 오늘날 한국에서 '천초'라고 불리는'이라고 하고 있는데 글쎄요.
초피 또는 산초라고 불리지, 일상생활에서 천초라고 부르는 이는 한명이라도 있을까요?
주영하 교수는 한참 천초와 촉초 진초, 에 대해 설명하고 마라탕의 주 향신료가 화자오(화초)인 걸 잘 알고 있을텐데 막상 마라탕의 매운 맛을 고추와 산초라고 하고 있습니다. 대관절 이건 무슨 까닭일까요? 검색해보니 그는 마산출신이더군요. 그런데도 '산초'라고 하는 건 의아한 일입니다. 재피를 어려서 먹지 않았을까요?
한국에서 기름을 내는 또다른 나무 '산초'는 수도권이나 지방 어디라 할 것 없이 '산초'라고 합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이 의문을 갖지 못하고 있는 걸로 보입니다. 나중에 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주영하는 황당하게도 추어탕에 넣는 향신료를 재피도 아니고 초피나무도 아니고 촉초도 아니고 천초도 아니고 '산초'라고 하고 있습니다. 수도권의 문외한(^^)들하고 입장을 같이하는 거죠. 그리고 그 근거도 황당합니다. "후에 고추가 들어와 재배되면서 이것은 다시 산에서 나는 매운 것이란 뜻으로 '산초'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http://dh.aks.ac.kr/sillokwiki/index.php/%EC%B2%9C%EC%B4%88(%E5%B7%9D%E6%A4%92)
지금 이 사이트의 이 글은 주영하가 썼다고 하는데, 글쎄요. 새롭게 안 사실도 있고 오류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있습니다.
왜 산초라고 했을까에 대한 제 짐작은 이렇습니다.
통일신라 시대때 재피(천초)가 들어왔고, 국내에서 재배가 시작됩니다.
그때 조선의 산에는 어디나 할 것없이 그때까지는 눈여겨 보지 않았던, 재피와 거의 유사하게 생긴 식물이 있었던 거죠.
그걸 '산에서 자라는 초'라는 뜻으로 산초라고 불렀을 거라 봅니다.
'산'이라는 접두어는 산구절초, 산부추 산수국 산오이풀 -언제적 명명인지는 모르지만 - 등에도 사용됩니다.
천초와 유사하지만 다르게 생긴 나무라는 뜻이죠.
후추와 천초를 지나 고추를 만나다.
이 구절은 조선시대 고추의 도래를 설명하면서 흔히 하는 문구입니다. 사실일까요?
고추가 들어오기전 천초(재피)를 김치에 넣었다라고 하는 것 역시 흔한 문구입니다. 사실일까요?
글이 길어져서 따로 블로깅 해야 할 부분이라 여기서 간단히 말하면.
재피는 조선시대 수도권 사람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첫째로 향신료를 좋아하지 않은데다, 수도권에는 재피가 없습니다.
책에 '재피'를 음식에 넣는다라는 구절은 대체로 중국의 음식관련 서적의 인용에 불과한 걸로 보입니다.
둘째, 후추와 천초를 지나 고추로 라는 타이틀은 사실이 아닙니다.
1940년대까지 음식관련 책들- 당연히 양반계급의 남여가 기술- 을 보면 놀랍게도 이렇습니다.
들어갈 곳은 거의 모든 음식에 수입산 후추가 들어갑니다.
천초는 거의 들어가지 않고요.
고추도 역시 후추와 비교되지 않습니다. 몇몇 음식에 그것도 소량을 넣습니다.
이 책들에는 한국인의 소울향신료인 마늘도 극히 미량을 넣습니다. 지금 우리가 먹는 거와 비교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이게 진실입니다.
고추는 1940년대까지 요리책을 통해서 보면 결코 후추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주영하가 말하듯이 "후에 고추가 들어와 재배되면서 이것은 다시 산에서 나는 매운 것이란 뜻으로 '산초'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라는 건 애시당초 말이 안됩니다.
재피가 서울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적은 글쎄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후추는 서울양반들의 입맛을 사로잡았고요. 당연하죠. 후추는 낯선 이국의 문물이고, 재피는 저 지리산 촌닭들이 먹는 거니까요. 그리고 고추는 해방되기 전까지 얼마나 대중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 어림짐작으로는 고추는 해방 후 본격적으로 우리의 입맛을 잡은 걸로 보입니다.
까닭중 하나는 주영하가 말하듯, 재배하기 쉽고 살균효과도 좋고 등등의 이유도 있겠고요.
제생각에는 세계 최빈국이던 시절이라 해방전처럼 후추 수입을 못해서일 가능성도 큽니다.
마늘은 삼겹살로 통칭되는 고기문화가 아니었다면 - 우리는 마치 야채먹듯이 먹죠 - 지금도 김치나 찌게에 소량을 넣는 향신료 역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거라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지금 북한사람들은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 재피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끝내면서 오늘의 질문에 답하겠습니다.
화초를 중국에서는 화자오라고 한다죠. 그렇다면 '초'의 발음은 '자오'가 될 것입니다.
물론 천년전 당나라 장안의 발음이 어떠한지는, 지금 시안 사람들의 발음이 무엇인지 저로서는 알 수 없고 궁금하기 그지 없는데요. 어쩔 도리가 없으니 일단 대강 '자오'라고 합시다.
한자로 초피(椒被)는 그렇다면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바로 '자오피'가 됩니다.
새로운 문물은 원어 발음 그대로 수입되기 쉽습니다.
신라시대 사람들은 이를 어떻게 발음했을까요? 빨리 발음하면 어떻게 될까요?
재피가 될 수도 있겠고, 좌피 조피가 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재피'라고 읽었을 거라는 데 걸었습니다. 문외한이지만 '아'발음이 '애'되는 게 많을 듯 합니다.
당장 '자미'가 '재미'가 되듯이.
도서관으로 혹시 몰라 달려갔더니....
주영하 교수의 글의 각주 중 초'椒' 발음을 '지아오[jiāo]'라고 하는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자오가 아니라 '지아오'이군요.
그렇다면 초피는 '지아오피[jiāopí] '라고 발음될 것입니다.
이건 아무래도 '재피'에 가깝게 발음되지 않을까요!!!
다시말해 신라시대 사람들은 한자로는 椒皮라고 쓰고, 읽기는 지아오피, 재피라고 했던 겁니다.
재피라는 발음이 당나라 원어에 가깝고, 실제 신라시대때부터 표준어가 되는 거죠.
지금 경상도 사람들의 발음은 '뚝심껏' 그 원어를 고스란히 유지해 오고 있는 거고요.
지리산 너머 전라도권에서 '잰피, 잼피'라고 하는 것은 재피의 사투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초피(椒皮)는 무엇일까요?
조선시대 음식관련 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발음은 조선시대 수도권 양반들이 椒皮를 지금 우리들 처럼 한국식 발음을 한 것에 불과하고요.
천자문의 첫글자 天을 중국은 티엔이라고 하죠. 일본은 텐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천이라고 발음하죠.
초피椒皮)라는 발음은 중국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한국식 발음에 불과합니다.
중국과 교류한 경주인들의 발음이 재피이고, 천자문을 읽은 조선시대 한양양반들은 초피라고 한다는 것
이상 글이 길어졌고, 두서없지만 재피에 관한 '낯선' 이야기였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꽤 재미있는 잡설이라 자부^^하는데, 읽기 난삽할 듯 해서 글을 줄이고 줄여야겠네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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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서관으로 달려갈 게 아니라, 네이버 사전을 보니 '지아오'라고 읽네요^^.
그래도 덕분에 여러 책을 살펴보게 되어 다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