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피 vs 재피 5 - 초피는 표준어, 재피는 사투리일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3. 18. 09:28

 

재피에 관한 글3을 올리고나서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 유레카를 외쳤다.

글은 힘이 있어서 일단 글을 쓰놓고 나면, 그게 또다른 실마리가 되어 이어지는 게 정말 맞다.

 

오늘은 '초피는 표준어이고 재피,젠피,조피는 사투리'라는 항간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알아보겠다.

이 글 역시 재피를 좋아하되 사투리라며 주눅들어 있던 재피애호가들에게 홀가분함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제목하여 "천년의 역사를 지켜온 '재피'를 복권시킨다"이다.

 

황교익이 누구인가. 이땅의 천일염 만능론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치킨공화국에 균열을 내고 등등.

그가 조선일보에 "황교익 먹거리 파일"이라는 제목으로 쓴 이 글은 추어탕과 재피 커넥션에 관해서 그러니까 재피와 초피 그리고 산초에 관한 한국인의 보편적인 인식을 대변한다. 

 

추어탕집에만 가면 흑갈색 가루 때문에 한바탕 혼란이 인다.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
초피가 맞다. '조피, 젠피, 제피 등은 사투리이다. 그러면 산초는? 산초는 또다른 식물이다.

황교익 등 음식 전문가들 뿐 아니라 인터넷에서도 한결같다. 

 

서울사람들(누구를 서울사람들이라 지칭하는지는 산초VS재피3을 보시면 된다) 은 사실 맛도 모르면서 '초피'라 부른다.

그래도 헌법상 서울사람들의 말이 표준어라고 한다면, 초피가 표준어가 맞겠다.

그러나 자명해 보이는 이 문장도 재피역사가 1000년이 훨씬 넘는다는 걸 안다면, 진실의 결은 조금 달라질 것이다. 

의외의 사실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지옥의 묵시록'에서 '미국-선, 베트남-악을 확신하고 있던 마틴 신은 그러나 미국을 배신한 말론 브란도 대령을 죽이러 가는 도중에 점점 혼란에 빠진다.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이를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드는 안개로 표현했다고 한다.

 

이제 재피의 아련한 맛처럼 진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으로 천년의 역사를 되짚어 보자.

커피를 놓고 그러하듯이 한국에서 가장 이국적은 향신료라고 할 재피에 대해 조금의 애정을 갖고서.

 

어디서 보았는지 모르지만, 어느 통계에 의하면 조선의 한양인구는 20만인데 통일신라시대 경주는 50만이라 한다.

국제도시 경주가 이랬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우선 넌센스(?) 퀴즈 부터 풀고 가자.

 

초급 한자어 一, 二, 三이 있다.

조선시대 한양의 양반네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그로부터 거의 천년전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귀족들은 어떻게 불렀을까?

 

그 답은 모르긴 몰라도 이럴 것이다. 조선양반들인 일, 이, 삼으로 읽고 경주귀족들은 니,얼,싼 으로 말이다.

왜그럴까?

 

 

이승훈 교수의 어느 책에선가, 진실일지 아닐지 하도 궁금해서 잊혀지지가 않는데, 기억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때에는 단 한명도 중국유학생이 없었다는 주장이 말이다.

 

그렇든 아니든, 삼황오제로부터 모든 전거를 꿰뚫고 한문은 조자룡 칼 휘두르듯 하는 박지원이 중국에 갔더랬다. 놀랍게도 박지원은 중국어를 입도 벙긋 못했다. 겨우 필담을 나눌 뿐이었다.(확신은 못함) 그런데도 열하일기를 남긴다는 것은 조선시대 한자어 교육이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대문장가도 이,얼,싼도 발음을 못했을 것이다. 그저 천자문에 씌여 있듯이 '하늘 천(天) 땅 지'하면서 주구장창 500년을 보냈다. 알다시피 중국어로는 발음이 '천'이 아니라 '티엔이다. 심지어 일본어도 천을 '텐'이라 발음한다.

 

한편 통일신라는 어떠했는가. 중학교때 배운거라 가물가물하지만 중국에는 신라방이라는 코리안 타운도 있었고, 유학생과 유학승이 줄을 이었다.   견당유학생, 도당유학생이라는 말이 있다. 검색해보니 특히 유학기간이 10년이고 전액 국비 유학생만 해도 동시에 100명씩이었다니, 자비 유학생은 또 얼마였을까. 경주시내에서 중국어는 어렵지 않게 통했을 것이다. 니,얼,싼이다.

신라시대 동경은 지금의 서울 강남쯤 될 것이고, 조선시대 한양은 지리산 밑 진주시쯤 된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호프집에 가서 진주시민들은 '사라다' 더 주세요. 강남은 '샐러드' 리필해주세요.

경주는 국제도시였고, 한양은 봉쇄된 게토도시였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지금 우리가 논하는 향신료의 한자어 '椒皮'를 '초피'라 읽는 건, 중국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500년내내 폐쇄국가였던 조선양반네들이 자기 마음대로 발음한 것이다.  그들은 실제로 초피라는 향신료를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어려서부터 배운거라고는 한국식 한자어 발음이니 椒皮'를 초피라고 읽었다.  (초피와 후추 그리고 고추의 상관관계는 다른 글로 상상해보겠다.)

 

 

 블루보틀이라는 커피가 있는가 보다. 지금 이 사진은 그 커피 매장이 성동구 성수동이라는 골짜기에 생겨난 첫날 모습이다. 으픈시간은 8시보다 한참 전인 새벽3~4시부터 줄을 섰고, 하루종일 평균 4시간 이상을 줄을 서야 했다고 한다. 쉐이크쉑버거는 햄버거 가게는 30도가 넘는 떼약볕아래 1시간 넘게 줄을 섰고. 마카롱이라는 것도 그러하고. 이런 걸 못본척하면 고구려 평양사람이고, 혐오하는 이들은 조선한양의 양반이고, 좋아하는 이들은 신라 경주사람이다.

 

세련된 국제 오렌지족이었던 통일신라 경주의 젊은이들은 당나라 장안의 거리를 그리워하고, 향신료가 가득한 당나라 음식의 향기를 즐겼을 것이다.  '椒皮'를 무엇이라 불렀을까?

 

그건 중국 당대 당나라 장안의 발음이었을 것이다. 지금 서촉지방의 발음하고도 또달랐겠지만, 서촉지방은 어떻게 발음할지 궁금하다. 그나마 현대 중국어로는 어떻게 발음하는지 알 수 있다.

먹어보지는 않았지만, 다행히 마라탕에 감사를. 마라탕에 들어가는 같은 얼얼한 맛을 내는 초(椒)과인 화초(花椒)를 화자오라고 발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초(椒)를 ''자오'라고 하는갑다. 피(皮)는 피일테니, 초피(椒皮)는 자오피라고 발음된다.

'자오피, 자오피' 이를 빨리 한국어식으로 하면 어떻게 발음이 될까?

 

조피 또는 재피가 되지 않으려나.

나는 재피에 가까운 음이 아닐까 생각했다.

1000년도 훨씬 전 경주귀족들은 '재피'라고 했을 것이고 이 발음은 오렌지가 아니라 아륀지인 것이다!

이게 자전거를 타면서 든 '유레카!'였다.

살아가다보면 한번도 안올지 몰라. 이런 순간이....

 

이제 이를 국어 음운학적으로 확인해보아야 할 일이라- 가능할 리도 없지만 - 도서관으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그리고 엉뚱한 책 - 아니 내가 2010년대 중반까지 거의 모든 책을 소장한 주영하 교수의 '음식인문학'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

 

각주에서 초(椒)를 '자오'라기보다는 '지아오'가 좀 더 현지음일거라는 짐작을 하는 부분을 만났다.

재피를 뜻하는 중국어 진초를 친지아오. 번초를 판지아오라고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면 초피는 '지아오피'로 읽게 된다.

'지아오피', '지아오피'를 빨리하면 어떤 발음이 될까.

 

 

빙고!

바로 '재피'가 된다.

마치 다빈치 코드처럼 1000년의 비밀이 풀렸다.

 

지리산은 벌써 그 시절부터 가장 질좋은 향신료의 산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우리 고향에서는 재피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지금 지리산쪽 경상도 권역에서 말하는 재피가 천년도 전 경주인들이 말했던 발음 그대로이고, 그 발음은 황해 너머 당나라 장안사람들의 발음이라는 사실.

 

지리산 서쪽 전라도권에서 부르는 '잰피'는 재피의 사투리가 되시겠다. 관련서적을 보면 이런 변화가 없지 않을 것이다.

 

어때. 이정도면 하나쯤 있어도 좋을 가설 아닐까?^^

다빈치 코드에서 템플기사단이 지키는 성배는 술잔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씨앗을 잉태할 성서로운 '배'였다.

재피먹는 촌놈들, 재피가 뭐냐 초피지라는 말을 들으면서 천년의 세월을 지리산에서 지켜온 그들이야말로

조선판 템플기사단이 아니겠나.

 

이제 정리하자.

재피라는 말은 '초피'라는 말과 관계없이 1000년전 국제어이자 한반도 표준어였다.

'재피'는 당나라를 중심으로 인도, 일본 등 전세계가 공유하던 국제표준의 입맛이었다.

 

당시 세계 중심인 당나라 문화와 활발히 교류한 경주인들이 재피를 지리산이라는 최적의 재배지에 가꾸었다.

지리산권 농투성이들은  무식하게 '불사이군'을 외치며 재피를 키우고, 사투리라 무시당하며 재피라는 말을 지켜왔다.

천년의 세월을 말이다.

이게 어디 쉬운 일이었겠는가.

' 이거 니가트먼 하것나', ' 아재, 재피지 말고 저 구석에서 재피 키우소' - 이거 사투리 아니고 당나라 장안말이라는 거.

 

 

초피라는 말은 그로부터 400년 지나 초피의 '초'도 모르는 한양 양반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발음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 초피=표준어, 재피-사투리라는 단순도식을 극복합시다.

진실이 구름걷힌 달처럼 또릿하니 지리산을 갈 때 고개한번씩들 숙이소.

이 이야기는 흘러 들을 일이 아니다.

하늘은 무심하지 않아서 이 모든 것을 준바해 놓았으니.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이 있다.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이용기가 지은 한국요리책이며 한국 최초로 요리책에 색을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1924년 출간된 이후 재판을 거쳐 다시 6년 만인 1936년에는 증보판이 찍혔고 1943년에는 4판이 나올 정도로 인기 요리책이 되었다.

 

1936년 증보판이 2019년 영인되어 세상에 등장했는데. 

놀라워라. 936년 신라 멸망후 딱 1000년이라니.

이 책에 아마도 제일 처음 '재피'를 '초피'니 '천피'니 하지 않고 '재피'라고 하고 있다.

 

 

이상 재피냐 초피냐에 대해,

재피를 좋아하되, 재피가 시골입맛이고, 재피는 사투리라 주눅들던 이들에게 한여름 지리산 능선에서 마시는 찬물같은 글이길 기대하면서 끝맺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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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백제권역의 사람들은 재리를 좋아하지 않는 듯 하다.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했으니 그럴 듯 하다. 이 부분도 역시 통일신라때 재피가 대 유행했다는 정황증거가 아닐까 싶다.

상상은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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