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춘화의 "설악산 메아리"를 소개합니다.

카테고리 없음|2019. 12. 26. 21:27

'자다가도 벌떡'이라는 말이 내게도 있습니다. 산이야기가 나오면 말이죠. 그 중에 설악산 이야기. 설악은 한국의 산들 중에 좀 유별난 곳입니다.  예전말로 '명산대찰'이라고 하는데, 설악산은 명산이긴 하되 그 급에 맞는 '대찰'은 없습니다. 교통이 불편하다보니 설악에는 조선의 역사꺼리도 그리 없죠. 이렇게 역사도, 종교도 그리고 남북의 이데올러기도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점에서 '근대의 산'에 가장 부합합니다. 어쩌면 유일한 산이죠.

 

비록 설악의 골골, 암릉과 암벽을 남만큼 올라보지 못했지만, 고등학교 수학여행 때 졸다가 깨어나 안개비속 외설악 침봉을 맞닥뜨리며 난생처음으로 생겨난 경이감이라는 감정만으로도 설악은 충분합니다. 아래는 설악에 대해 감사를 표할 겸 1975년 당대 최고의 가수 하춘화가 취입한 '설악산 메아리'의 앨범 자켓을 소개합니다.

 

좌측상단, 라벨에 가려 안보이지만 '속초에 심은 사랑', '설악산 메아리'라고 적혀 있습니다. 1975년 5월 16일 지구레코드공사(이후 지구레코드사)에서 발매되었는데, 한마디로 속초와 설악산에 대한 헌사임을 곧바로 알게 됩니다.

 

 

하춘화는 뭐랄까 2퍼센트 부족한 미모라고 생각해왔는데, 설악산 메아리라는 노래를 불러서인지, 이 자켓의 얼굴은 국가대표급 얼굴이라고 사료^^됩니다.

 

가사는 이렇습니다. 경쾌한 설악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설악산 메아리 / 고봉산 하춘화  (김령인 작사)

흰구름 덮힌 설악산으로 그대와 손잡고 
휘파람을 불면서 하이킹 가자  진달래 철쭉꽃 우리들을 부른다
레이 레이 레이호  레이 레이호 
산메아리 들려온다 사랑노래 들린다
시원한 폭포수가 노래를 합창하면  오색의 무지개 핀다
그대와 손을 잡고 설악산 찾아가는  즐거운 청춘 하이킹

형제봉으로 마등령으로 즐거운 하이킹
콧노래도 흥겹게 설악산 가자  에델바이스가 우릴 부른다
 레이 레이 레이호  레이 레이호 
산새들이 노래한다 흰구름이 떠있다
금강산 찾아가다 설악산 봉우리된 전설의 울산바위로  발걸음 가벼웁게 비선대 찾아가는  즐거운 청춘 하이킹 

 

1975년 국가대표 명승지가 된 설악의 컨텐츠를 잘 보여줍니다.  물론 전근대사회에도 김창협선생 등 설악을 찾은 이들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백담사쪽인 내설악이고요. 외설악은 분단 이후에야 비로소 생겨났습니다. 이 노래는 바로 그 사실을 증명합니다. 오색과 외설악을 이야기 합니다.

 

 

 

속초에 심은 사랑'보다 설악산 메아리는 제법 인기를 끌었다고 하죠. 속초KBS의 한 프로그램에서 시그널 음악으로도 씌였다고 임수철씨가 '임수철의 돌직구 음악비평<4> / 속초 관련 음악들이지만'라는 기사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앨범 뒷면에 두장의 사진이 있습니다. 1975년 속초항구의 모습입니다. 저 뒤에 모래사장에 있는 집들이 모르긴 몰라도 월남한 이들이 모여선 청호동아 아닌가 싶습니다. 1975년 당시에도 초가집이 없는 걸 보면, 이곳이 한벽한 어촌이 아니라 꽤 유복한 상태가 아닌가 짐작하게 합니다.

 

이 사진은 '속초에 심은 사랑'을 보여주려는 의도이겠죠. 이 음반은 속초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것이라고 엄경선씨가 말합니다. 속초와 설악산을 사랑하다보면 엄경선씨를 모르면 간첩입니다. 네이버에서 하춘화 설악산 메아리를 검색하면 그분이 이 앨범에 대해 쓴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악산 메아리'를 대변하는 사진 한장. 바로 흔들바위입니다. 노래 가사에는 '울산바위'가 있지만, 사진은 흔들바위라는 게 의미심장합니다. 울산바위는 1968년 또는 1969년에 개통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계단길 스릴을 주었죠. 그러나 1975년 당시만 해도 설악을 대표하는 상징은 바로 이 흔들바위였습니다.

 

그시절 산에 올라가서 무엇을 보아야 할지 잘 몰랐던 시절입니다.  무엇을 조망한다는 것은, 산이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지만 사실 '학습'되어야 가능한 근대화된,문명화된 작업입니다. 대신에 흔들바위는 그자체로 스토리가 있고, 눈에 쉽게 각인대는 대상인 거죠.

 

지난 40여년동안 한국인들에게 설악산은 흔들바위에서 --> 침봉과 대청봉 --> 산양과 환경 생태의 이미지로 변화해 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다른 한 축은 권금성 케이블카에서 여전히 오색케이블카로 지속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이제는 꿈이 이루어져 비행기를 타고
사막도 바다도 다녀봤지만, 나는 지금 다시
그 삐걱대는 다락방에 가 머물고 싶다.
아주 먼 데서 찾아왔을 그 사람과 함께 누워서
덜컹대는 기차 소리를 듣고 싶다.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를 듣고 싶다.
낙타와 고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다.
                                                                        -「역전, 사진관 집 이층」

 

 

 

세계 유수의 산을 다녀온 이라도 설악산에 대한 이미지는 신경림 시인의 시와 같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물론 안가보았지만, 뭐 안가본다고 모르나요^^ 설악산이 기림받아 마땅한 산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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