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은 과연 백두산을 올랐을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3. 23. 22:44

"백범일지"는 두번 정도 읽은 것 같다.

다 잊어버렸지만 이후 '등산운동'하고 인연이 맺어질려고 그랬는지,

김구선생(이하 존칭생략)이 백두산을 지나가는 장면의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나무는 하나를 벤 그루 위에 7,8명이 모여 앉아서 밥을 먹을 만한 것도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내가 본 것 중에도 통나무로 곡식 넣은 통을 파느라고 장정 하나가 그 통 속에 들어서서 도끼질을 하는 것이 있었다.

장관인 것은 이 산봉우리에 섰던 나무가 쓰러져서 저 산봉우리에 걸쳐 있는 것을 우리가 다리 삼아서 건너간 일이었다.

 

이 세 문장은 등산에 빠지면서 친구들에게 자주 들려준 이야기였다. 다들 실제로 믿는 것 같지는 않아도 재미있어했다.

첫번째와 두번째 문장은 '과장'일 것이다. 그래도 조선인들의 구술문화에 익숙한 지라 그런 과장도 이해할 만 하다.

그런데 이런 과장, 뻥을 치는 것도 사실 독립운동가로서의 김구가 어떤 성격인지 사알짝 드러낸다.

 

세번째 문장은 나는 진실로 믿었다.

'침봉사이에 나무가 쓰러져서 다리가 되었다'라는 구절 말이다.

백두산 주변과 압록강 주변은 그럴 것이라고 진실로 믿었다.

 

그런데 백두산에 관한 자료들과 압록강 경계 풍경에 대한 자료들을 접하면서 이 구절은 사실이 아닐거라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도 차마 김구선생에 대한 불경일 것 같아 그냥 그러려니 묵혀 왔는데,

 

어디선가 '백범일지'가 사료로서의 가치도 적고, 김구가 직접 썼는지도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는 말을 듣고, '백범일지 진실'이라는 검색어로 구글에서 검색해 보았다. 나야 잘 모르는 분야라 이 이론이 그런가만가 싶다만,

백두산 부분을 보자면, 과연 그가 백두산 근방을 지나쳤는지 의심이 든 게 불경스러운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다.

 

 

김구의 행로는 이러하다.

백두산을 오르려 하다가 동네사람들이 마적이 있으니 돌아가라고 했다고 한다.

 

관련 원문은 이러하다.

 

쉬운 글을 보자.

 

험산준령이 아닌 곳이 없고. 어떤 곳은 7,80리가 무인지경이라 아침에 점심밥을 싸가지고간 적도 있다.

 

 

이 구절도 의심스럽다.

7,80리가 무인지경이라는 구절, 30km에 해당하는데,

이런 길은 평지길이라면 모를까 숲길은 불가능할 것이다.

숲에 길이 놓여져 있지 않다면 아예 불가능할 것이고.

 

그런데 지리산을 보자 사람들이 그렇데 다녀도 길을 찾기 어렵다. 그런데 백두산 지역이 그럴까.

지리산도 하루에 30km를 갈 수 없다.

그런데 김구는 어떻게 가능했나. 그건 그 동네가 경사가 가파른 게 아니라 평탄한 지역이라는 걸 말할 것이다.

 

그런데 곧바로 김구는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에 거대한 나무가 걸쳐져 있다고 했는데,

이 또한 계곡 사이라고 완곡하게 해석하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봉우리와 봉우리 사이라고 했는데, 사실 그런 침봉사이에는 큰 나무가 없을 것이고

요즘 공개된 압록강 자료들을 보면 알겠지만 압록강 수변은 그런 침봉이 없다고 본다.

 

 

백두산행....

 

김구가 백두산 권역을 가지 않았다고 본다.

 

중국대륙을 전전하면서 임정 독립운동가들은 그 험난한 시절을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고통을 이겨냈을까?

많은 이야기에는 현실의 난국을 헤쳐나가고 서로의 의기를 북돋아주는 이야기도 있겠지만,

서로가 듣고보고했던 이야기를 재미있게 재구성해서 하고 했을 것이다.

즐거운 이야기에는 고통을 이겨낼 힘이 있으니까 말이다.

김구는 백두산에 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었을까.

 

사실 그렇게 짐작하는 이유에는 이런 것도 있다.

갔다고 한다면, 그곳에서 비참하게 사는 화전민들을 긍휼히 여기는 구절이 반드시 있었을거라 본다.

그는 글에서 그쪽 인민들이 순박하고 먹을 것이 풍부하다고 .등등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사실 비참했다고 본다.

오늘은 여기서 추정에 그치지만, 누가 옳은지.뭐 자료를 찾지 못할바도 아니다.

 

갔다고 한다면, 사실 그의 인민을 바라보는 시선이 평범한 여행객 수준에 불과하고,.

새로운 근대를 준비하는, 새로운 세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부를 했다기보다는,

전근대적 - 과장이 심한 -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백범일지의 나머지 부분, 내가 알지 못하는 분야-에서도 글이 이렇지 않을까도 싶고.

 

뭐 이런 이야기

그 시절 조선인의 피와 목숨과 정조를 유린하는 것은 떼놈이 아니고 같은 동족이라는 사실은 놀랍지도 않다.

짜증.

 

*시간관계상, 자료를 조금 더 보강하여 올릴까 한다.



출처: https://re-rock.tistory.com/560 [등산의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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