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조선인들이 본 산악영화는 무엇이었을까
짐작하기 쉽지 않은데,
헐리우드와 유럽의 영화도 곧바로 일본과 경성에 수입되어 호흡을 같이 했다.
1920년대 일본이 수입한 독일영화만 해도 자그마치 305편이나 된다. 일년에 30편씩이라니. 이게 사실입니까?
그 중에 산악영화들이 있다.
20년대 말부터 그 유명한 아놀드 팡 감독과 레니 리펜슈탈의 산악영화들에 일본은 열광했다. 어떤 영화들인지 한번 보자. 식민지 조선에서 이른바 양정고보산악부 등 조선인 산악운동이 꽃핀 것은 빨라도 1930년대 중후반이니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사하는 바가 없지 않겠다. 이런 영화도 초창기 조선인들의 등산붐을 촉발했을 것이다.
그 시절 어떤 산악영화가 개봉되었는지, 결론만 빨리 말해도 좋지만, 뭐 이런 주제는 시의성이 있다거나 시민대중이 관심을 끌 꺼리가 아니니 천천히 놀멘놀멘하고자 한다.
오늘 우리를 가이드할 책은,
1979년 산악연구회라는 곳에서 펴낸 "산의 마음"(山の心, 야마노 고꼬로라고 읽는다). 일출을 기다리는 모습이 인상적인데, 여기서 산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은유법이 아니라 산의 정수, 진수, 참다운 맛, 참뜻, 중심이라는 뜻이다.
그들이 생각하는 산의 진수(眞髓)는 과연 무엇일까?
1979년 놀랍게도 베이스볼 매거진이라는 야구잡지회사에서 등산핸드북 시리즈를 낸다. 당시 일본의 등산 붐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총 6권 중에 관심을 끄는 건 오늘 우리가 볼 제 4권 '산의 마음'에서 그들이 말하는 산의 정수는 문학, 미술, 음악,. 철학 사진 그리고 영화 등이다. 오늘날 우리가 그리도 강조하는 인문학인문학 하는 그게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제6권은 '산의 자료'편이다. 산의 자료에는 산책, 등산사, 그리고 세계의 산악단체 등등인데 아쉽게도 소장하고 있지 않다. 헌책방에서 샀는데, 누구인지 당시 4권만 사서 귀국했을리는 없을테고, 궁금하네.
'산의 마음'은 산악연구회라는 단체에서 만든 책인데, 보시다시피 저자들이 대체로 일본산악회 회원이고 대학교 교수이고, 다들 산악서적을 상당히 번역해본 이들이다. 우리나라 상황하고는 정확히 반대이다. 한국산악회 회원이면서 대학교 교수인 이가 얼마나 많을까 싶고, 그들이 등산서적을 한권이라도 썼거나 번역한 이 얼마려뇨. 우리나라에는 사실 기초자료가 없는 터라 남의 성취를 번역하는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빨간 줄 친 이는 일본산서회 창립멤버이자 현(?)회장인 미즈노 상이다. 한국산서회가 일본산서회의 교류를 하게 된다면 중심인물이 되겠다. 시절이 좋아진다면 언젠가 일본산서회하고 한번 정도 교류를 추진하고 싶다. 분명 한국산서회에게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참고로 미즈노상과 일본산서회에 대한 개괄은 다음 카페 등산박물관에 들어가셔서 '미즈노'로 검색하시면 좋겠다.
산과 문학, 산과 음악..등에 이어 제 7장은 산의 영화이다.
1. 초창기 산악영화, 2 일본의 산악영화, 3 해외 산악영화로 챕터가 이어지는데, 내가 거칠게라도 번역할 부분은 일제하 초창기 산악영화이다. 나머지 부분은 전문을 하단이 올려서 혹시라도 관심있는 분들에게 자료가 되길 바란다. 한자로 대강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테고, 혹시라도 애매한 부분은 댓글로 문의해주시면, 내 능력이 되는 거라면 번역을 해드릴까 한다.
산악영화는 순수한 기록영화로부터 반(半) 다큐멘터리, 산을 배경으로 하는 극영화 등 다양한 장르가 있다. 여기서는 특히 귀한 필름을 빼고 주로 상업용 극장에서 상영된 것들을 연대순으로 개관하고자 한다.
따라서 후쿠와라 프로 등이 찍은 수많은 영화와 각 원정대의 기록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1. 초기의 산악영화
1903년 오-미손 스미스가 알프스에서 촬영을 한 것이 최초로 산을 기록한 영화라고 여겨진다. 1911년 ....
시간관계상 중간생략- 막상 초역이라도 하려드니 카타카나로 적힌 외국어라 가볍지 않네요 ㅜㅜ
여기까지 번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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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프랑스 파리와 뉴욕에서 유행하는 패션은 먼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동시대적으로 조선에 수용되었다.
빠르면 한달 늦어도 석달 안에 도쿄를 거쳐 서울로 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식민지 조선이 뭐 살만한 나라라는 뜻은 아니고. 삼만불 시대인 지금도 롤렉스는 극소수만 찰 수 있었듯이 그때도 마찬가지. 뭐 그렇다는 이야기다.
* 日本におけるドイツ映画の公開 - 日本大学文理学部 를 검색해 볼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