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백두산에는 과연 비적이 있었을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4. 7. 22:41

일제하 백두산에는 한때 비적이 있었다.

비적의 정체에 대해 산악계 일각에서는 '공비共匪' 아니 '동북항일연군'으로 보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

 

과연 그럴까?

백두산에 비적이 있기나 했을까?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은 여러모로 재미있는 책이다. 식민지 조선의 영화에 관한 몇권의 책을 훓어 본 적이 있는데, 그 중에 제일 내 마음에 든다. 당시 산악계에 대해 이런 책을 쓰고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의 1장은 그 유명한 '망루의 결사대'를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다. '망루의 결사대는 1940년대 최고의 문제작으로 유튜브에서 ' 望楼の決死隊'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

 

'일본의 영원한 연인 또는 군국주의의 처녀'인 하라 세스코가 등장한다. 망루의 결사대는 당시 상당히 인기를 끈 걸로 보인다. 따라서 많은 조선인들도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따로 기술할까 한다. 아마 백령회나 영정고보 등 등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모두 보았을 거라 짐작한다. 

 

스토리는 1942년 압록강 남단의 일본인 국경수비대의 활동을 담은 군국주의 영화인데, 비적이 공격하여 온다.

오늘은 이 책의 한 챕터 -비적이란 무엇인가? - 의 주인공인 바로 그 비적이다.

 

193,40년대 해마다 여름이 되면 백두산 등행단이 조직되어 일본의 국경수비대의 호위아래 백두산을 오른다.

어떤 책에 의하면, 우리끼리 백두산에 가고 싶어도 비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본인들과 함께 올랐다고 하고 있다.

오늘 이 글은 1940년대 당시 백두산 산행기를 읽을 때 조금 더 현실감을 줄거라 본다.

 

애초에 비적이란 무엇일까?
비적-항일무장세력, 빨치산이라는 획일적인 이해가 적지 않다.

 

서대숙의 현대북한의 지도자-김일성과 김정일'에 따르면 만주에 있던 중국의 비합법 단체는 다양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서대숙은 김일성 연구의 일인자이다. 중국정부에서 보면 그들은 비적이다 비적 중에서도 마적 토적 공비 홍창비 등이라 불리는 일종의 테러 단체 같은 것이 다수 존재하고 있었다. 조선독립운동계열의 무장단체에도 몇몇 파가 있었다.
비적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기술이다. 공비도 테러 단체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 김일성을 찬미하는 여러 책들과 다른 점이다.

 

 

망루의 결사대에 습격하는 공비를 김일성의 빨치산이나 보천보 전투를 했던 이들과 동일시 하는 견해가 한국과 일본에도 있지만 이는 성급한 판단일 수 있다.

 

*참고로 위키나 나무위키에서 '보천보'로 검색하면 지금 이 일본인 저자의 입장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겠다.

 

 

그러나 만주 빨치산의 움직임은 내부 분열의 혜산사건(1937년)도 있어 쇠퇴국면에 접어들었다.

 

1940년 이후 동북항일연군의 주요 부대는 괴멸하거나 소련령으로 탈출하게 된다.

 

"쇼와 16년(1941년) 봄 부터 '만주국 내에서 비적은 찾아볼 수 없다'고 할 수 있을만큼 치안되 현격하게 나아졌다.

 

다시말해 망루의 결사대가 촬영된 1942, 3년 당시는 '비적이 없는'상태였다는 것이다.
조선군 보도부의 영화 검열이 '공비'의 등장을 그냥 지나치게 할 수 있을 만큼 만주 빨치산파는 쇠퇴하여 경시되고 있었다. 

 

 

또다른 자료를 찾아보아야 하겠지만, 일본의 연구자가 쓴 이 책을 보자면 1937년 보천보 전투 이후 사실상 만주의 빨치산 세력은 지리멸렬해졌다. 따라서 1940년대 백두산행과 함경도 여러 산을 오르는 이들이 '비적'을 운운하면 그건 해방 후 한창의 세월이 흐른 후, 자기의 등반을 과장하고자 하는 소설에 가까운 기록이 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적어도 1930년대 중반 이후 일제하 백두산 산행에 대해 짧게 요약을 하자면,

당시 백두산은 날씨문제로 7월말 한차례만 단체여행이 가능했다.

국경수비대가 호위를 했다.

백두산은 산세도 그러하고 어떤 의미로든 힘든 등반이 아니다.

따라서 나름 유세하는 이들이 비싼 돈을 내고 올랐다. 

백두산에는 짐꾼과 마부 등이 완비되어 있어서 그들은 개나리 봇짐만 메고 갔다.

당시 씌여진 산행기에는 '비적' 이야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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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위의 글 사이에 있는 페이지로 관심있는 이들에게 자료가 될까 싶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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