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 온조는 어떤 길을 따라 남하했을까? - 북한산 동쪽 vs 서쪽

카테고리 없음|2021. 4. 12. 19:38

오늘은 북한산을 부아악이라고 처음 부른 백제 시조 온조가 어떤 길을 따라 남하했을까를 한번 상상해 본다.

그 '길에서 서'면 북한산이 달라 보이게 된다.

 

북한산학의 선학들의 연구서에도 부아악이라는 이름이 무슨 뜻일지 깊이 참구하고 있다.

그런데 기억이 가물해서이겠는데,  온조가 어떤 길로 남하했는지에 대해서 적은 것을 보지 못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게 '북한산학'의 출발점이 아닌가 싶다. 

1번의 의주대로로 내려오다가 본 북한산하고 2번의 양주대로(?)에서 본 북한산은 전혀 다르게 보이고, 그만큼 '의미'도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무심코 이제까지 고려때의 대로인 '의주대로'를 따라 내려왔다고 짐작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닌게, 역시 사람은 사람을 통해 한걸음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와운루계회의 박기성선배하고 사방팔방 주유하는 산악계 이야기를 나누다가 -주로 듣다가 - 잠시 짬을 내어

"온조가 무슨 길로 남하했을까요?"라고 물었더니,

 

어랏. 의주대로가 아니라고 하네. 당시에는 임진강과 한강 하류는 강이 넓어 쉽게 건너지 못했다며. 연천의 전곡리 쪽으로 내려왔다고 한다. 역사적 증거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사정상 더 묻지 못해 아쉬웠는데, 돌아와서 검색해 보니 경향신문의 "연천군 백제 적석총과 온조왕" 기사에는 이렇다.

중학교 역사책에 나오는 연천군 전곡리 쪽 적석총 지대가 그시절 유적이라고들 한다.

"어머니(소서노), 형(비류), 10신(臣)과 함께 내려온 온조세력은 어느 길로 왔을까. 고대 교통로를 강계~함흥 길이라고 보고, 원산만 지역에서 광주산맥과 마식령 산맥 사이에 있는 추가령지구대를 통한 동북지방 경유설이 대세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동북에 아닌 서북, 즉 온조세력의 근거지였던 환인(졸본지역·서북쪽)~낙랑지역 우회~패수(예성강)~대수(임진강)를 건넜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왕(온조)이 강역을 구획했는데, 북쪽으로는 패하(浿河·임진강)를, 남쪽으로는 웅천(熊川·남한강 상류?)을 경계로 하였고, 서쪽으로는 큰 바다에 막혔고, 동쪽으로는 주양(走壤·춘천)에 이르렀다.”

 

이게 무슨 뜻인지 지도를 펴놓고 설명을 더 들었으면 좋으련만, 기회는 다음으로 미루어야겠다.

아무튼 중간정리삼고 또 다음에 무엇을 질문할지 명확히 하기 위해 지금 내가 짐작하고 있는 바를 기록을 해 놓는다.

 

위성지도에서 보듯이 연천군에서 동두천과 양주시 그리고 의정부시에 이르는 길은 외길이다. 

그리고 의정부 남쪽 사패산과 수락산을 사이에 두고 내려오면 좌측에 불암산과 우측에 북한산이 있다.

 

자. 여기서 온조 일행은 모험을 하게 된다.

마들평야가 넓어지고 여기서 온조일행은 어디에 도읍을 정해야 할지 높은 곳을 올라 보기로 했다.

만약에 오르기로 한다면 어느 산을 오르기로 결정했을까?

 

나라면 북한산이 아니라 불암산일 것이다.

북한산과 도봉산이 북방세력으로부터 지켜불 천하의 성채가 될터인데 그곳을 넘어갈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기성 선배는 예전에 어느 글에 잠간 쓴 적이 있다면서, 불암산 설을 주장한다.

'부아'가 뿔의 음차이듯 불암산의 '불' 역시 '뿔'가 어원이 같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 불암산에 올라가면 저멀리 풍납토성이 보인다고 한다.

위의 신문기사에는

"기원전 6년 삼국사기(온조왕) 기록이다. 백제가 기원후 100년도 안되어 고대국가가 아니면 엄두도 못냈을 풍납토성을 쌓았다."라고 적고 있다.

마찬가지로 풍납토성에서도 불암산의 바위가 잘 보이겠지.

풍납토성에서는 불암산이 어떻게 보일지는 모르겠는데, 지금 이 사진은 불암산 천보사 뒤쪽의 암봉이다.

 

박기성 선배가 한 말을 정확히 옮겨 온건지 모르겠지만.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경우 '북한산'에 대한 기존의 견해가 수정을 받을 수 밖에 없겠다.

 

다시 책을 찾아 펴보아야겠지만, 왜 북한산학 학자들은 온조가 어떤 길로 내려왔을까를 고민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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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이제까지 무심코 지나쳤는데, 부아악은 고려때 처음 불렸을지 아니면 백제시기에 명명된 것인지 궁금하다.

고려때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에 처음 나온다. 그런데 삼국사기는 기존의 사서들을 많이 참조했다고 읽은 것 같은데, 과연 부아악은 백제때 이미 명명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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