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미 세이이치와 이이야마 다츠오는 왜 평생토록 깊이 교유했을까?

카테고리 없음|2021. 4. 13. 18:48

이즈미 세이이치와 이이야마 다츠오는 평생 깊이있게 교유를 했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조선이 둘 모두에게 고향이나 다름없고 십대 때부터 조선의 산을 함께 로프를 묶고 오른 사이이기 때문일까?

일본으로 쫓겨간 후 세계의 오지를 함께 깊숙히 여행해서일까?

글쎄다. 그게 다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게 오늘의 주제이다.

 

오늘 우리는 이즈미 세이이치와 이이야마 다츠오의 놀라운 용기와 휴머니즘의 '일단'을 만나게 된다.

'백령회'라는 거미줄에 걸려서 보지 못했던 일제하 식민지 조선 산악계의 '달의 이면'을 보게 된다.

이즈미 세이이찌는 이제 한국산악계 깊숙히 들어왔다. 한국산악회에서 "아득한 산들"을 펴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식민지 조선의 산악계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되겠다.

 

저자 이즈미 세이치는 도쿄대 교수를 역임한 인류학자로서, 한국의 인류학계와도 교류가 많아 자주 언급된다.

일제하 제주도에 관해 필드워크를 했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이제 이 책이 나오면서 한국산악계에서도 그의 이름이 보통명사가 되고,

더이상 한국식 한자어 음인 '천정일泉靖一'로 불리지 않게 될 것 같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또 그의 이름을 발견했다.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군상"(전쟁과 근대의 동시대사)라는 책은 해방전후 조선의 영화계와 영화계를 대표하던 한일 감독과 배우들의 인생행로에 포커스를 맞춘 흥미로운 작품이다.

 

자료수집에 심혈을 기울인 모습이 역력하고 잘 읽힌다. 일제하 영화계를 조명한 한국인 학자들의 다른 책에서 보이는 어려운 용어와 현학적인 문장 그리고 깊이(?)의 강요와 미리 주제(!)를 정해놓고 이끄는 듯한 흐름도 없다. 

 

책날개에 저자 시모카와 마사하루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비교문명론으로 릿쿄대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마이니치 신문사 서울지국장.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 언론정보학부 객원교수를 지냈다.

 

그가 쓴 책으로는 "나의 코리아 보도", "망각의 귀환사"가 있는데... 망각의 귀환사가 재미있다.

 

"망각의 귀환사"의 부제는 "이즈미 세이이치와 후츠카이치 휴양소 忘却の引揚史ー泉靖一と二日市保養所"이다. 

이즈미 세이이치와 휴양소라... 이게 또 무엇이지?라는 생각으로 구글 문을 두드렸다.

 

그랬더니,

이런 표지가 뜬다.

 

아마존에서는 이런 문구로 소개하고 있다.

 

戦後日本の再生は、ここから始まる。
いわゆる戦争問題は、本土大空襲、原爆、沖縄戦を中心に語られることが多い。さらに、戦後史の重要問題として、「敗戦後の引揚げ」があるが、この問題はほとんど研究対象にならず忘却されてきた。本書は、戦後最大の戦争犠牲者=引揚げ者の苦難のうち、大陸でソ連軍等から性暴行を受けた日本の女性たちを救護(中絶処置、性病治療)し、戦後を再出発させた人々に光をあてた労作。さらに、その中心人物で、〈災害人類学〉の先駆者・泉靖一を再評価する。

 

번역은 이렇다. 의외로 직독직해가 되네.

 

전후 일본의 재생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소위 전쟁 문제는 본토대공습. 원폭, 오키나와전투를 중심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전후사의 중요문제로서 패전후 일본복귀(일본인들은 이를 인양이라고 표현한다)'가 있지만, 이 문제는 거의 연구대상이 되지 않고 망각되고 있다. 이 책은 전후 최대의 전쟁희생자인 인양자들 고난 중에서 대륙에서 소련군 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일본 여성들을 구호(낙태, 성병치료)하여 재출발을 하도록 해준 사람들을 조명한 노작이다. 게다가 그 중심인물로서 피해인류학의 선구자인 이즈미 세이치를 재평가한다.

 

사세보항으로 돌아온 일본인들은 139만여명이었고, 그 중에는 소련군 등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여자들이 상당히 많았다. 자료에 의하면 당시 일본은 낙태가 불법이라 의사들도 처음엔 낙태수술을 할 수 없었다 한다. 게다가 인양자들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무대책이어서 이 운동을 벌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후 최소 4,500여명에서 최대 1000명이 낙태수술을 했고, 이 사업의 핵심 인물로 이즈미 세이이치라고 한다.

 

놀랍게도 이즈미 세이이치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스스로 그 일을 자랑스럽게 내보인 인물이 없다고 한다.

 

しかも、泉をはじめほとんど全員が、自らの功績を語ること殆どなく一生を終えていったことに、すべての読者は深い感銘を覚えるはずである。

 

이즈미 세이이치의 책 '아득한 산들'에서도 말미에 잠간 언급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넘어간 걸로 기억이 난다. 놀라워라. 당시 패전국 일본은 진정한 의미의 각자도생 사회였다. 그 와중에 꽃핀 휴머니즘, 이런 게 '경이로운 인품' 아니겠는가. 

 

이즈미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書評『忘却の引き揚げ史』下川正晴著 弦書房"으로 검색하면 우리는 미처 알지 못한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방치되어 고통받는 일본인 여성들 등을 구조하기 위해 밀항을 시도한다. 당시 밀항은 당연히 불법이며 즉결처분(총살감)의 대상이었다. 이즈미는 미군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당당하게 자기의 입장을 밝힌다.

 

朝鮮半島出身で、博多・ソウル間の連絡を含め活動していた泉は、事態を打開するために、密航の罪すらいとわず朝鮮半島に渡り、資金調達や難民救援に参加した。しかし、当時日本から朝鮮半島への許可なき密航は当然違法、米軍に逮捕されピストルを突き付けられた。そのとき泉は、こう答えたという。
「戦争で負けるということは、こんなに悲しい情けないことか、ということをはじめて見て知った。同胞が死ぬか生きるかの瀬戸際の運命を背負って、裸同然で北朝鮮から南朝鮮へ逃げてくる。おぶわれて、たどり着く。歩けなくて、はってくる。薬と金があったら、この人たちの何人かが救われるのです。しかし今、ソウルの救済病院には一銭のお金もない。それを知っていて、黙って見殺しにできますか。もし貴下がその立場に立たれたら、やはり僕のようになさったでしょう。私は(朝鮮半島への)再渡航は罪になることも知って渡りました。どうぞ私に、どんな罪でも与えてください。潔く受けましょう。」
幸い、この米兵は泉氏の心情を理解し、そのまま釈放してくれたのだった。泉はこのような勇気と同時に、避難民の心に寄り添うような言葉で彼らに語り掛ける文章力をも備えていた。引揚船の中で配布された泉の文章には、具体的名情報と対策を過不足なく伝え、かつ、傷つけられた人々の心に静かに呼びかけるものとなっている。

나는 밀항이 불법인 줄 알고 왔다.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목적으로 왔고, 만약 당신이 나라면 지금 나와 똑같이 행동했을 거라 믿는다....

 

 

뭐 이런 사람이었네.

 

 

중간생략중간생략.

 

이제 이이야마 다츠오가 등장한다.

 

북한의 많은 여성 피해자들이 남쪽으로 내려왔고, 남한에서 그들을 구조하는 일을 이끈 인물들 중에 놀랍게도 '이이야마 다츠오'가 등장한다. 위키피디아에서 '二日市保養所'로 검색하면,

 

Seoul Group"と称しているが、医師も「活動家」も含んだグループとする。写真家の 飯山達雄が含まれるが、泉靖一の名は出されていない。山本良健医師は含まれている。

패전후 서울에서 일본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리는 일본인들은 스스로 이 사업을 조직했는데, 놀랍게도 이이야마 다츠오라는 이름이 이른바 '서울 그룹' 중에 제일 먼저 올라온다.

 

이이야마 다츠오는 1월경 일본으로 돌아가기 전 헌신적으로 고통에 사로잡혀 지푸라기도 잡아야 할 - 어느 전쟁이건 전쟁의 최고의 피해자인 여성과 아이들 - 이들을 돕고 있었다.

 

그리고 이전에 블로깅을 했듯이. 이이야마 다츠오 역시 일본으로 돌아간 뒤, 중국대륙에서 고통받는 일본의 고아와 여성 노약자들의 실상을 일본에 알리기 위해 가슴에 카메라 한대를 차고 밀항을 한다. 그리고 그 사진을 찍어 일본으로 돌아온다.

 

그들은 따로따로, 목숨을 걸고 가슴으로 '휴머니즘'을 위해, '비탄에 빠진 이를 차마 두고 보지 못하여' '의기투합'을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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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어떤 인물인지 이 짧은 글로 어떻게 진실을 알 수 있을까.

마는, 우리는 그동안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가. 

 

과연 이이야마는 인수봉 초등자이냐라는 '인수봉 초등'논쟁의 대상자로만,

김정태가 그러하듯이 한일간 초등 경쟁자로만,

일제하 일본인 산악인들 중 제일 바위를 잘했던 두사람으로만 접근하고 있지 않았는가.

 

이걸로 충분한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제까지는 이 틀이 산악계에서 상당히 중요했고, 나름 괜찮은 틀이었다.

어느 분야에서건 '편협하고 좁은' 틀에 얽매인 다는 것은 불행이고, 지금 우리가 혹 그런 처지는 아닌가?

누가 우리를 이 불행의 거미줄에 걸리게 했는가? 이제는 좀 더 넓은 틀을 찾으려 애써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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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즈미 세이이치에 관해서 이외에도....구 경성제국대학 관련 여러 글에서도 발견된다.

첫번째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읽을 수 있는데, 함경도 지방의 화전민에 관한 르포가 있다.

아쉽게도 무엇을 검색해야 그의 이름이 나오는지 지금 당장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번째 경성제국대학 내 여러 학생모임의 회지에서도 그의 글들은 발견된다.

1938,9년경 징병을 당해 중국에 끌려간 그가 전장에서 남긴 소회를 담은 시와,

다나카 선생이라는 이를 회고하는 단편소설 한편이다. 이건 나중에 덧붙여 올리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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