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등산이라는 건 쓸모없는 것에 가깝다
신현대의 "저산 너머"를 들으면서 뭔가 잡힐 듯하면서도 또릿해지지 않는 게 있었는데,
오늘 그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건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사실 등산이라는 건 쓸모없는 것에 가깝다.
먹고 마시고 입고 하는 일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하지만 세상이 쓸모있는 것들로만 채워진다면 그것 또한 괴로운 일이다.
여전히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이곳엔 많다”
신현대가 눈을 지긋이 감고 노래를 부를 땐.
히말라야로 이끄는 맹목적인 충동과 함께 쓸모없음이라는 등반의 본질을 겹쳐서 부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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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사족.
리오넬 테레이의 "무상의 정복자"에서 '무상의'에 해당하는 원어는 inutile, useless이다.
'댓가없이 또는 댓가를 바라지 않고'라는 뜻의 무상보다는 위의 시에서처럼 '쓸모없는'의 뜻이 정확하다.
지금의 문학예술계에서는 '무상(無償)'보다는 '쓸모없는'에 해당하는 '무용(無用)'으로 번역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 산악계 번역의 예를 따르고, 진작에 이 용어는 수입되어 있었기에 익숙한 '무상의'라고 번역을 했다. 기억이 흐릿하지만, 번역하신 김영도 선생님도 이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을 하신 듯 옮긴이의 글에서 '무용'과 '무상'에 대해 언급한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사족2)
오래전 리오넬 테레이가 이 책을 내자마자 거의 같은 해에 일본에서는 책이 번역되었다.
그 책의 독자들은 당시 일본의 현역의 산악인이었을 것이고, 그들의 피를 끓게 하고 등반으로 이끌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의 사후 50년이 흘러서 비로소 가능했다.
그동안 그 책이 번역되기를 기다렸을 청춘의 클라이머들은 모두 아재가 되고 할배가 되었다.
* 글이 시간에 쫓기어 쓰니 허둥지둥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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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서두의 시는 내가 한말이 아니라 김제형이라는 가수의 '노래의 의미' 가사 중 일부이다.
사족3)
근대는 '농 공 상'이라는 생계를 넘어서서 수많은 꽃을 피웠다. 따라서 문학계와 예술계에서도 자기의 행위의 의미에 대한 고민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일제시대때 글을 읽어보아도 그들은 문학의 '무용성'에 대해 깊이 고민을 했다. 그리고 무용하지만 밥벌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에 괴로워 했다. '등산이라는 건 쓸모 없는 것에 가깝다.'가 원래의 뜻일 것이다. 젠틀맨과 부르조아들이 알프스를 찾던 시절엔 말이다.
축구역사에서도 귀족들은 축구노동자들이 '축구'를 통해 돈을 번다는 '프로'를 혐오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 등반가는 거의가 프롤레타리아트들이다. 그들은 등산을 놓고 벌이는 이 언어유희가 담론으로 퍼져있는 산악계에서는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아마 전세계 산악계에서 우리나라만 이런 이야기를 주고 받을 것 같다. 오늘날에도 등산은 댓가를 바라지 않고 하는 행위어야 한다는 게 젊은 친구들의 머리 속에 있어서야 될일일까? 원정을 떠날 비행기 값조차 마련하기 쉽지 않은 판에 말이다. 쓸데 없다 그러나 댓가가 있으면 좋다. 이게 좀 더 건강한 마인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