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석은 왜 田部重治를 타베 시게하루라고 읽었을까요 2

카테고리 없음|2021. 5. 17. 20:52

일제 때 총독부는 전국의 읍면동의 명칭들을 바꾸었다.

식민지를 살았던 이들은 하나둘씩 기억이 흐릿해지고, 이제는 그시절 정확히 어떻게 불렸는지 모르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이를테면 충무로에 해당하는 본정(本町)이야 누구나 혼마치인건 알지만, 봉래정은? 봉익정은? 봉원정은?

한 단어에는 딱 하나의 소리(음)만 있는 우리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본어는 그정도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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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전에 '손경석은 왜 일본의 전부중치(田部重治)를 타베 시게하루라고 읽었을까요'를 블로깅했다.

타나베 쥬지라고 해야 하는데, 그가 타베 시게하루라고 지칭하는 데에는 어쩌면 우리가 불편할지도 모를(추정) 이야기가 숨어 있다.

그런데 한 페친님이 전부중치는 타나베 쥬지 외에도 타베 쥬지 또는 타베 시게하루라고도 불렸다고 말을 한다.

 

어랏! '시게하루'라고 불리면 내 가설은 나가리^^인데. 혹시 해서 검색을 해 보았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일본 그것도 100년 전 이야기를 헤집는 건 하등 쓸데 없지만 재미가 쏠쏠허니 적지 않다.

놀랍게도 한국의 이런 상황을 위해 일본에서는 미리 자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 결론은 이렇다.

일본에서는 중치(重治)라는 이름을 훈역해서 시게하루로, 음역해서 쥬지라고 부를 수 있다. 

오늘의 주인공은 스스로 타나베 쥬지 또는 타베 쥬지라고 불리길 바라고 있다.

손경석은 그런데 타베 시게하루라고 불렀다.

그가 타베 시게하루라고 불렀다는 것은 한국 산악계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다들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일본인들의 이름 읽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단 집의 책 중 전부중치에 관해 어떻게 불렸을까를 찾아보았는데, 1936년판 '산과 계곡'에는 한자로 전부중치로만 적혀 있고 어떻게 읽는지 적혀 있지 않다. 최근 책과 산악계 관련 사이트에서는 한결같이 '타나베 쥬지 たなべ‐じゅうじ'라고 하고 있다.

 

구글이 아니라 야후재팬에 들어가보니, 대부분의 사전에는 타나베 쥬지라고 하는데, 평범사에서 나온 세계대백과사전에스는 타베 쥬지(たべじゅうじ)라고 적고 있다. 타나카(田中) 수상에서처럼 전(田)의 훈독이 '타'이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겠다. 타베인지 타나베인지는 나중에 적겠다.

 

이제 논점인 타베 시게하루(タベ シゲハル)는 언제 등장하는지 보자. 전부중치의 시비 또는 기념비를 뜻하는 전부중치가비(田部重治歌碑)가 몇군데 있는가 보다. '시게하루'는 대체로 이렇게 몇몇 시비를 소개하는 관광관련 사이트에서 부르는 명칭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들은 실수를 한 듯 하다. 무심코 중치(重治)를 훈역해서 시게하루라고 한 걸로 보인다. 설령 시게하루라고 불렸다고 하더라도 이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쥬지'가 '시게하루'보다 앞선 이름일 게 뻔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소월시비는 있어도 어릴 적 이름인 김정식 시비는 없고 조지훈 시비는 있어도 그의 본명을 따라 조동탁 시비는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느 사이트에는 타나베 쥬지가 아니라 타나베 죠지라고 적혀있기도 한다.

타나베 시게하루 또는 타베 시게하루는 그를 제대로 부르는 이름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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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역사적으로 고증을 해보자.

1939년 대일본청년단본부라는 곳에서 펴낸 추천도서목록 중 지지 기행편의 처음은 '산길 여행'을 소개하면서,

저자 전부중치씨는 일본산악문학의 제일인자라고 소개하며, 비단 등산동호인들 뿐 아니라 시민들도 그의 책을 읽으며 산을 동경할 거라고 하고 있다. 전부중치는 1930년대 이런 산악저술가였다.

 

그런만큼 그의 책은 한반도에 적지 않게 수입되어 산을 좋아하거나 아니거나 식민지 조선인들도 애독했을 거라 한다.

1939년이면 식민지 조선의 전문산악인들도 한참 암벽등반과 동계 설산 종주에 몰입하던 시절이다. 그를 몰랐다고 한다면 조금 그렇다.

1935년 이와나미 문고에서 나온 '학습지도 연구'라는 책에 전부중치의 '상고지'가 소개되어 있다.

빙고, 여기에 1935년 당시 그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나와 있다. 

정답은 타나베 쥬지가 되시겠다.

 

이렇게 해서 일제 식민지 시절에도 전부중치는 "타나베 쥬지'로 불리어야 한다. 조선인 산악인들 중에 오로지 바위만 즐기지 않고 산악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타나베 쥬지는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이다. 

 

손경석은 선배들로부터 타나베 쥬지라고 들었어야 한다. 

선배들에게서 들은 바가 없기에 그는 타베 시게하루라고 스스로 풀어서 불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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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끝내면 '우리들의 산'이 아니지. ^^

 

손경석은 왜 타나베 대신에 타베라고 불렀을까요? 

1960년 장면총리의 밀명을 받아 일본에 간 30대초반의 손경석은 당당히 일본산악회를 찾았다. 그를 기다린 이들은  6,70대 노인들이었다. 그 중에 우리의 전부중치가 있었고, 분명히 명함을 주고 받았을텐데  '다베(타베)"라고 불렀다.

 

왜 이랬을까?

역사는 진지한 한편에 항상 유모어와 위트, 반전의 공간을 마련해 놓고 있다는 것을 오늘 우리는 다시 보게 된다.

놀라지 마시라.

 

 

각천문고는 쇼와 25년 그러니까 1950년부터 전부중치의 책을 다수 내는데, 그 중에는. 

연도별로 고개와 고원(1950년), 산과계곡-기행편(1951년). 산과계곡-수필편(1951년). 그리고 1957년 신록의 여행, 낙엽의 여행을 낸다.

 

이제 이 책의 간기면을 한번 보자.

일본의 인터넷 문화는 사진파일이 귀한데, 오늘 한국에서 '쓸데없는' 것을 즐기는 우리를 위해 이 4권을 준비해놓았다!

놀라지 마시라.

 좌측이 고개와 고원(1950년), 우측이 산과계곡-기행편(1951년 8월 15일 발행)이다.

하단에 보면 전(田)에 해당하는 독음이 2자이다. 따라서 이는 '타나'로 읽는다는 걸 보여준다.

 

흐릿하다 해도 진실을 보여주는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이건 좌측이 산과계곡-수필편(1951년 8월 20일경)과 1957년 신록의 여행, 낙엽의 여행의 간기면이다.

좌측하단을 보시라 전(田)에 해당하는 히라카나가 한자이다 다시말해 이때는 '타' 그러니까 전부는 타베라고 읽게된다.

우측 하단은 '전'에 타, 배에 2자 그러니까 '나베'가 적혀 있는 걸로 보인다. 이때는 타나베가 된다.

 

이제 우리는 손경석이 왜 타나베가 아니라 타베라고 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다. 그는 당시 일본산악회회관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일찍부터 선생님의 책 "산과계곡"을 감명받게 읽었습니다." (농담아님. 이부분은 '등산백과' 서문에 있다)

그러자 일본산악회측에서는 급히 회관에 있는 책을 찾았는데, 그게 "산과계곡 -수필편'이었다는 것.

이 책을 들고 귀국한 손경석은 간기면을 보고 '타베'라고 부르게 된다.^^

따라서 그는 이부분에 관해 죄가 없다.

 

그러나 여전히 시게하루라고 부른 건 이해되지 않는다.

 

 

이상 백여년도 훨씬 전에 태어난 일본의 한 산악인을 놓고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 봅니다.

여름에는 사실 이런 이야기가 제맛이긴 하지요^^ 일본어 이름이 낯설지만 않다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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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손경석이 시게하루라고 부르는 걸 어느 책에서 보았는데, 찾지를 못하겠네.

더위를 먹었나. 그 사실도 약간은 흐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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