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라이밍 대회에서 왜 기어루프를 달고 오를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5. 25. 00:49

2019년 IFSC 스포츠 클라이밍 대회를 보다가 소소한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수직의 세계에서 벌이는 향연, 클라이밍은 중력과의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왜 무게를 줄이는 노력을 하지 않을까요?

무게를 줄이면서 미학적으로도 더 아름다운데 말이죠.

 

왜 안전벨트에서 하등의 쓸모가 없는 '기어 루프(gear loop)'를 떼지 않을까라는 소소한 이야기입니다.

 

 

등산 고유의 세계를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등산은 세상에 '등을 보이는' 행동이라는 거죠.

뛰어난 등산가일수록 자기 앞에는 아무것도 없는 법이고, 오직 뒷모습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어떤 스포츠와 달리 뒷모습에 인간의 복잡다단한 감정이 다 담겨 있습니다.

기뻐하는지, 두려워하는지, 서두르는지 초조한지... 이걸 잘 파악하는 이가 뛰어난 클라이밍 파트너이죠.

 

관객이 있는 스포츠 클라이밍은 더 적나라합니다.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클라이머는 뒷모습으로 모든 걸 말합니다

관객들은 일거수 일투족을 세심하게 읽어내고, 그리고 뒷모습에서 선수의 아름다움을 찾아 냅니다.

무브의 아름다움과 스포츠하는 인간 신체의 아름다움을 말이죠.

파워플하면서도 우아하고 아크로바틱하면서 다이나믹한 뒷모습.

 

뒷모습은 매번 '들킨다'. 언제나 타인의 모습이다. 차마 무방비한 뒷모습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그대 뒷모습.

 

지금 막 스타팅을 하는 선수의 뒷모습입니다.

저는 뭔가 어수선하고 산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뭐 대단한게 아니라 소소한 것입니다.

 

좌측 사진, 클라이밍 장비가 어수선하다거나, 눈길을 방해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인체공학적(ergonomic)입니다.

그러나 오른쪽 뒷모습을 보세요. 4개의 기어 루프(gear loop)가 왠지 어수선합니다.


기어루프는 하네스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도 아닙니다.

클라이밍대회에서 선수는 퀵도르를 걸지 않기 때문에 하등 필요가 없습니다. 

미학적으로도 괜찮아 보이는지요?

 

 

오래전 읽은 이야기인데, 버클이 한쪽만 있는 하네스의 장점에는 무게감량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수직에서의 발레라고 하는 스포츠클라이밍에서는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는 게 절대관건이죠.

 

그런데도 왜 국내외 대회에서 선수들은 기어루프를 떼지 않을까요?

단순히 관행일 수도 있겠고, 설마 그럴리가 없지만 규정상 하네스 무게 제한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장비무게에 제한이 있다면 빌레이 루프를 제거하고 패드가 좀더 강화된 벨트가 '안전'에도 좋겠죠.

 

제 말씀은 이것입니다.

첫째, 무게를 줄이는 것은 승부세계에서 핵심경쟁력이다.

둘째, '뒷모습으로 모든 걸 말하는' 등반의 철학이나 미학적 관점에서 보아도 기어루프는 이쁘지 않다.

 

뒷모습으로 말하려면, 하네스가 좀더 깔끔하고 단순해야 좋다고 봅니다.

오랜 고통과 수련으로 다듬어진, 스포츠 클라이밍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인체의 아름다움을 방해해서도 안되고요.

단순한 것이 안전(Simple is Safe)이고, 단순한 것이 아름다운(Simple is Beautiful) 한 법 아닌가요?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며칠 뒤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은 관심을 갖는 만큼 보이는 법이고, 세상은 답을 준비하고 있는 듯 합니다.~

하네스에 중심을 두고 2019년 대회를 며칠 뒤 유심히 보았더니...

이렇게 기어루프가 없이 스피드 클라이밍을 하는 선수들도 속속들이 눈에 띱니다.

스피드 클라이밍은 0.01초 단위로 승부가 나뉘기도 하는 만큼 '무게'가 관건 중의 하나이겠죠.

 

좌측으로부터 중국대회에서 중국 여자 선수, 체코 남자선수. 스위스 대회에서 러시아 선수와 카자흐스탄 선수입니다.

대별하니 공산권 나라들이군요.

 

 

 

 

 

결론:

1. 스포츠 클라이밍에서 안전벨트는 '개인의 취향'이다. 기어루프 착탈여부는 개인의 선택이다.

2. 무게를 조금이라도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은 승부에 대한 진지한 자세이다.

3. 기어루프가 없으면 무브도 간결하고 아름답고, 뒷모습이 어수선하지 않고, 스포츠하는 신체가 더 아름답게 보인다.

4. 기어루프를 없애는 게 더 낫지 않을까.

5. 이것이 이른바 명실상부- 명분에서도 좋고, 실제에도 부합하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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