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드로 클립 3) 스포츠 클라이밍시대, 0.1초라도 빨라야 산다.
이제 스포츠 클라이밍 시대에 왜 퀵드로에서 카라비너 방향이 같아야 좋을지 잡설을 해볼까 합니다.
'냉정'하고 '잔인'한 스포츠클라이밍이 이걸 요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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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클라이밍이 당시 등반사조의 대세였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는데,
당시 인간계에서 가능한 최고 그레이드를 5.9 정도로 보았다고 하죠.
그래서 난공불락의 의미로 파이브텐(5.10)이라는 브랜드가 생겨났습니다.
5.10이 넘는 우리는 모두 신계의 클라이머들입니다. 호날두와 메시처럼.^^
사실 그레이드가 5.10이나 5.11(?)까지만 해도 홀드도 좋아 이 둘 중 어떻게 클립하던 별 차이가 없습니다.
퀵드로가 있다는 사실, 그래서 카라비너에 신경안쓰고 다음 무브로 이어갈 수 있다는 사실만 있어도 충분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전세계 공히 사진에서처럼 퀵드로에서 카라비너의 방향이 서로 반대였습니다. (퀵드로 클립 2 참고)
그러다가 천지가 개벽해서 스포츠클라이밍 시대가 되었습니다.
상상도 못하던 오버행이 생겨나고, 5.10은 웃어 넘기고 5.15도 소수점 아래 세자리인 abcd로 나뉘는 시대.
이전에는 간과했던 위험이 생겨났고, 이 결핍을 해결하는 건 피할 수 없는 당면과제였죠.
그래서 기법, 테크닉에도 마찬가지로 집단지성이 발현되고, 대폭발이 일어납니다.
영화 신세계에서 황정민이 이정재에게 이렇게 말하죠. "0.1초라도 빨리 사시미칼을 빼야 혀, 그래야 니가 살어'
바로 클립의 문제 말입니다.
좁쌀만한 홀드를 밟고 잡고 해서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로프를 퀵드로 클립하는 순간이 살떨리는 공포가 시작되고,
따라서 추락을 하지 않으려면 0.1초라도 빨라야 합니다.
'0.1초라도 재빨리 클립해라'라는 요구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절대명제입니다.
이제 맨주먹 시대, 낭만자객 시대는 지났고, 사시미칼과 서부극 시대입니다.
니 정말, 퀵드로에 조금 더 빨리 클립 안할껴?그리 안하면 니 추락혀. 언제까지 5.11a 할껴?
2000년대, 클라이밍계의 집단지성은 장비를 개발하는 동시에, 퀵드로 클립 테크닉을 고민했습니다.
어떤 고민인지, 자 볼까요?
인수봉이건 오버행이건 관계없습니다. 두 클립 방식인 1번과 2번 방식 중 어느것이 편한지요?
2번이 더 편해다고 해야^^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인수봉의 슬랩바위에 비에젖은 나뭇잎마냥 딱 달라붙은 카라비너에도 2번입니다.
홀드를 잡은 손이 후들후들거리는 오버행에서 카라비너까지 흔들리네. 이때도 2번이 편하다고 봅니다.
다시 실사판으로 볼까요? 2번이 편합니다.
찬찬히 볼까요?
왼손으로 클립할 때 개폐구가 오른쪽이 되고, 오른손으로 클립할 때는 개폐구가 왼쪽이 되어야 합니다.
* 여기서 루트는 대부분의 루트가 그러하듯, 직상루트라고 전제합니다.
이제 퀵드로의 상단, 볼트에 걸 때를 볼까요?
왼손으로 볼트에 걸 때입니다. 1번과 2번 중 어느것이 자연스럽고 인체공학(ergonomic)한지요.
눈을 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다 해도 저는 2번이라고 봅니다.
볼트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걸어야 관절의 움직임이 무리가 없습니다.
손목관절과 인대와 근육은 2번 방식에 익숙하도록 진화해 왔으니까요
각각 퀵드로의 위쪽과 아래쪽 카라비너의 예를 모아 보겠습니다.
모아보면 이런 '각'이 나옵니다.
퀵드로 상단 카라비너와 하단 카라비너의 개폐구가 같은 방향을 향해야 한다는 거죠.
이럴 경우 두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1. 조금이라도(0.1초) 빨리 볼트에 퀵드로를 건다.
2. 조금이라도(0.1초) 빨리 퀵드로에 자일을 클립한다.
결론 0.2초 빨리 건다.
보통 추락은 벌벌 떨며 버티다 0.3초 뒤에 일어난다. 따라서 이제 휴유하고 안도하고 무브를 이어간다.
그레이드를 하나 올린다.
안전해지고 그레이드도 올리고. 끝
이게 2000년대부터 고민이 생겨나고, 결핍을 해결하려는 노력끝에 '2번길'을 찾았고,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페츨을 위시한 유럽에서 먼저 시작된 듯 하고, 블랙다이아몬드와 트랑고 등 미국쪽은 미국의 등반문화때문일까요?
계속해서 옛 방식을 고수하다, 블랙다이아몬드는 2018년경 결국 대세에 합류합니다.
외국에서도 이제 대세는 2번입니다.
확실히 하기 위해 반대의 경우를 볼까요?
이같은 경우 볼트에 클립은 쉬우나. 로프를 카라비너에 클립하는 건 어려워집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죠.
사실, 어떤 방식이든 익숙한 것이 좋고, 개인의 취향입니다.
그런데 개폐구 방향을 반대로 하는 분이 같은 쪽으로 하면 그레이드가 5.1ㅁa 에서 5.1ㅁb로 오를거라 예상합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는 어떤 것이 더 좋을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영화 "신세계' 마지막 장면으로 다시 정리.
1번을 고수했던 살벌한 그레이드주의자인 황정민은 결국 추락하여 바닥치기를 하고 이렇게 말한다.
"어이. 브라더. 너 많이 힘들어 보인다.
그러지 말고 이제 고만 선택해라.
형 말 듣고 이 빙신아. 그래야 니가 살어.
이 말을 듣고 산이 좋고 술이 좋고 우정이 좋아 클라이밍을 하는 낭만파 클라이머 이정재는 마음을 잡는다.
2번으로.
그래서 이정재는 5.15a가 되고 2번파가 전국구 방식이 되었다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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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인터넷 커뮤니티와 페츨 그리고 블랙다이아몬드에서는 클립 이후에 볼트쪽 카라비너가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해서 같은 방향쪽을 권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이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까요?
'볼트 클립 이후'에 발생할 이 경우가 많을까요?
아니면 볼트에 퀵드로를 걸지못하거나, 퀵드로에 로프를 걸다가 0.1초가 부족하여 추락하는 경우가 많을까요?
답은 후자입니다.
전자의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고 후자는 일상적입니다.
클라이머들은 이 일상적인 위험을 해결하기 위해 같은 방향으로 바꾸었다고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이해못할 블랙다이아몬드' 이야기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