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추억의 지리산 사진엽서를 소개합니다.

카테고리 없음|2021. 6. 8. 11:29

1960년대 말경 나온 지리산 사진엽서 몇장입니다.

그때 지리산을 올라 이 풍경을 보았으려면 아무리 늦어도 50년대 전쟁통에 태어났어야 하기 쉽습니다.

보통 복이 있어 가지고는 안되겠죠.

흔히 지리산 일출을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고 말하는데, 이건 9대가 복을 지었어야 했을 겁니다.

 

이 사진엽서의 핵심은 봉투입니다.

지리산 매니아라면 이곳이 어디인지 곧바로 알텐데요. 맞습니다. 노고단입니다.

 

이 엽서집은 1970년이 되기 전, 좀 더 이르면 1967년 지리산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기획한 작품라고 추정합니다. 추정 이유는 몇개가 있고요.

 

1980년대가 오기 전까지 지리산의 핵심은 화엄사였습니다. 일제 때부터 교통완비, 여관 완비, 유흥시설 완비였으니까요. 따라서 지리산 사진엽서는 아무래도 화엄사에서'만'(?)(저는 소장하고 있지 않지만, 쌍계사는 있었을 듯 싶기도 하고요) 발행된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시절은 지리산 등산이라고 하기보다는 연인들끼리 또는 친구들끼리 가벼운 차림으로 나서는 지리산 관광이라고 해야 정확하겠죠.

 

당시 지리산 (화엄사) 사진엽서집에 이렇게 지리산을 표지 얼굴로 내세운 것은 보기 어렵습니다. 나아가 70년대 지리산 사진엽서 중에 천왕봉이나 제석봉 등이 들어가 있는 엽서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 시절 화엄사쪽을 찾은 이들은 천왕봉을 궁금해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도 됩니다.  지금 지라산 하면 곧바로 천왕봉, 천왕봉 일출, 천왕봉 정상석으로 생각하기 쉽기에 약간 의아해 할 구석도 없지 않습니다.

 

초원과 곳곳에 관목이 띄엄띄엄 있네요. 여름이면 원추리가 온 산을 뒤덮게 될 것입니다.

산길은 외길, 외길입니다.

남도 삼백리처럼 곧 타는 저녁놀이 있고, 섬진강물이 노을에 헤적이고, 아침이면 운해가 온산에 가득하고.

노고단에서 서성거렸을 그들이 부러워집니다.

 

산의 사면에 붉은 흙이 보이는데요. 

정령치로 오르는 군사도로이겠죠.

 

 

봉투 뒷면입니다. 

하단에 전화번호도 없이 남대문 로고와 함께 우진관광문화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1970년대 사진엽서집에는 전화번호와 주소 등이 적혀 있습니다.

 

1970년 전후, 좀 더 이르면 1967년 지리산이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기획한 작품라고 추정하는 까닭은 이외에도 여럿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 사진엽서집이 화엄사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봉투의 표지가 화엄사가 아니라 지리산 노고단이 있다는 것이고, 또하나는 봉투가 상당히 작다는 것도 있고요.

 

사진설명은 '지리산 노고단 운해'와 함께 한자와 영어가 병기되어 있습니다.

 

우편번호는 우리나라에서 1970년 7월 최초로 시행됩니다. 그때는 다섯자리였죠.

그런데 보다시피 여기에는 ㅁㅁㅁ - ㅁㅁ 식의 우편번호 기입란이 없습니다.

 

이 사진도 관광 사진첩과 페넌트 등, 다방면에 활용됩니다.

사진 설명은 지리산 노고단 운해라고 하고 있네요.

국보 제35호 4사자 3층탑입니다.

저만치 연인들은 정장을 하고 있는데요. 구도가 애매한 걸 보면 아무래도 도찰^^인 듯 합니다.

정장을 입고 있는데요. 데이트일 수도 있겠는데 신혼여행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화엄사 정경입니다.

그 시절 이 사진엽서를 통해 화엄사와 지리산을 알리고자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 수 있는데요....

 

사실은 이 앵글은 그 이전 일제시대때에도 눈에 띠네요.

지금 이 사진은 일제 시대때의 화엄사 사진입니다.

화엄사의 위엄인 국보 각황전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지리산과 절며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을 잘 드러냅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앵글은 구글에서 찾을 수가 없네요. 그 까닭은 아무래도,

 

지금의 화엄사. 비교하자면 그때 그시절 화엄사는 고즈넉한 산중사찰이었던 것 같습니다.

화엄사의 중심과 구도가 바뀌었기 때문에 앵글도 저렇게 잡을 수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사진엽서는 대체로 8장이나 10정도가 보통인데요.

아쉽게도 4장 밖에 없고,마지막 네번째 사진엽서로 대웅전 불상입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꾸 보면서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에 전혀 조예가 없어 좀 그렇긴 하지만,

뭐냐 하면, 상단조명이 없는 것 같아서요. 전적으로 촛불조명에만 의지하여 사진을 찍은 듯 합니다.

저 시절에는 사찰의 천장에 전등이 없었을까요? 한번 다른 사진첩을 통해 비교해 보아야겠습니다.

 

나머지 사진들은 무얼지 궁금할텐데요.

대체로  전각이나 탑 등 화엄사가 중심이고 한두장은 계곡 사진이 있을 걸로 보입니다.

 

 

 

이상 1970이 되기 전 발행된 지리산 사진엽서를 통해 본 그때 그시절 추억의 지리산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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