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이전 송광사 사진엽서 3장입니다.

카테고리 없음|2021. 6. 10. 10:38

지금이야 '명승고적'이라 하지만, 한때는 정반대였습니다.

고적이 명승보다 앞서던 시절, 송광사는 단연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아름답고 웅장하고 거대한 사찰이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피할 수가 없죠.

그러나 점점 사람들이 명승을 찾고 해서일까요.

송광사 관련 관광 기념품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오늘은 1970년 이전으로 여겨지는 송광사 사진엽서 3장입니다.

사진엽서는 보통 8장 10장이 한세트인데, 이렇게 3장밖에 없어서 아쉽긴 한데,

이게 어딘가요.

 

언젠가 송광사에 가실 때, 지금의 모습하고 잠간 비교해 보는 맛도 없지 않을 거라 봅니다.

 

송광사 전경입니다.

검색해서 지금과 비교해 보시면 알겠지만,  전각의 숫자가 늘어 난 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줄어 든 것 같습니다.

한국 경제의 성장궤적과 똑같이 산중사찰인 화엄사도 두배 세배로 늘어났습니다. 

승보사찰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버티고 줄이는 그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뒷면입니다.

영어도 없고 그냥 송광사 전경과 한자로 병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편번호가 없군요. 우리나라는 1970년 7월 1일 처음으로 우편번호가 제정 발표됩니다.

 

일본어가 없다는 것도 늦어도 1970년대 초에 제작되었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봅니다.

7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일본 관광객에게 문호를 열고, 일본 관광객들도 쏟아져 들어오게 되면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일본어 표기가 늘어나게 됩니다.

거의 모든 관광 관련 자료에는 그래서 일본어가 영어에 이어 병기됩니다. 지금이야 중국어에 밀려있지만 말이죠.

 

 

16국사 진영입니다.

16국사 진영으로 검색하니 지금도 계속해서 뉴스가 나오고 있더군요.

송광사 박물관입니다.

 

이게 언제적일까요?

한국학중앙 연구원에 의하면 송광사성보박물관의 근대 건축사는 이렇다.

1936년 성보물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별도의 박물관을 건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찍은 송광사 진열소 사진이 남아있어 이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여수 순천10.19사건과 6.25전쟁을 거치며 지켜낸 성보물은 1957년 10월 27일에 옛날 창고 자리에 지은 박물관에 보관하였다.

그 후 1997년 대웅전 맞은편에 ‘성보각’[현 종무소]을 지어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2015년 현재의 자리에 송광사성보박물관을 신축하고, 2017년 4월 22일 개관하였다.

 

 성보박물관은 1936년 건축. 1957년 옛날 창고자리. 1997년 대웅전 맞은편에 '성보각(현 종무소)'을 지어 박물관으로 사용하다가,  2017년 현 송광사 성보박물관을 신축 개관하였다고 있다.

 

이에 의하면 4.3사건과 6.25에 피해를 입지 않은 느낌의 글이다.

 

그런데 당시에 발행된 다른 자료를 보면, '6.25사변때 불탄 것을 1964년에 중건한 건물로서'라고 적고 있다.

 

얼핏 짐작하기로는 송광사는 당시 전화를 피할 수 없었을 텐데, 진실이 무얼까 싶다.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보니  '1950 6.25 전쟁 당시 불에 타기 전 송광사의 전경사진'은 이렇다.

빈공간이 없을 정도로 전각이 빽빽하다.

 

당시 박물관이 불탔을 수도 있겠고, 안탔을 수도 있겠는데, 일단 추정하기로는 바로 위 다른 자료에서 씌여 있는 것처럼 불탔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인다.

 

 

이상 1970년대 송광사 사진엽서 3장을 놓고 앞뒤없는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언제 송광사 가실 때 한번 비교해봄직도 하겠다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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