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 쓰레기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 1

카테고리 없음|2021. 6. 14. 11:35

산에서 만나는 쓰레기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면, 고 정광식 선배도 생각난다.

정광식은 1982년 8월 한여름 친구 남선우, 김정원과 함께 아이거 북벽 정상에서 탈진상태로 하강을 한다.

이때 상황을 친구 안중국 기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이틀간 꼬박 굶은 채 암릉으로 로프 하강을 해 내려가던 중 이들은 누군가 흘리고 간, 명함만 한 초콜릿 네 개를 발견했다. 세 젊은이는 그 초콜릿을 하나씩 먹었다. 그리고 하나는 소중히 싸서 다시 그 바위 턱에 남겨 두었다. 자신들처럼 허기져 하산할 훗날의 어느 등반가를 위해서였다.

 

세 청춘들은 초콜렛 하나를 남겼다. 기아 상태에 빠진 세명이 명함만한 초콜릿 하나를 왜 남겼는지 누구나 쉽게 재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전설이다. 이런 이야기가 많아져야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있는 산악계가 될거다. 

 

그런데 오늘 내가 관심 있는 건,  그 네개의 초콜렛이 무엇일까라는 것이다. 다음에 이곳을 찾을 사람을 위한 명분으로 남겨논 비상식량일까 아니면 어쩌다 흘리거나 또는 버리고 간 쓰레기는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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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쓰레기라고 하면 한국사람 누구나 갖고 있는 공통의 기억이 있다. 그건 두말할 필요 없이 나쁜 기억이다.

내가 아니라 '남^^'이 버린 쓰레기는 말이다. 내가 버린 쓰레기는 나름 이유나 핑계 또는 자기합리화가 있다.

그런데 남이 버린 쓰레기는 100퍼센트 그냥 나쁜 쓰레기이다.

 

그런데 남의 쓰레기에 대해 나에겐 좋은 기억이 하나 있다.

한 20여년 전 일인 듯 하다.

생수 500ml 한병과 당시 막 선보이기 시작한 찰떡파이 두세 개를 들고 한여름 의상능선을 처음 오르면서이다. 만만히 보았는데 오르내림은 끝이 없고 배고픔과 갈증에 시달리며 점심시간도 한참 지나 문수암에 도착했다. 갈증이야 해소했다지만 허기가 져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염치불문하고 공양간에 들러 노 보살님께, '배가 너무 고프다. 밥좀 주실 수 있겠냐'라고 여쭈었더니, 내 얼굴에서 간절함이 보이지 않았는지 내려가서 먹으라 한다.

 

두번 더 부탁하지 못하고 비틀비틀 허느적거리면서 구기계곡을 내려오는데, 두번 다시 여기 오나 봐라 하면서 내려오는데, 산 중간즈음 길섶에 얼음과자가 하나 있었다.

 

 

지금 그게 무얼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더니 '롯데 고드름 콜라맛(500원)' 이었던 것 같다. 만져보니 개봉도 되지 않은 거였다. 얼음은 녹아버려 물소리만 찰랑랑찰랑 난다. 잠간 유통기간도 생각해 보았다가, 좋다구나 하고 뚜껑을 열어 마시니, 콜라에 들어있는 미적지근한 콜라 향과 함께 당분이 입과 목과 위에 들어가면서 온 몸이 흡수를 하는 게 그냥 느껴진다. 곧바로 허기 뿐 아니라 원기까지 회복된다.

 

두번 다시 북한산에 오지 않겠다는 다짐이 고드름 녹듯이 녹아버리고,

다시 서산에 지는 해를 보면서 의상능선을 꺼꾸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마져 들었다.

 

그때 누구였을까? '고드름'을 놓고 간 이는. 또는 '고드름을 '버리고 간 이는

힘들다고 칭얼대며 올라오다보니 시간이 너무 흘러 녹아 물이 되어버리자 그만 화가 나서 버린 어린 아이일까?

아니면 내려가는 길에 나같은 이가 있을거라 긍휼히 여기고 남은 것을 놓아 둔 어른일까?

 

우리도 사실 쓰레기의 경계에 있는 걸 버릴때 어쩌다 이런 유혹에 사로 잡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혹시 이걸 필요로 하는 사람 없지 않을까라고 '자기 합리화'하면서 구석에 '버리'는 것 말이다.

의도는 아니지만 결국에는 쓰레기가 될, 유원지 틈새에 박혀있는 부탄가스처럼 말이다. 

 

아무튼,

처량한 상황에 빠진 내가 그때 그 순간에 픽(pick)하지 않았다면 그것도 '쓰레기'에 다름 없었을 것이다.

그날 그 순간이 지나면 먼지가 쌓이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나에게조차 감로수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경계'에 있는 그 어떤 '선한' 의도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에게 쓰레기로 정리된다. 

 

 

 언젠가 생전에 정광식 선배에게 여쭈어 본 적이 있다.

"형, 그때 초콜렛 왜 하나 남겼어요?"

그때 선배가 한 이야기가 여즉도 기억에 남는다. 오래전 이야기인양 아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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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쓰레기를 생각하자니 생뚱맞게도 불쑥 그때가 기억난다.

하산길 왼쪽 길가 풀섶에 깨끗하게 있었다는 것도. 먹을까 말까 고민을 그리 많이 하지 않았던 것도.

그리고 한여름 물병 500cc로 겁도 없이 찾았던 북한산 의상능선, 그 이후로 그 코스를 다시 찾지 못했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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