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계룡산 동학사 사진엽서와 당시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카테고리 없음|2021. 6. 22. 10:50

1970년 이전으로 추정되는 계룡산 동학사 사진엽서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때 그시절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계룡산은 1968년 12월 31일 두번째로 국립공원에 지정되었습니다.

이런 타이틀로 홍보를 하던 시절인데 사진엽서집에는 '국립공원'이라 적혀 있지 않네요.

따라서 이 엽서집은 1969년 이전에 만들어졌다고 추정됩니다.

 

각각 보물로 지정되고, 충남 지방문화재 제1호라는 남매탑을 전면으로 내세웠습니다.

참고로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2기의 석탑들은 1950년대에 무너져 있던 것을 1961년에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그때는 철제 난간도 없었네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입니다.

 

뒷면입니다.

당시 사진엽서집과 관광기념사진첩 제작을 선도했던 우진관광문화사인데, 전화번호가 두개였네요.

1971년 만든 '국립공원 계룡산 갑사 사진엽서'보다 시기적으로 앞섭니다.

은선폭포입니다.

지금은 계단과 난간을 설치해 놓았기 때문에 이곳으로 내려갈 수 있을까 싶습니다.

 

은선폭포 위에는 추억의 은선산장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구글에서 이길구 박사 은선산장으로 검색하시면 좋습니다.

 

뒷면은 한글로 장소표기와 함께 영어가 부기되어 있습니다.

 

우편번호 위키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우편번호는 1970년 7월 1일에 최초제정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88년, 2000년과 2015년에 세 차례 개정되었다고 하니, 이건 그 이전인게 거의 확실한거죠.

"계룡산 전경"입니다.

산세는 힘이 있고, 계곡은 깊은데 놀랍게도 비포장도로입니다.

환하게 웃으며 저 길을 조붓하게 걸었을 이들이 부럽네요.

계곡 모퉁이에 있는 이 건물은 무엇일까요?

상가이기 쉬울텐데, 지금도 있으려나.

동학사 입구입니다.

이게 말그대로 '만추'죠.

 

그리고 이제 재미있는 사진을 보실 차례입니다.

놀라지 마세요. 계룡산 관광 호텔입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데 저시절 우리네 살림살이가 딱 저정도였죠.

간판에는 'TV 있슴' '욕실완비'라는 문구도 없고, 그 유명한 삼학소주가 함께 합니다.

오른쪽 구석에는 '동광상회'가 판자로 지붕을 얹고 있습니다.

택시도 한대.

1970년 6월 19일 조선일보 "우아한 풍치 속의 계룡산"를 쓴 기자가 누구인지 궁금해지는, 정말 재미있는 기사입니다.

 

그레이 하운드(서울역 건너편)은 차내에 화장실이 있어 여성들에게 인기.
그러나 카 스테레오 장치가 없어 약간 지루하다.
5개회사 모두 냉방이 되어 있다.
엔진소리 나는 뒷좌석(대개 30번 이상)은 피하는게 좋고

라고 적고 있다.

구석기 시절이다.

예약을 하려면 계룡여관의 경우 숙박료를 동붕, 1일전까지 공주군 반포면 동학사 계룡여관 박건해씨 앞으로 보내면 되며, 동학산장호텔은 전화예약을 받는다.

 

유의할 사항 - 동학사의 여관에서는 혼자 손님은 '자살할 손님'일지 모른다고 기피하므로 유의할 것.

유성의 각 여관에는 온천이 없으므로 대중탕을 이용해야 한다.

 

 

이런 전설같은 이야기, 등산박물관에서나 가능한^^ 큐레이팅입니다.

 

한눈에 보아도 관광객이 아니라 동네 아이 행색의 어린이가 돌계단에 있습니다. 

1960년대 생일테니 지금 나이가 짐작됩니다.

 

관광 호텔 하단에는 이렇게 1급수처럼 맑은 계류가 흐르고 있고요.

얼핏 보기에 방망이가 있습니다. 

호텔에는 세탁실이 있기가 어려울테고, 등산객들은 여기서 빨래를 할 수 있었나 봅니다.

 

지금부터 50년 전 우리네 살림살이, 여행의 진모습을 보여주는 '한장의 사진'입니다.

 

그리고 충남 유성관광호텔과 만년장 호텔입니다.

저시절 저런 높은 빌딩이 있었군요. 긴가민가합니다.

 

저는 처음 들어서 검색해보니, 만년장 호텔 대단한 위엄을 갖고 있군요.

1963년 경 박정희 의장이 지방 시찰 중 이곳에 들렀고, 여기서 주한미대사와 한담을 하고 그러는 장소입니다.

구글에서 '공주 갑부가 개발한 대전지역 고급휴양지 어디'로 검색하시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읽을 수 있습니다.

동학사 대웅전입니다.

지금은 조경이 조금 바뀌고 석등위치가 바뀌었습니다.

언젠가 동학사 가실 때 이 사진엽서랑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가 쏠쏠할 것 같습니다.

동학사 전경입니다.

전각이 많지는 않은데, 단단해 보이네요.

 

1970년 당시 여승만 80여명이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다시 표지에 나왔던 남매탑. 

 

 

이렇게 해서 1970년이 되기 전 우리를 유혹했던 계룡산과 동학사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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