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중반에 나온 내연산 보경사 사진엽서입니다.

카테고리 없음|2021. 6. 24. 17:31

만나기 쉽지 않은 내연산 보경사 사진엽서입니다. 1970년대 중반으로 추정됩니다.

 

대구 팔공산과 부산 금정산 그리고 광주 무등산은 지금은 그 지방의 진산이고 명산입니다.

그러나 관광기념품을 통해 보면, 7,80년대까지만 해도 외지인들은 이런 산을 첫손에 꼽지 않았습니다.

아직까지 70년대 팔공산 사진엽서와 금정산 사진엽서를 보지 못했습니다.

 

교통이 불편했지만 그 시절 사람들은 '드라마틱'한 산을 좋아한 걸로 보입니다.

산의 높이나 웅장함이 아니라 폭포가 우렁차고 암벽이 우뚝 솟아 있는 걸 볼거리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 대표가 군립공원도 채 되지 않았던 서쪽의 대둔산 동쪽의 주왕산 그리고 채 군립공원도 아니던 내연산입니다.

 

관광 내연산 보경사라고 적혀 있습니다.

하단에 보경사를 보경사(Bogyeong-Sa)라고 하는데요. 한때는 보경 템플(Bogyeong Temple)이라고도 하고, 지금은 보경사 템플(BogyeongSa Temple)이 공식 표기법입니다. 이 방식이 제일 나은 듯 합니다. 택시 운전사하고 외국인이 소통하기에 제일 간단하죠.

 

남한강이나 북한산도 '남한강 리버', '북한산 마운틴'이라고 해야 택시 운전사들이 '아아, 이 친구가 한강, 북한산을 가고 싶어하구나 짐작하기 쉽죠. '남한 리버'나 '북한 마운틴'하면, '소통'을 쉽게 할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언어의 제1차 목적은 소통입니다.

 

지금 한글 캘리그라피가 유행하지만, 한자(漢字) 캘리그라피는 보기 어렵습니다.

저 시절만 해도 왠만하면 한자에 능숙한 사람들이 많아서 관광엽서 제호들이 하나같이 멋이 잔뜩 들어가 있습니다.

 

 

봉투 뒷면입니다. 일출이 아름답네요.

내연산은 바닷가에 면한 산이 아니지만 포항에 있으니 이건 포항의 일출이겠죠. 

 

'일출(해맞이)'은 우리 전통문화일까요?

글쎄입니다. 한국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달맞이(월출)'을 일출보다 더 좋아하고, 밤늦도록 흥청망청 술마시고 노는 걸 좋아하는 민족이라, 새벽에 일어나 일출을 보는 건 쉽지 않죠. 아무래도 1월 대보름이나 팔월 한가위같은 달맞이보다는 친하지 않은 걸로 짐작됩니다.

 

물론 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에 의유당 남씨의 '동명일출'이 실려 있기도 하죠.(한편 의유당은 동명월출이라고 달뜨기에 관한 글도 있습니다.) 조선 유산기 중에 금강산에 관한 허다한 글들 중에 해맞이를 하는 건 한두편 밖에 보지 못한 걸로 기억합니다. 일출은 일제 시대때 자신들을 '태양의 아들'이라고 간주하고, 동해 해뜨는 그 너머에 그들의 고향인 일본이 있는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걸로 추정합니다.

 

하단에 발행처가 '매일원색정판사'라고 주소지가 대구입니다. 이 회사가 나중에 대구권 - 해인사 통도사 포함 - 을 대표하는 관광기념품 발행처인 매일관광여행사의 전신인지 모르겠습니다.

 

'정판사'는 해방후 1946년에 발생한 그 유명한 정판사 사건의 정판사가 기억납니다. 한자를 유심히 보니 정밀하게 출판하는 회사라는 뜻일 듯 한데, 보통명사일까요. 국어사전에는 등장하지 않는 걸로 보입니다.

 

ㅗ경

보경사 대웅전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지금은 화초나 계단이 매끈하게 단장되어 아무것도 없네요.

잎이 넓직한 화초는 '파초'입니다. 

저 시절까지만 해도 사찰마다 '파초'가 필수아이템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모든 곳에서 수난을 당해 사라졌습니다.

 

'파초'는 선불교의 핵심이라고 하죠. 달마대사가 중국에 들어와 면벽수행을 할 때 2대 조사 혜가가 들어와 제자 되기를 청하며 삿된 믿음을 의미하는 '왼쪽' 팔뚝을 자르자 그게 자라서 파초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동시에 '파초'는 유림, 사대부들의 처소에도 '머스트해브(Must have)' 아이템이었습니다. 누군지 이름을 잊었지만 흠모하는 큰선비의 시에서도 등장하고, 여름철 책 읽다가 넓은 잎사귀에 빗물이 똑똑 듣는 소리를 즐겼다고 하죠. 이렇게 종교를 막론하고 애지중지했던 파초는 지금 우리 곁에서 사라졌습니다. 99퍼센트가 양반의 자식들이고 동양 3국 중 최고의 선불교 나라인데 말이죠.

 

사진엽서 뒷면입니다.

'보경사의 대웅전'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약간 이상하지 않은지요?

그렇습니다. 이 이전이라면 한국어법에 맞추어 '보경사 대웅전'이라고 했을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옆에 한자어가 사라지고 일본어가 병기되어 있는데, '의'에 해당하는 'の'가 있군요.

 

그 이전의 표기는 이렇게 'の'를 직역하여 '의'라고 하는 게 없네요. 

이런 소소한 발견이 묘한 즐거움을 주는거죠.

 

일본어 'の'의 침투라는 관점으로 한번 다른 사진엽서집과 관광사진첩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연산폭포입니다.

지금은 바뀌었겠는데, 당연히^^ 시멘트 골조이군요. 

 

조선시대에도 폭포를 관망하는 관폭(觀瀑)문화가 있었고, 지금도 일본에는 유행하죠.

'정적인' 풍경이 아니라 이런 풍경을 좋아하는 건 어쩌면 당연할 거라 봅니다.

우리가 지금 외국여행을 한다고 할 때, 지리산같은 '밋밋한' 산보다는 황산이나 장가계같은 산을 가겠죠.

 

원진국사비 보물제252호입니다.

철봉으로 고정시켜 놓고, 방치^^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보물의 명성이 걸맞게 비각을 세워 그 안에 안치하고 있네요.

이런 사진을 통해 비교하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5층금당탑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되어 있을까요?

 

주변이 깨끗이 '정화'되어 있습니다.

청정수행도량의 느낌이 나는 파초도 사라지고요. 철난간이 처져 있는게 어쩌면 박제화, 유물화된 느낌도 없지 않습니다.

뭔가 가득하지만 텅비어 있는 듯한 박물관, 6시가 되어 불이 꺼지면 모든게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 말이죠.

대체로 많은 명찰들이 이런 느낌입니다.

'내부인들의 생활공간 수행공간이 아니라, 스쳐 지나갈 외부인을 위한 '각'이라는 느낌 말이죠.

 

음 '가득하지만 텅비어 있는' 하니까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떠오르는 군.

 

 

 

이상 1970년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내연산 보경사 사진엽서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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