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령회) 한국산악회 뱃지는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카테고리 없음|2021. 7. 20. 20:06

한국산악회 뱃지의 핵심은 에델바이스입니다.

이 에델바이스로 인해 한국산악회가 건강과 인격수양을 위해 2000m의 산을 오르는 진부한 모임이 아니라,

저 먼 고산, 아득한 설산을 지향하는 서구적이고 근대적인 산악회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1947년부터 이어져 내려온 한국산악회 뱃지, 회원장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에델바이스는 수없이 많은 모양이 있습니다.

하필이면 한국산악회는 왜 이런 모양의 에델바이스를 차용했을까요?

오늘은 이런 허랑한 의문을 갖고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당연히 틀리기 쉽상이겠지만, 산이 높으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풍부한 법이라 생각하고 읽어주세요.

 

해방되던 해 창립된 조선산악회(구 한국산악회)의 깃발에는 이런 모양의 에델바이스였습니다.

다음날 북한산 비봉에서의 행사를 위해 급히 김정태와 주형렬이 만들었다고 하죠. 이 이야기는 곧바로 이어서 하고요.

 

1947년 처음 만들어진 회원장은 왜 창립시의 영광스러운 에델바이스 문양 대신에 새로운 걸 차용했을까요?

그 이유는 과문하여 듣지 못했는데, 저간의 과정은 알 수 있습니다.

 

 

"한국산악회 50년사"의 서두에는 한국산악회 회원장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1947년 10월 9일 제작되어 배부되었다.

에델바이스 마크는 김정호 회원이 소지하고 있던 뱃지의 도안을 그대로 사용하였고"라고 적고 있습니다.

 

김정호 회원은 알다시피 일제시대 백령회 회원이었으며 후에 한일은행장을 역임할 정도로 성공한 인물입니다.

해방 후 창립한 조선산악회(한국산악회)에서 간사진의 일원으로 정력적으로 활동을 했습니다.

그와의 인터뷰는 한국산악회 회보인 '산'에 남아 있습니다.

 

여기서 논점은 "그가 소지하고 있던 뱃지의 도안을 '그대로' 사용"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설악산 에델바이스를 보고 창의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그가 소장하던 뱃지를 '그대로' 모방했다는 것입니다.

 

왜그랬을까요?

왜 1947년 한국산악회는 왜 남의 것을 모방하려 했을까요?

 

그가 소지한 것이 해방 이후에 한국에서 김정호가 자의적으로 제작된 뱃지일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

뱃지를 만드려면 금형을 뜨고... 등등 제작과정과 비용이 간단하지 않습니다.

창립당시 깃발에 표현된 에델바이스를 대체하려면 당연히 그 이전의 도안이거나 해서 권위도 있어야 할거고요.

 

게다가 당시 뱃지 제작은 "휘장 제작의 1인자였던 정양휘장제작소의 이기준이 맡아허 했고,

그는 정부 수립후 정부에서 제작을 의뢰한 훈장 등을 제작했다고' 한국산악회 50년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이제 의문은 과연 일제시기 김정호가 소장했던 에델바이스 뱃지가 어디에서 유래했을까로 이어집니다.

1947년  8월 국토규명사업의 핵심인 독도 조사를 이끈 한국산악회 분위기학상 일단은 일본의 뱃지는 아닐거라고 보아야 되지 않을까요? 

 

유럽의 산악회로 시선을 돌려볼까요.

일제시기 유럽의 산악회 중에 에델바이스가 도안으로 등장하는 산악회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는 아닙니다.

2차세계대전 중 일본의 추축국이었던 '강'한 독일의 산악회는 에델바이스이더군요.

그러나 보다시피 독일(옛 독일 산악회 뱃지도 마찬가지)것하고는 닮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사건은 미궁에 빠지지 않습니다.

어얏든둥 유럽의 뱃지이기 쉽겠고 그 중에서도 아무래도 추축국 독일의 뱃지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혹시 독일의 용맹스러운 산악부대는 어떨까 싶어 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독일 산악부대의 표식 역시 에델바이스입니다.

 

에델바이스 뱃지를 모자에 달고, 군복에도 답니다.

그런데 모자용 에델바이스는 전혀 다르고, 군복 오른쪽에 다는 와펜의 모습은 그나마 비슷하더군요.

그럴리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아무리 구글이라도 검색어를 무엇으로 할지 모르겠고 해서 더이상은 조사를 그만둘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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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점은 이것입니다.

 

1) 1947년 뱃지를 만들자고 할 때,

왜 1945년 창립당시 깃발에 있는 에델바이스 도안을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2) 그게 탐탁치 않아서라면,

왜 해방된 나라의 신생 산악회에 걸맞게 새로운 도안을 만들지 않았을까요?

 

3) 왜 일제시대때 우연히(?!) 손에 넣은,

출처도 정확히 알 수 없는(!) 남의 나라 뱃지를 도안으로 삼았을까요?

 

왜 그랬을까요?

Tell me some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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