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다 규야를 만난 유일한 한국사람.
이와나미 문고에서 발행한 '산과계곡'의 표지입니다.
표지의 두남자가 바로 다나베 쥬지(좌측)과 코구레 리타로입니다. 유심히 보세요.
우산은 기름발린 종이였고, 신은 가죽등산화가 아니라 짚신을 여벌로 몇개 들고 다니고, 코펠 버너도 없이
며칠이고 '어디를 가든' 그들이 처음인 북알프스를 탐험한 대단한 인물들이죠.
그것도 100년도 더 전에 말이죠.
저 복장은 전형적인 하이커 복장입니다. 단촐합니다.
그러나 저건 평범한 산행이 아니라, 탐험이라고 해야 합니다. 원정이라고 해도 되겠네요.
지금은 설악산 '산행'의 대상이지만, 195,60년대만 해도 설악산 원정이라고 해야 말이 됩니다.
둘다 동경제구대학 출신이고, 코구레 리타로는 나중에 일본산악회 회장을 역임합니다.
둘다 일본 등산의 정신성의 한 축인 정관파를 대표하는 인물들입니다.
김영도 고문님의 글이 상당히 사색적이라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조선의 양반네들의 유산풍습이 아니라 이들 일본 정관파들이 영향을 미친 흔적입니다.
주지하다시피 김장호 교수가 "한국백명산기"를 쓴 계기는 일본의 후카다의 백명산기입니다.
김영도 선생님은 그의 책을 최고로 치죠.
그런데 한국에서 후카다를 직접 만나고 계속 교유한 사람은 손경석 말고는 없는 듯 합니다.
손경석은 후카다 규야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고, 1960년 도일해서 일본산악회를 만날 때도 그가 함께 했습니다.
그 책 제목이 잘 기억이 안나는데 '저 히말라야'였던가 싶습니다.
이 책은 별로 안팔렸는지, 알고 있는 사람도 별로 없고,
따라서 후카다 규야의 책이 국내에 진작에 번역되어 있는지 아는 분들도 별로 없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등산풍조에 제일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누구일까요?
그건 노산 이은상도 아니고, 힐러리도 아니고.
놀랍게도 후카다 규야입니다.
일본인이라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이게 진실입니다.
지금 산행의 대세가 100명산 붐이죠. 그걸 만들어 낸게 그니까요.
한때는 백두대간이 대세를 이루었는데,
의외로 100명산 오르기가 인기를 끈 이유는 무얼까 싶습니다.
김영도는 후카다 규야를 높이 평가합니다.
그의 철학, 산행관과 유려한 글 모두 말이죠.
그런데 그의 책이 번역되지 않은 것은 아쉽습니다.
저는 일본 100명산 중 1편과 100편을 읽어 보았는데,
산의 순서는 높이나 명산 순이 아니라 저 북쪽 홋카이도에서부터 시작하여 끝은 규슈 최남단의 산으로
하고 있더군요.
최남단의 산은 제국주의 시절 일본인들에게 의미가 적지 않은 산입니다.
남양에 징병을 간 이들은 그 산을 마지막으로 해서 정말로 일본을 떠난다는 상실감을 직감한다고 하죠.
후카다 규야 역시 징병의 경험을 그 산에 담고 있습니다.
언제 몇편을 초벌 번역해서라도 소개해 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