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인3) 직인을 통해 본 남한 지폐당국의 독립 의지
남한과 북한의 화폐에 등장한 산과 명승고적지를 정리해볼까 해서 구입한 책이 "우리나라의 화폐"입니다.
정리는 무슨^^, 비싼 돈 주고 사 놓고 까마득히 잊고 있다가 어제오늘 '직인'에 관한 관심으로 펴보았습니다.
이제 참 한심하고 황당하고 이해불가능한 해방 후 한국현대사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뭐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자고로 하꼬방같은 사업이라도 새로 사업을 하거나 뭘 하면 도장을 새로 만들게 됩니다.
한국에서 제일 중요한 도장이 무엇일까요?
한국은행 직인이 그 중 하나일 것입니다.
지금 이 천환짜리는 4.19 혁명 이후 태어난 장면 정권때의 일입니다.
장면정권은 그래도 친일청산을 위해 힘썼다고 하죠.
금융주권의 상징인 화폐 한가운데에 있는 직인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아마 여러분들은 모르실겁니다. 꿈에도 상상했을려나^^
한번 모양을 눈여겨 보세요.
글자는 전서체로 "총재지인(總裁之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1910년 한일합방 직후 구 "한국은행"이 발행한 1원지폐입니다.
저 위에 장면정권 때 세종대왕화폐하고 똑같은 직인입니다.!!!
1910년 한일합방때 만든 인감도장을 줄기차게 사용했다는 거죠.
이렇게 아무런 사전 지식이 없는 평범한 이의 눈에도 보이고, 이게 문제라는 걸 왜 사람들은 몰랐을까요?
이건 뭐 '친일청산'이니 뭐 그런것도 아니고 그냥 '자존심' 문제 아닐까요?
알고 나면 분노할 성질이 아니라 불쾌한 것.
돈이 드는 것도 아니에요.
국민학교라는 명칭을 초등학교로 바꾸는 것은 엄청난 인력과 수백수천억의 비용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화폐의 인감을 바꾸는 것은 정권의 의지와 단돈 10원이면 될 일입니다.
1914년 한국은행이 이름을 바꾼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백원짜리.
좌측하단에 똑같은 직인이 있습니다. '총재지인'
일본의 싸구려 쇼프로에서 이걸 가쉽거리로 해도 할 말 없는 거 아니겠어요.
"조센와 카이호(해방)후에도 니혼노 쇼꾸민찌(식민지)노 인깡을 그대로 찍었스무니다."~~
1915년부터 1945년까지 줄기차게 이 할아버지가 누구이시온지 화폐도안입니다.
총재지인이군요.
1945년 8월 15일 해방되던 해에 나온 해방 조선국의 조선은행 백원짜리입니다. 똑같군요.
그까닭은 그해 9월 6일 초대 군정장관에 취임한 아놀드 소장이 경제행정의 원칙을 발표합니다.
"남한 내의 통화는 종래 발행. 통용되고 있던 조선 은행권을 계속 사용한다"라고 말이죠.
그래서 1953년 2월 17일까지 조선 땅에서는 일제 식민지때 발행한 지폐가 합법적으로 통용됩니다.
이건 뭐 그럴 수 있습니다.
직전에 올린 블로깅, 해방 후 북한에서의 지폐도안을 보면 그게 또 그렇지 않아도 되는 일이지만 말이죠.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1949년 만들어진 신권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이군요.
오른쪽 독립문이 있는데, 청나라로부터 독립이건, 일제로부터 독립을 상징하건
적어도 독립문을 쓸 때는 조금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좋습니다.
그때까지는 일제 때의 조선은행권이 우리나라에도 통용되었으니 혼란을 주지 않으려 했다고 이해합시다.
1953년 12월 조선은행이 이땅에서 사라지고 당당 한국은행이 태어난 이후의 지폐에도 똑같은 것을 쓰고 있네.
이승만 정권은 친일청산의 의지는 어떤지 모르지만 일제에 대해 상당히 혐오했다고 기억을 하는 것 같은데..
그리고 당시 한국은행뿐 아니라 전 조선 인민들이 직인이 똑같은 것을 인식했을텐데요.
무릇 독립이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선언'해서 될 일이 아니라 이렇게 금융독립도 되어야 할 텐데.
그리고 인간적으로 충무공 이순신을 도안으로 쓰려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
이순신 장군이 말씀하셨잖아요. 신에겐 아직 150원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감각함이라니...
일제 때에는 판검사 뿐 아니라 조선은행의 직원도 영감님이라 불렸습니다.
조선은행에 다니는 20대 조선인 은행원들은 우리가 상상도 못할 대접과 영화를 누렸습니다.
아마 그들은 해방 후 한국은행의 중심 축이 되었을 겁니다.
그들은 왜 막도장 하나 팔 생각을 안했을까요?
하꼬방같은 사업을 해도 도장을 새로 파는데 말이죠.
왜 누구하나 이 부분을 따끔히 지적한 '내부자' 한명 없었을까요?
그 허구한 세월동안 말이죠. 네? 왜그랬을까요?
1960년 4 19 혁명 이후 장면 정권때 만들어진 천환입니다.
놀랍게도 이때도 똑같은 직인이군요.
친일청산의 붐이 새롭게 일었고. 직인이 똑같다는 건 한국은행원 누구나 알터였는데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
해방이 우리가 쟁취해서 얻은 게 아니라 도둑처럼 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일제 때 엘리트들은 겁을 먹지 않았고, 민중들은 독립운동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러다 보니 해방 후 일제 청산이라는 혁신 분위기가 자생적으로, 내부적으로 생겨났을까 싶습니다.
1992년 6월, 박정희 정권때 나온 신권입니다.
오로라. 이때부터 한글로 총재의인이라고 바뀌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해집니다.^^
1994년 은줄이 처져 있는 신권에도 한글로 된 직인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인감이 사각이 아니라 원형입니다.
원형은 전각전문가에 의하면, 조선시대 방식이 아니라 왜식이라고도 하는군요^^
2006년 직인부터 사각인(각인)으로 바뀌었고, 한국은행총재라는 글자로 바뀌었습니다.
1945년부터 자그마치 6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화폐독립이 완성됩니다.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ㅋㅋ
"조선은행 한국은행 직인"등으로 검색하니,
이무렵 지폐도안에 있어서의 친일청산 이야기가 나옵니다^^
2005년 KBS에서 "지폐 도안에 뿌리깊게 남은 일제 잔재"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습니다.
현재 통용중인 지폐의 도안 가운데 핵심부분인 인물초상과 한글문자의 배열 및 형식, 직인 등 핵심요소들 대부분이 일제 식민지 지배의 뿌리깊은 잔재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오늘은 단지 '직인'을 놓고 보았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을 때는 모르는 척 회피하더니, 가리늦게 '뿌리깊은 잔재'라고 지적질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거 일본 잘못일까요?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 잘못일까요? ^^
KBS기사처럼 두리뭉실하게 넘어가면 되나.
그시절 도안을 바꿀 때 회의를 하고 남긴 회의록 같은거 한번 들추어 봐야지. 뭐가 들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