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 백령회 멤버들의 주소 변화

카테고리 없음|2021. 8. 13. 18:55

해방 전후 백령회 멤버 중에 리더였던 김정태와 주형렬 그리고 양두철은 해방 전후 자택과 회사의 주소변화상을 엿볼 수 있습니다.

 

팩트라서 다음에 자료가 될지 몰라 올려봅니다.

백령회의 일지인 "백령"에 1943년(쇼와 18년) 회원들의 주소가 있습니다.

리더 엄흥섭은 체부동에 살았고 근무처는 삼국상회 공장과이네요.

김정태의 어느 기록에 의하면 기술실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당시 공장과는 어떤 과인지 궁금하네요.

 

주형렬은 서대문구 누상동에 살았고, 근무처와 전화번호가 없습니다.

누상동은 그시절 부촌이 아니라 빈촌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해방 후 주형렬이 3층짜리 오자와 상회에서 한칸을 빌려 등산구점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걸 정상적으로 접수했을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습니다.

 

이른바 해방정국에서의 적산가옥과 적산기업의 합법 비합법 '접수'에 대해서 어떤 자료가 있는지 찾지 못해 아쉽습니다.

다만 박유하 교수의 2021 08월 SNS 글은 참고할 만하다고 봅니다.

 

김정태는 신설동 4-12번지에 살았고, 회사와 전화번호는 없습니다. 

양두철은 현저동 45-20에 살았고 양천공업소를 자영했습니다.

양천이라는 상호는 그의 창씨명인 양천두철의 양천을 땄습니다.

전화번호가 있군요.

양두철은 고보를 나오지 못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국립산악박물관에서 낸 "한국산악회전"에는 해방 이후 많은 서류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946년 역원(이사를 뜻함 -인용자주)총회 통지서입니다.

이곳에도 시내 신설정사번지의 12라고 적혀 있습니다.

해방전하고 똑같습니다.

 

1947년 3월  26일  제1회 시민식목등산회 개최와 정기총회건 안내문에도 같은 주소입니다.

김정태는 이곳에서 오래 살았던 듯 합니다.

자택으로 엽서를 보내는 걸 보면, 김정태는 무직일 수도 있겠습니다.

양두철의 주소입니다.

1946년 6월 정기총회 소집통지서입니다.

제주도 학술조사대 현지 레코딩 등반대(실황) 기록, 보고영화 '제주도풍토기'도 내용에 있습니다.

 

주소는 시내 황금정17목이라는 일본식 주소체계입니다.

ㅁ광빌딩 2층 차명(?)물산회사에 다녔군요. 물산회사는 무역회사를 말할까요?

해방전 양천공업소를 그만두고 황금정, 지금의 충무로에 있는 회사입니다.

충무로는 일본인들의 최고 번화가이기 때문에 이 회사는 양두철의 자금력을 보면,

양두철이 운영했을 거라 보이지는 않습니다.

 

주소 중에 재미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쁼'은 빌딩의 빌을 뜻합니다.

지금은 빌딩이라고 통칭하는데, 저시절에는 빌딩이라는 용어는 잘 안쓰이고,

삘딍, 쁼딩. 삘딩 븰딩 등의 용어였습니다.

 

검색하면 마산의 합성쁼딩이 지금도 있나 봅니다.

 

그리고, 문화서울 10월호(인터넷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에 

"서울의 ‘삘딩’ 혹은 ‘삘딍’을 찾아서 - 서울의 현대를 찾아서: 명패에 깃든 시간의 흔적"라는 기사는 재미있습니다.

한번 읽어 보세요.

 

1960년대 세워진 빌딩들의 명패들입니다.

동화제약의 본사인지 동화빌딩의 명패에는 삘딍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조훈빌딍, 해남삘딩, 중앙삘딍이라는 명패가 지금도 있나 봅니다.

이걸 찾아낸 김영준박사의 눈썰미, 대단하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