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과 여행이 들어가 있는 공책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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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공책에 등산과 여행이 들어가 있는 것은 그시절 상당히 바람직한 의도입니다.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이라는 구호가 장소성을 띠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국민들에게 구체적으로 '공동의 추억'을 갖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설악산도 그리 많지 않고, 한라산을 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부에서 적극 권장할 일일텐데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그동안 설악산 흔들바위와 도봉산이 들어 있는 노트를 올린 적이 있는데요. 아래는 그동안 나름 애써서 모은 공책들 중 일부를 올려 봅니다.
총 26장의 사진이고, 사진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작은 사이즈의 공책입니다. '71년 소비자가 뽑은 최우수 금상 획득, 10월유신'이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70년대 초반임이 확실합니다. 저시절 공책이 대체로 10원이었군요.
표지는 지금도 쉽지 않을 자녀교육의 로망을 담고 있습니다. 아니 지금은 제법 사는 집안이라도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할 이가 있을까 싶습니다. 이 공책의 컬렉팅 가치는 표지가 아니라 뒷면에 있습니다.
'숙이와 복남이 옷갈아 입히기'이군요. 이런 컨셉 70년대 전후 초등학교를 다녔다면 잘 알고 있을 겁니다. 대부분 공주패션, 뭐 그런건데 놀랍게도 등산패션이 있습니다. 상당히 희유한 아이템이죠.
침봉이 그려져 있고, 마운틴스텍, 등산모, 베낭, 스키잠바, 스타킹, 쯔봉, 등산화 심지어 로프까지 있군요. 쯔봉이니 마운틴스텍이라는 말에서 뭐랄까, 이런 식으로 공책 표지를 만드는게 왜색을 가져왔을 수도 있겠다는 짐작을 하게 합니다.
역시 70년대 '새마을 노트'입니다. 경회루가 표지에 있습니다. 더확인해 보아야겠지만, 60년대는 종이질이 조악했던 시절이라 표지 도안을 할 생각이 거의 없었던 걸로 보입니다. 만약에 그시절 공책에 등산과 여행이 있다면 그만큼 귀한 공책이 될겁니다.
뒷면입니다. 상단에 낯선 동물들올 소개하고 있고요. 하단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구종합메이커 '합명회사 삼고'라고 적혀 있습니다. 수출도 많이 한다고 적혀 있는데, 지금도 존재할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같은 회사에서 만든 노트이고요. 이 건물, 분명히 경복궁 안에 있는 걸텐데 무언지 모르겠습니다.
시라소니같이 생긴 놈하고, 고릴라 그리고 바다 물개인가. 대충 그렇습니다. 동물원이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던 시골 친구들에게 좋은 도록 역할을 했겠죠. 물론 정확히 이름을 적어 놓지 않아서 상상만 가능했을 테고요.
아마 어린이 대공원이겠죠. 회전열차같은 걸 타고 있는데, 지금 초등학교 아이들에겐 스릴이 없어 선택을 받을까 싶습니다.
뒷면에 당시 중앙박물관의 모습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보통 크기의 공책입니다. 1980년대 초에 만들어졌습니다. 등산그림이 들어가 있습니다. 당시 등산이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 알게 합니다. 국가대표 취미였죠.
산은 도봉산 같기도 하고, 알프스 스타일의 산같기도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등산 멤버들입니다. 성인 남자 4명과 어린 남녀 아이들 2명입니다. 당시 등산에서 아내들은 집에 두고, 아이들 데리고 가는 것도 하나의 문화였죠.
당시 문화를 엿보고, 추억을 떠올릴 자료라서 뒷면을 그대로 올리겠습니다.
역시 같은 회사에서 1983년 만든 등산 모습이 들어가 있는 귀한 공책입니다.
이번에는 아버지 엄마 오빠와 여동생 4인가족입니다.
딸아들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라는 6,70년대 표어가 떠오릅니다. 그 사실을 반영하죠.
하단에 제조연도가 나와 있어 가치를 높여줍니다.
친절하게 '경상북도 경주에 있는 첨성대'라고 적어 두었습니다. 80년대초가 되어도 시골 아이들에겐 수학여행이 없었습니다. 그들에겐 이곳이 '언젠가 가 볼곳'이 아니라 교과서에 나와 있는 명승지를 다시한번 확인할 기회가 되었을 겁니다.
뒷면 상단 벼딱정벌레, 무당벌레, 파랑 풍뎅이가 있는데요. 설명이 재미있습니다. 각각 논작물을 해치는 곤충, 밭 작물을 해치는 곤충. 그리고 산림을 해체는 곤충 그러니까 유해곤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단에는 '교통질서 생활화로 귀한생명 보호하자'라는 표어가 있습니다. 저시절 대도시는 마이카 붐이 있어서 꼭 필요한 표어였겠죠. 시골에야 전혀 실감이 가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말이죠.
이곳이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한국일텐데, 경복궁 근정전을 옆에서 찍은 건지 모르겠습니다.
뒷면을 이렇게 간결하게 처리한 공책도 있군요. 중간에 1980년이라는 글자가 엿보입니다.
표지는 신랑신부 결혼장면인데, 용인민속촌일지 아니면 사극의 한장면을 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마 앞에서 청사초롱을 드는 건 원래 여자 역할이 아닐까 싶은데, 여기서는 남자가 맡고 있습니다.
뒷면입니다. 국보1호부터 5호까지 적혀 있습니다. 국보1호를 누구나 남대문 남대문이라고 했죠. 그런데 언젠가 불이 타서 사라진 다음부터 숭례문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죽고나면 사람을 높이는 것과 똑같이 재미있는 현상이죠.
2호는 원각사지 10층석탑이고, 3호가 북한산 신라진흥왕 순수비, 4호가 여주군 고달사지 부도라는 건 처음 아는 느낌이 듭니다. 5호 법주사 사자석등 등의 순서로 바로잡은 것은 1962년 12월 20일입니다. 말인즉슨 그 이전에 찍은 사진에는 국보 순서가 다르다는 거죠.
8각정 연못에 스케이팅을 타고 있는 장면입니다. 뒷면을 보면 1981년이 적혀 있습니다. 언제부터 고궁에서 이런 유희가 불가능해졌을지 궁금합니다.
시골 아이들이라도 맨 윗 사진이 남산타워라는 건 알지만, 도서관은 몰랐을 겁니다. 가운데와 아래 사진은 어디일까요? 제 짐작으로는 어린이 대공원이 아닐까 싶은데요. 서울대공원은 1984년이 되어서야 세워졌죠.
이곳은 어디일까요? 외국같지는 않고.
'자연사랑 하는 마음. 부모공경 하는 마음'이라는 문구가 이채롭습니다
그리고 애틋한 표지하나.
저는 뭐랄까 초등학교때에도 사대부들의 아취 가득한 산수화보다도 이런 풍경에 묘한 공감을 느꼈습니다. 고향의 원형이라 해야 할까, 내가 앞으로 살 삶의 이상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해서일까요.
노적가리. 빨간고추. 황소. 알곡 말리기. 엄마 손잡고 새참들고 들에 가는 모습. 남자들은 들판에 있고.
'효도하는 사람이면 나라에도 충성한다'. 예전에는 이 말이 가슴에 곧바로 다가왔는데, 요즘은 무슨뜻이지 갸웃거리게 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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