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김정태가 본 일본 유자와 스키장의 모습

카테고리 없음|2021. 8. 24. 02:13

끊임없이 일본의 등산사, 한국과 일본산악계의 접점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지만,

실제 일본에 대해서는 그리 관심이 없는 터다.

일본을 가보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별로 없다.

 

아래 이야기는 책으로 보는 작업의 한계와 또 그 안에서 누리는 재미에 관한 일화이다.

1943년 김정태 등 4명의 백령회원들은 니가타현 유자와로 스키연수를 떠난다.

그때 유자와의 풍경을 만났다.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첫머리.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 눈의 .....'의 터널이 우리에게 예사로운 터널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식민지 조선인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거라는 것.

 

 

일본에는 니가타현(新潟縣)에 유자와 온천이라는 곳이 있는가 보다.

이 지명을 알게 된 건 물론 김정태의 "등산50년"을 읽으면서이다.

백령회의 엄흥섭 회장이 김정태 박순만 등 4명의 조선인들에게 일본으로 스키연수를 보낸다.

그곳이 바로 '유자와' 스키, 온천동네이다.

 

'그때 백령회에서는 스키가 동계 등반과 훈련에 필요불가결하다고 하므로 해마다 합숙훈련을 하며 연마했는데,

43년 겨울에는 일본으로 가서 연수를 받기까지 했다. 주형렬, 박순만 방봉덕, 김정태 참가."라고 하고 있다.

비용문제는 엄흥섭 회장이 사비를 털어서 제공했다는 걸로 나와 있다. 

 

김정태는 일본에서 연수를 받았다고만 하고 만다.

그런데, 한국경제신문 1994년판 '[서재한담] 대관령스키장 발견한일 큰보람..백남홍 <스키인>'

라는 기사에서 백남홍은 이렇게 회고한다.

 

해방이듬해 4월에 백령회소속이었던 김정태씨가 주축이 되어서 대한스키
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일본스키연수를 받고 1급지도자자격증을 획득한 김정태씨와 김용구 주형렬
박순만씨등이 권영대 이사장과 함께 집행부를 구성, 서울대문리대강의실에서
창립총회를 가졌습니다.

 

물론 팩트체크를 더 해보아야 하겠지만, 연수라는 용어로 미루어 짐작하면

김정태 등은 1급 지도자 자격증을 획득한 걸로 추정된다.

김정태는 해방 이후 한국에서 산악스키와 경기스키를 헌신적으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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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검색해서 알게 된 일이지만,

일본의 북알프스를 가본 이라면 혹시라도 이 지명을 알 수 있겠다.

북알프스는 기후현, 도야마현, 나가노현 사이에 있으며 북쪽에는 니가타현에도 약간 걸쳐 있다. 

현재 도쿄에서 조에츠 신간센을 타고 가면 니가타현의 유자와 온천까지 75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한다.

 

유자와 온천을 다시 알게 된 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 앞쪽을 일본어로 읽으면서이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설국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눈의 고장에서 벌어지는 일인데,

이 눈의 고장이 바로 '유자와'라는 걸 알게 된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집필할 당시 유자와 온천의 모습이다.

 

1935년경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니,  1943년 김정태가 찾았을 때도 대체로 이랬을 것 같다.

물론 온천과 스키장이 따로 있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김정태는 이곳을 찾았을 거라 본다.

뭐랄까, 저 사진에서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전해져 오는 듯 하다.

 

그리고 越後湯沢・今、昔으로 구글에서 검색하면 옛 시절의 오자와 온천과 스키장 사진이 있다.

지금 찾지 못해서 그런데, 당시 김정태의 일본 스키 연수와 관련해서 건물앞에서 찍은 단체 사진 한장이 있다.

그곳에 어디인지도 잘하면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

 

 

그런데 이야기가 될려고 하니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 나오자....'의 '긴'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 터널은 장장 9702m로 10년 넘는 대공사로 당시 동양 최대의 터널이었다는 말씀.

그리고 조선인 노동자의 비중이 자그마치 10퍼센트였다는 말씀. "흩어진 역사, 잊혀진 이름들"으로 검색해 보시라.

설국의 첫머리를 번역할 때 각주로 이 내용을 보탠 번역서가 있을려나.

 

 

책의 재미라는 게 이런게 아닌가 싶다.

산악계 관련해서 '유자와'라는 용어를 눈여겨 보지 않았다면,

'설국'의 무대가 유자와라는 것 역시 무심히 흘려보냈을 것 아닐까.

이 참에 '설국'을 일한 대역본을 텍스트 삼아 전문을 한번 원문을 읽어 볼까나.

줄거리보다 심리묘사. 풍경묘사가 많다는데, 일본어 실력이 또한번 상승할 기회가 될 것도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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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이 무렵 국내 한인으로서 스키활동이 많았던 사람으로는 우리 백령회 멤버 외에
세브란스 의전 산악부의 이기섭, 정보라 이덕호씨 등이 있었다.

 

세브란스 의전 산악부의 이기섭이 누구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속초의 슈바이처' 이기섭 박사일까.

 

이기섭 박사는 지난 1934년 입학, 38년 3월 세브란스 의전을 졸업했다고 하고,

내 기억으로는 세브란스 산악부 활동은 하지 않은 걸로 판단한다.

부유한 집안의 이기섭은 대학시절 '겨울에는 스키열차를 타고 안변의 삼방스키장까지 가곤 했다고

'설악에 핀 솜다리꽃 인생, 이기섭'에서 적고 있다. 

다른 이기섭일수도 있는데, 아마 신문 연재글이다보니 이렇게 함께 적었을 거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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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듬해 대한스키협회가 창립된다. 한국산악회 자료에 의하면,

당시 발기인은 김정태, 주형렬, 방봉덕, 박순만, 이재수, 현기창, 이기만, 박상현, 유재선, 양두 철, 이덕운, 권영대, 채숙, 조병학, 김정호, 방현, 정보라, 정규흥, 김용구, 안종남, 이희 성, 고희성, 엄익환, 김일, 김재택, 조남영이었고 창설 총회에는 총 32명(일설에는 52명) 이 참석해서 곧 집행부를 선출했다고 한다.

 

정보라가 나온다.

그리고 방현 역시 세브란스 의전 산악부를 창설한 주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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