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원 선생님 1) 김근원의 호는 무엇일까요?
올해 꼭 사야 할 책에 첫손에 꼽혀야 할 책 중에 김근원의 '산의 기억'이 있습니다.
책의 출판에 감사를 드릴겸^^ 오늘은 그 분에 관한 소소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혹시 산악인 중에 '케른'이라는 호를 가지신 분이 누구인지 아시는지요?
그리고 김근원이 산에 매혹되게 된 계기와 그가 평생에 걸쳐 교유한 이와의 첫인연 이야기입니다.
출판사 중에 '케른'이 있습니다.
김정태의 책 "천지의 흰눈을 밟으며"와 김근원, 김상훈의 사진관련 책의 출판사로 기억하는데요.
케른이라는 게 무언지는 다들 알텐데, 이 출판사의 이름 '케른'은 그것과 또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1991년 김근원의 설악산 권금성 사진전 중 팜플렛의 서문입니다.
케른이 김근원 선생님의 호인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아마 모르는 분들 많으시겠죠^^
이번에 나온 책 "산의 기억"을 자세히 읽어보지는 않않는데, 그분의 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글은 그래서 잊혀진, 그 분을 기리며 기억해 두어도 좋은 소소한 산악계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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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몰입하게 된 첫 계기를 밝힌 이 구절은 아름답습니다.
산과 사진으로 일생을 살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바로 북한산이 나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그때가 1954년 가을, 세검정으로 해서 백운대를 올랐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그런데 그곳 백운대에서 실로 우연하게 만난 사람이 있었는데, 당시 학생이었던 유창서였습니다.
1954년 가을에 북한산과의 첫 만남이 계기였고,
당시 학생 유창서를 만나고 평생 아름다운 인연을 이어갑니다.
김근원은 1922년생으로 당시 32살이었고 유창서가 1937년생이니 당시 17살이었네요.
15살 차이가 납니다.
1991년 설악산 권금성 사진집을 낸 것도 유창서와의 인연일텐데, 이게 가능할까요?
이 경우 대체로 나이 많은 쪽의 인품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김근원의 '사진증언'에서 밝힌 내역은 이렇습니다.
1954년 백운대에서 유창서를 처음 만나고,
2년후 울릉도를 향하는 함정에서 느닷없이 반가운 재회를 하면서 급격하게 가까워졌다고 말이죠.
그로부터 에코클럽과 나이를 떠나 맺어진 인연은 너무 부럽습니다.
이 이야기는 김근원의 산의 기억 중 "에코 클럽과의 깊은 인연"을 읽어 보세요.
참고로 유튜브에서 이 책의 발간을 기념해서 만든 유튜브 동영상에 의하면,
'1954년 우연히 북한산 보현봉이 눈에 들어와 10월경 북한산에 오름'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우연히'라고 하고 있는 걸 보면 백운대가 아니라 보현봉이기 쉽겠습니다.
1954년 서울에서 별다른 정보없이 북한산 백운대를 당일 왕복하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요.
이인정, 최선웅 등 누상동파가 중학생 시절이었을까, 인왕산에서 저멀리 보이는 산을 선망해서 무작정 떠났습니다.
그때 그들이 저먼 아득한 산, 북한산이라고 생각했던 산이 바로 보현봉이었고,
보현봉에서 바라본 백운대와 인수봉은 그들에게 새로운 신천지가 되었습니다.
보현봉만 올라도 충분히 좋고, 북한산의 매력에 사로잡히기 쉽습니다.
1954년 헐벗은 북한산에서 청년 김근원이 본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무엇을 보았길래 평생 20만점이 넘는 산사진을 찍었을까요?
자제인 김상훈 교수는 겨우 4000점을 디지털해냈다고 하는데,
그 작업을 혼자 맡겨서는 될까요? 산악계의 사업이 되면 좋겠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시절 우리 산악계는 김근원이 본 만큼, 찍은 만큼의 산악계일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