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일본어 공부를 위해 읽는 책들입니다.
2015년 5월부터 독학으로 일본어 공부를 했으니 올해로 만 5년째이다. 지치거나 중도작파하지 않고 지금까지 해온 게 스스로 대견하다. 항상 재미 있었는데, 실력이 붙은 요즘이 제일 재미있다.
올 봄부터 일본어 산악서적 독해 모임을 가질 계획이다. 첫 책은 정해놓았다. 산과계곡사에서 펴낸 "사진으로 읽는 산의 명저 50선"이다. 일본산악 100년사를 수놓은 수많은 산서 중에 50권을 선정한 책인데, 가깝고도 먼 일본 산악계에 관심있는 분들에게 좋은 시발점이 되리라 본다. 어떤 식으로 읽어 갈지도 거의 정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이 모임이 잘될지 안될지 걱정이 된다. 어찌되었건 나에게 좋은 기회가 될거라 믿고 진행할 것이다. 가르치는게(?) 무엇을 배우는 첩경이니 말이다.
이참에 요즘 보고 있는 일본어 책 두권을 소개해 볼까 한다. 책내용도 내용이지만 일본어 전문가가 본 한국어의 언어 실상에 대해 되새김질 할 책도 있다. 이를테면 추대, 재가, 선포, 주재, 기습적, 전격적 등 우리에게 익숙한 용어가 과연 어떤 시대상을 반영하는지, 일본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등등 말이다.
시인이자 번역문학가인 오석륜 교수의 "일본어 번역 실무연습"(시사일본어사)이다. 초급 생활 회화와 일본어 시험관련한 책들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데, 중급과 고급 독해관련 책들은 드물다. 이 책은 그 와중에 반가운 책이다. 책의 서두에 '좋은 번역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팁으로 다섯가지를 들고 있다. 그 첫번째가 '사전을 적극적으로 찾는 습관을 가져라'인데 지당한 말씀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사전을 찾는 법을 아직 모른다. 두번쨰는 '일본어에만 있는 표현'을 알아야 하고, 세번째는 '한자와 한문에 대한 지식을 넓혀라'이다. 네번째와 다섯번째는 '한국어의 완성도를 높이고, 번역 그 자체를 즐겨라'로 이어진다.
책은 대학 교재처럼 보이고, 초중고급으로 나뉘어 있다. 시와 소설같은 문학작품은 까다로운 부분이 있지만, 수필이나 칼럼 같은 경우는 특별히 어려움을 못느끼겠다. 나뿐만 아니라 한자를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이라면 같은 심정일 것이다. 사실 한국인만큼 일본어를 배우기 쉬운 나라도 없다. 한자를 조금이라도 알면 일본어 독해는 그 두배로 쉬워진다.
지금 이글은 고급 칼럼으로 제목은 '한중일 공통으로 겪는 사회 문제와 경험의 공유 - 고령화를 중심으로'이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한중일이라고 하는데, 일본은 일중한(日中韓)이라고 표현한다는 걸 이번에 알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추가 해방후 한중일과 한일중이 겹쳐서 표현되다가 지금엔 한중일로 정착되었다)
시사일본어사에서 펴낸 "한일통번역노트". 저자 후쓰카이치 소는 NHK기자 출신으로 한국에 건너와 12년 넘게 방송계와 학계 등에서 일본어 관련 업무를 해오고 있다. 이 책은 한국인이 한국어를 일본어로 통번역했을 경우 '콩글리쉬'같은 표현을 교정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읽은 책들은 원문과 번역문이 함께 있어 원문을 차분히 읽는 대신 곧바로 번역문을 보려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이 책은 추천사말고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본어로 적혀있다. 기자이니만큼 의성어 의태어 등을 극히 삼가고 정교한 글이라 의외로 잘 읽힌다. 일본어는 우리나라 말처럼 의성어와 의태어 등 형용사와 부사가 유달리 발달되었고 이부분이 어렵다.
머리말의 첫 부분이다. 한자어가 반이고 일본어가 반인데 일본어를 몰라도 한자문화권이니만큼 대강의 내용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일본어 표현을 알면 뉘앙스와 일본어의 맛을 느끼게 된다. 놀랍게도 한문장 한문장이 모두 다 독해가 된다. 대강 추리하거나 넘겨짚는게 아니라.
이 책의 저자가 NHK기자라는 건 또다른 의미가 있다. 단순히 통번역의 문제에 그치는게 아니라, 외부의 '전문가'적 시각이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우리네 언어 습관을 발견할 수 있다. 그에 의하면 한국어에는 중세 왕조와 전제주의적 잔재가 적지않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추대, 재가, 선포, 주재 등등 중세 왕조사회에서나 가능한 용어가 아직도 정치권에 횡행한다는 것이다. 듣고보니 그러하다. 한국은 권위주의적 성향이 강한 나라다.
그리고 전격적이니 기습적이니 하는 군사용어도 일본어 공식적인 글에서는 볼 수 없다고 한다. 저자는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이런 용어는 분명히 일제의 잔재일 가능성이 높다. 해방 후 70년이 되어가는데 우리는 극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언어를 정교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부분도 발견한다. 저자가 일본어로 번역할 경우 구사해서는 안되는 용어 중 첫번째는 '출국'인데, 이점은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한번 번역해보자.
'1 대통령은 '출국'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출국'했다와 같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러나 출국은 범인이 이미 자국을 향해 출국했고 알려졌다' 등과 같이 공항의 출입국관리소의 출국수속을 연상하게 하는 단어이다.
한나라의 최고지도자인 대통령의 경우에는 '출국'하지 않고 어디어디를 향해 '출발'했다고 해야 한다. 돌아올 경우에도 '입국'이 아니라 귀국이다.
입국과 출국은 근대일본이 만든 조어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뉘앙스와 한국에 토착화된 뉘앙스와는 다르긴 하지만, 대통령의 경우 출국보다는 출발이 더 정확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정도 글들은 이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제까지는 연습게임이었고 일본어 등산서적 읽기라는 실전에 뛰어들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함께 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