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경석, 한국산악회 종신회원에서 제명으로...
옛날 잡지와 옛날 신문을 읽는 즐거움은 적지 않다. 피말리는 선거가 개포된 후에 그 전날 신문을 펼쳐보는 것은 마치 '하나님이 주사위를 돌리는 듯'한 느낌까지 갖게 된다.
등산잡지에서는 이와 다른 관점에서 즐겁다. 이제까지 몰랐던 일을 알게 되고, 알던 일을 다른 각도로 보게도 된다. 무엇보다도 '그때나 지금이나'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가 많다. 사람사는게 다 그렇다는 식으로 말이다.
1986년 6월호 월간 산은 조선일보사가 인수한지 만 4년되는 달에 나온 잡지이다. 그러나 의외로 평범하게 표지를 디자인하고 있다. 그 중에 눈에 확 띄는 기사가 있다.
손경석 선생의 '등산야화'식의 기고문에 저자 소개를 '전 한국산악회원'으로 적고 있다. 회장도 이사도 아니고 평범한 '회원'에 불구한데도 이를 현제가 아니라 전 한국산악회원이라고 소개하다니...
손경석은 한국산악회에 대한 기대와 자부심이 대단해서일텐데, 그는 이전에는 평범한 회원이 아니라, 1975년 안나푸르나1봉 정찰 원정대 대장도 역임하고, 많은 보직의 이사직을 역임한 이였다.
그런데도 '전'이라고 한 건 까닭이 있다.
산악문화사, 그러니까 사람과 산에서 펴낸 "등산반세기"는 저자가 자기의 관점으로 바라본 등산야화식의 많은 글들이 담겨 있다.
'자기의 식'이라고 하고 있지만, 많은 데에서 그 말고는 기록을 남긴 이가 없기에 어쩌면 세월이 흘러 당사자들이 모두 사라진 다음 후학들에겐 이 글이 야화가 아니라 정사가 될 것이다.
그 중에....
'UIAA서울총회와 제명파동 그리고 민주산악회'라는 제목의 글이 있다. 그 중에 그가 제명된 저간의 사정이 적혀 있다.
노산 이은상 선생이 급서한 후 구자경 LG(당시 럭키금성)회장이 권한대행으로 회장직을 잇는데에 대해 그는 반발하였다. 구자경은 전문등반은 커녕 하이킹도 하지 않는데, 단지 재정에 큰 도움이 된다하여 한국산악회 회장직에 추대하는 건 전통과 명문의 한국산악회의 자부심을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거다.
그 결과 1983년 11월 15일 이사회에서 제명결의가 났다고 그는 주장하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 책을 보면 좋겠다. 한편 한국산악회측의 입장은 어디에서 읽어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경석 선생은 한국산악회에 지독한 '애증'을 보여준다. 서구의 근대알피니즘에 대한 지향이 있길래 '등산애호가'들과 타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러니만치 영국산악회나 일본산악회처럼 그 폐쇄성을 고수하려한 보수적인 면모를 보인다. 물론 그의 출신과 학력 등에 대한 자부심과 편협함이 그 기저에 놓여 있을 것이다.
그는 스스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많은 글을 신문에 기고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북한산 케이블카 저지운동에 앞장서서 저지하는데에 큰 역할을 세웠다. 이후 1987년 한국산서회 창립 회장이 되면서 새로운 형태의 산악운동을 진행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