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중반, 우리가 오른 매혹의 명산들에는...
샘터사에서 1988년 초보자를 위한 등산코스 안내집으로 "매혹의 명산 35"를 펴냈습니다.
국회의원 선거 전날 신문을 선거 다음날 보는 재미가 있듯이,
30여년이 지난 지금 그때로부터 우리네 산이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보는 재미는 적지 않습니다.
바로 전에 올린 "1980년대 중반, 우리가 오른 매혹의 명산들 봉우리는..."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이곳은 일년에 400만이 오르는 북한산 백운대에서 만경대쪽으로 바라보고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앵글이 조금 다릅니다. 지금은 만경대와 저멀리 북한산 능선을 찍게 되는데요.
이 사진은 그 앞쪽이 포커스입니다. 백운대 뜀바위와 계단 이쪽저쪽 여유로운 등산객입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백운대에는 뜀바위에는 철다리와 왼쪽에 철난간이 있었군요.
등산박물관에서는 일제시대 이후 이 철다리의 흥망성쇠에 주목했습니다. (--> 여기를)
저자는 특이하게 '아름다운 자연적인 산'에 집중하는 대신에 이렇게 인조물에도 관심을 기울여,
이렇게 백운대를 백운대와 뜀바위위의 쇠다리' 사진을 올립니다.
*지도들은 클릭하면 확대됩니다.
도봉산 사진인데요. 곳곳에 처음 보는 지명들이 있습니다.
석굴암과 관음암 사이 케이블카터, 치마바위 그리고 달마바위.
치마바위는 지금의 마당바위를 말하는 것 같은데요. 케이블카터는 무슨 뜻일지 궁금합니다.
저시절 자운봉 옆에 봉우리를 삼각봉이라고 하는데요. 다락능선 정상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오른쪽 망월사 계곡 곳곳에 명소들 이름이 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도봉산역쪽이 아니라 망월사 계곡이 번성했음을 알게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꺼비 바위 맞은편에 외딴집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지금 공터를 말하는 것 같은데, 이곳 역시 식당이었을 것 같은데요...
새로 단장한 마니산 입구.
지금 보면 원시시대 풍경같습니다. 지금은 시장판같이 되어 있겠죠.
1980년대 중반의 백담사입니다. 일주문도 단청이 되지 않고 깨끗합니다.
설악산도 '설악산 전투'라는 이름의 격전지였지만, 백담사와 신흥사는 그리 큰 피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사찰이 작았지만 좌우배치가 중정을 이루었습니다.
저때까지만 해도 백담사가 오늘날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겁니다. 불과 몇년 뒤 천지개벽하게 됩니다.
백담사의 변천사도 주목해 보았습니다.
다른데에서는, 심지어 백담사 홈페이지에도 없는 오직^^ 다음카페 등산박물관에만 있습니다.
등산박물관에서 '백담사'를 검색하시면 됩니다.
봉정암, 봉정암만큼 드라마틱한 역사를 겪은 곳도 없을 것 같습니다.
이역시 등산박물관에 정리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거의 대찰과 마찬가지입니다. 화장실 분뇨처리는 과연 어떻게 할까 궁금합니다.
봉정암은 일제시대 말기 불령선인들이나 범죄인들이 숨어 살기도 했나 봅니다.
따라서 내설악쪽으로 순사들이 들락날락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설악쪽은 백담사 -오세암- 봉정암으로 길이 좋았다는 거죠. 화전민도 많았고요.
그러나 외설악쪽은 전혀 달랐습니다. 해방후 전문산악계가 주목하기 전까지는 구석기시대부터 고요, 신비가 계곡내에 가득했습니다.
설악산 비선대 위쪽에 있는 철제 등산로입니다. 1965년경 서울산악회의 이기섭박사가 주도하여 세워진 첫 작품의 흔적은 아예 사라졌습니다. 지금은 또 업그레이드 되어 있겠죠.
'잔도처럼 절벽에....'라고 적혀 있는데요. 잔도(棧道)라는 건 국어사전에 '험한 산의 낭더러지와 낭떠러지 사이에 다리를 놓듯이 하여 낸 길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저는 '잔도'라는 게 중국 장가계의 '귀곡잔도', '유리잔도'에서 처음 듣고 무슨 뜻인지 궁금했었는데, 우리나라에도 씌였군요.
설악산 3 지도는 흔들바위와 울산바위행 지도이군요.
외설악에서 제일 스릴있고 인기많은 코스죠.
울산바위 오르는 철계단 밑에 매점이 있다고 하는데, 가판 매점을 말하는 것 같은데요. 그거라면 사진이 있으니 언제 찾아서 올리겠습니다.
소백산 능선입니다. 등산객이 줄지어 걸으며 등산의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아마 철쭉 피는 시즌이 아닐까 싶은데요. 아마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걸 보고 놀랄 수도 있겠네요.
그 이유는 그 시절에는 '개발된' 산이 몇개 없어서이기도 합니다.
제주도 한라산 오르는 모습입니다.
개나리봇짐에 비닐 옷을 입고도 오를 정도로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나 봅니다.
분위기학상 단체 등산객입니다. 제주도 한라산도 80년대면 붐비었습니다.
금오산 약사암의 종각과 구름다리입니다.
지금 검색해보니, 구름다리가 상당히 '안전'해 보이도록 개수되어 있습니다.
저시절은 만성적인 '스릴' 결핍증이 있어서, 사람들은 저렇게 놀이동산시설이 설치된 산을 좋아했습니다. 대둔산이 제일 대표적인 예죠.
35명산 중에 축령산도 포함이 되어 있네요.
축령산 시비라고 하는데, 시비라는 게 초창기라 무덤가 비석하고 같은 모양입니다.
지금은 있을까요? 없다는 데 500원 겁니다.
문경새재 주흘산에 있는 샘입니다.
지우산악회에서 1986년10월에 만들었다는 지우샘입니다.
이 사진을 올린 건, 샘물 형태도 그 시절을 반영해서입니다.
지금은 저렇게 '불결'하게 타인이 입을 댄 표주박으로 다시 물을 떠도록 만든 샘터는 없습니다.
이런 것도 찍어서 올려 놓으니 이런 사실도 이렇게 찍어 놓으니 이런걸 알게 됩니다.
저자 윤석준님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재약산 표지입니다. 시천(?)청년회에서 세운 표지판이 재미있습니다.
저시절 청년회는 그래도 청년들이 회원들이었겠죠. 땀흘려 톱질하고 세웠을 모습이 상상됩니다.
저 논들도 지금은 논이 논이 아니겠죠.
덕유산 등산지도인데, 보시다시피, 구천동계곡의 33경이 중심이고, 백련사에서 두갈래 길은 단촐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좌측은 오수자굴로 가는 건데, 이름이 없네요. 백련사부터 별다른 내용이 없어도 등산하는데 별 문제 없었죠. 샛길이 없기 때문에 대충 길따라 올라가면 덕유산장으로 이르게 됩니다.
대둔산, 아직 가보지 않았는데, 관광지 스타일로는 제일 잘 개발된 산이 아닌가 싶습니다.
케이블카. 상당한 높이에 휴게소, 식당이 설치되어 있고, 언제 저곳에서 막걸리 먹고 싶습니다.
소백산 지도입니다. 희방폭포쪽이 메인 등산로였음을 알게 됩니다.
등산로가 단촐했던 시절이라, 사실 등산로 입구의 상가가 더 자세합니다.
희방휴게소 폭포여인숙 소백식당 산장여관 등등 지금 저 식당 여관 중에 얼마나 남아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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