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무운(武運), 무운장구(武運長久)를 모를까요?
최근 한 젊은 친구가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해서 해프닝이 생겼다.
4,50대 이전 세대들은 무운(武運)이라는 한자어를 안다고 끌끌 혀를 차지만 글쎄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들도 모르는 건 매한가지, 아니 더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사진은 6.25 전쟁 중에 만들어진 이른바 "무운장구 태극기"이다.
이뮤지엄에는 "깃발에 남겨진 내용을 통해 용사들의 의지와 기상을 엿볼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무운을 빈다.'
'무운장구를 빈다.'
정치권의 한 젊은 친구가 한자어를 병기하지 않고 그냥 '무운을 빕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기자가 무운(武運)을 두고서 무운(無運)으로 이해하고, 재치를 부렸다. 그 기자의 욕망을 어찌 모르겠나.
이 상황을 두고서 벌어지는 전반적인 논조는 요즘 친구들은 '한자'를 모른다인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이 사건의 진짜 쟁점은 그게 아니다.
한국사데이터베이스에서 무운(武運)으로 검색하면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의 것들만 등장한다.
생각해 보시라.
고등학교 시절 역사시간에 배우길, 조선 500년 내내 문관들이 설치는 무약(武弱)한 시대였다.
그러한즉 '무사의 운'을 운운하는 무운장구(武運長久)니 무운(武運)이라는 말이 횡행했겠는가.
조금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그런 일은 모름지기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에는 '무운(武運)'이라는 말이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선조가 국운(國運)이 걸린 상황에서도 이순신이건 신립이건 '무운을 비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말이 중국에서 나왔을까?
검색해니 물론 이 말은 억지로라도 노자의 천장지구니 등등 중국의 고사에서도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근대지식인들이 신조어를 만드는 방식 중에 하나가 중국의 고문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관광이니 유신이니 하는 말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 말도 그 예가 아닐까 추정한다.
구글에서 중국식 한자어 무운장구(武运长久)로 검색하면 보다시피 전신에 일장기와 사무라이가 등장한다.
오른쪽 상단에 황군무운장구라는 용어는 진충보국 등과 함께 태평양전쟁때 깃발과 어깨띠의 글씨였다.
조선 인민들도 아마 변절한 시인 주요한이 내뱉는 이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때 그들이 들은 일본말은, "부운죠뀨", '부운노 죠큐오 이노루(武運の長久を祈る)'가 되시겠다.
중국에는 무운장구라는 말이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별로 사용되지 않았을 걸로 보인다.
그런데 일본어 무운장구(武運長久)에도 이렇게 제국주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여러 정황을 보면 무운장구는 모르긴 몰라도 일본에서 건너온 말일 것이다.
젊은 친구가 '무운을 빕니다'라고 말했을 때, 반대쪽^^에서 이러한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알았다면 대응을 조금은 달리 했을 것이다.
알다시피 작년도인가 올해인가 뻘쭘하게 끝난(?) 해프닝이 있다.
경기도 교육청이 학교생활속 일제 잔재 청산 프로젝트라고 놀랍게도 상금을 걸고 진행한 게 있다.
차례, 훈화, 소풍, 수학여행, 경례 등이 학교 안에 존재하는 음습한 일제 용어이고 청산의 대상이란다.
이게 과연 한국어 언어체계에서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선거용 쇼에 불과할까.
어떤 근대용어가 과연 일제 '잔재'이고 '청산'할 프로젝트일까.
철학 권리 문화 복지 인권 평등 연대 자유 등등은 아름다운 지향점이다.
이 일제용어들은 청산할 잔재가 아니라 칭송할 대상일까?
어쨋든 그런 입장에 동조하는 이라면, 무운장구 뿐 아니라 국위선양조차도 사용해서는 안된다.
국위선양도 '국위선양 및 황군무운장구 기원제'라는 말에서 보듯, 일본제국주의 용어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한국인들은 이제는 국위선양이라는 이름으로 고산등반을 가지 말자^^
내 결론은 이렇다.
어려서 읽고 들어서 안다고, 무운(武運)이라는 단어를 모른다고 어린 친구들을 딱하게 볼 게 아니다.
무운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고, 어떤 정치적 함의를 띠고 있는지 무감각한, 딱한 우리들을 돌이켜 볼일이다.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자 이제 돌아와서, 일제식민지사에 관한 책을 조금 읽은 나도 '무운'에서 이런 냄새를 느낄 수 있다.
네티즌이나 나무위키에는 이런 내용이 담기지 않고 있다. 그들은 냄새를 못맡은 걸로 보인다.
그런데 말이다.
친일청산에 포커스를 갖고 있는 한국의 근대사학자들은 왜 이 해프닝에 대해 입을 닫고 있을까?
무운장구라는 제국주의 용어에 대해서 말이다.
심히 궁금하다.
이 글은 다듬어서 올해 '산서'에 자유기고글로 할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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