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자하강기에 관한 잡설

산에 가는 길|2008. 4. 17. 10:37

팔자하강기에 관한 잡설1.

팔자하강기는 억세게 팔자가 좋은 하강기일까?

아니면 이제 명예롭게 하강시킬 장비인가?

예전 어느 선비가 하늘 천(天)을 써놓고 하루종일 뚫어지게 보았더니 천지의 이치가 저절로 소소(昭昭)하게 드러났고(意自現), 물 수(水)라는 글자를  관조하자 물소리가 들리었다는 말이 허언인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내게도 그런 일이 닥치자 그 일이 사실임을 알겠다.미학적으로 아름답기가 세상에 비할바 없는 팔자하강기를 앞에 두고 내내 궁구(窮究)하기를 마치 닭이 알을 품듯이 하였더니 어느 날엔가 팔자하강기가 나에게 말을 건네기 시작했다.

아래 글은 그 이야기들의 일부를 풀어낸 것임을 밝혀둔다.

팔자하강기가 왜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다른지에 관한 아래 잡설을 읽으시면 서두에서와 같은 질문 – 요즘 주변에서 논의되는 질문을 약간 말바꾼-이 보다 재미있으리라 믿는다.

1.팔자하강기의 등장시기.

흔히 팔자하강기가 언제 처음 세상에 등장하였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대략적으로1965년 전후로 추정된다고 한다.(우리나라에 소개시기는 차후에 기술).팔자하강기는 황태자처럼 화려하게 무대로 등장한 게 아니라 당시에 많은 하강기들과 경쟁하여야 했고 문제점을 지적받았다. 하지만 기하학적으로 심플하면서 완벽한 모습은 많은 클라이머들의 관심과 상상력 그리고 창의력을 끌어내어 팔자좋게도 이후 하강기의 왕좌에 앉게 되었다.

2. 팔자하강기의 초기부터 제기된 문제점을 대략적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필요성 자체가 의문

2 무게와 크기.

3 안전벨트(카라비너)와 착탈을 해야 한다.

4 자일이 위로 올라가 거스히치 매듭으로 묶일 수 있다,

5 제동력이 약하다.

6 자일이 꼬인다

이런 결핍들을 해결해나가는 방식은 첫째 새로운 이용방식(method)을 고민하고 도입하거나 둘째, 팔자의 모양을 유지하는 선에서 장비의 변화(variation)을 주거나 셋째, 다른 관계장비의 발달에 힘입어 자연스레 해소되기도 한다.

당시의 생각하는 클라이머들( = 장비제작자)들은 이런 내재적인 결핍들을 그냥 주어진 것으로 체념하지 않고 곰곰히 생각하고 테스트하고 그래서  왕자인 팔자하강기로부터 간택받거나 또는 실패하거나 잊혀지기도 하였다.

오늘날 더욱더 심해지고 있는 인물위주의 등반사.또는 거대담론에서 벗어나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그들의 고민과 노력을 아래글과 같이 미시(micro)적으로 공감함으로써 그들에게 경외를 표한다.

1) 팔자하강기 자체의 필요성

새로운 장비에 대해 기존 산악회가 회의를 품을 때, 그 이유는 단순히 보수적 성격에 기인한다기보다도 장비에 의한 등반이 알피니즘(alpinism, 또는 by fair means)정신에 위배되지는 않는가 라는 필터링 작업이었지는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당시에는 아직도 듈퍼식 또는 카라비너 하강이 주류를 이루던 – ‘절대로 오른 손

놓아서는 안돼!!’ 정신-때라 하강에서 새로운 하강장비는 필요없는 잉여의 장비

일 수도 있다.

이는 하강기와 확보기-선등확보기 후등확보기- 구분없이 대충 하나로 때우고 또

하강방식.확보방식도 대충 하나로 때우고, 세월이 흘렀어도 여전히 “하강할 때 절대로 오른손을 놓아서는 안돼”라는 비장함을 자아내는 정신이 횡행하는 요즘

한국산악계를 염두에 두면 충분히 수긍이 가능하리라 본다.

2) 크기 무게의 문제점.

팔자하강기는 점차로 크기가 줄어드는 형태로 진보해 왔다.

크기, 무게가 줄어들었다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안전과 직결된다.

즉 손바닥에서 잘 놀아날 정도로 작은 장비가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작아졌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 기구에 대한 신뢰를 뜻한다.

또한, 이 무게가 가벼워짐으로 인해 여타 장비들의 휴대가 후순위로 밀리지 않게

되었다. 즉 하강안전을 도모함이 도리어 등반안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는 역설이

해결된 셈이다(당시 물먹은 자일, 철제 카라비너, 철제하켄의 무게를 생각해 보라.)<사진참조>

오늘날에도 이 흔적은 많이 남아있다. 장비카탈로그에서 lightweight(가볍다)라는 설명을 흔히 볼 수 있고, 팔자하강기의 이름중에 small. Mini, petit(모두 ‘작다’라는 의미)를 가진 것도 발견할 수 있다.

3) 안전벨트 또는 카라비너와 착탈을 해야한다.

당시 경쟁하고 있던 하강기들은 착탈할 필요가 없는 것들도 많았다.(삐에르 알렝,브레이크 바, 카라비너에 로프 칭칭감기 등등-반대로 이들은 의도하지 않을 때 자일이 하강기에서 빠져나가는 위험이 약점이다.)

하강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탈출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처럼 맑은날 따뜻한 날, 해지기전, 한피치하강을 하는 경우와 달리 알프스 본고장에서는 하강은

폭풍설.추위,부상,얼음,어두움 등등이 상수이다.

따라서 기껏 힘들게 가져올라온 팔자하강기를 곱은 손으로 열고닫고 하다가 떨어뜨리는면 과연 어떤 기분이 들까?.

팔자하강기는 이러한 결핍을 어떻게 대응을 했을까?

팔자하강기의 큰원의 뚜껑을 열거나(오픈된 팔자하강기) 또는 큰구멍에 빌레이 스트히트-흔히 돼지코라고 하는-처럼 슬링을 달 구멍을 만들었으나 이는 번잡함등으로 인해 대중화에 성공하지 못했다.

또 이용방식의 변화를 통해 적응할려고 했다. 요즘도 흔히 등반교재에 등장하는 방식이다.

즉 팔자하강기의 큰구멍에 카라비너를 달고있다가 비틀어서 자일을 낀다음 카라비너를 빼서,,,,,,, 하는 식-겨울 지나면 잊혀지는- 말이다.

한 문제의 해결을 위한 복잡한 방식은 도리어 안전에 저해를 할 수 있다. 단순함에 안전이 있다(In simplisty is safety)라는 경구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수봉에서도 대체로 한피치 하강을 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하강의 위험이 덜하여, 하강할 때 팔자하강기가 튜브하강기(?)보다 장점이 있음도 간과되는 듯 하다.

착탈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라는 문제제기는 아직까지 솔직히 말해 쉽게 해결하지 못한 부분이다. 새로운 진보된 방식-심플하고 카라비너와 착탈할 필요가 없는 진보된 방식-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다음에 기술하겠다.

4. 하강도중 자일이 위로 올라가 거스히치 매듭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관해서는 구조에 관한 (구조용로프-스테이틱로프) 어느 책에서도 지적되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예전에 뻣뻣하고 직경이 굵은 자일을 썼을 때는 이러한 문제점이 충분히 노출되었으리라 짐작된다.

하강하다가 어떤 경우에 자일이 걷혀 올라가 거스히치 매듭이 되어버려 오도가도 못하는 황당할 때가 있다.

이 어이없는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팔자하강기는 변신을 시도하였다.

팔자하강기의 큰원을 정원에서 타원형으로 만들거나 심지어 큰원에 뿔(horns)이나 귀(ears)로 불리는 촉수를 뻗음으로써 그 가능성을 줄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였다.

사실 이 문제점에 관해 과문한 까닭인지 모르지만 풍문으로라도 들은적이 없었고

오늘날 로프제조기술이 좋아짐에 따라 저절로 해결되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대부분의 팔자하강기가 타원형이라는 사실은 이 결핍에 대한 대응의 결과물이고, 동시에 팔자하강기의 길이를 줄여주는 부수적인 효과도 가져왔다.

5. 제동력이 약하다.

인수선인이 한국산악계의 모암이기도 하지만 수직고도 200미터여가 안되고 슬랩형바위라는 점은 많은 생각꺼리를 제공한다.

심지어 후등자 확보를 볼때도 팔자하강기로 간접확보를 보고, 나아가 어처구니없게 튜브형하강기로도 세컨드를 간접확보를 보는 상황을 옆에서 지켜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물들어 있는 필자로서는 쉽게 상상이 안되는 이야기이다.(여담이지만, 절찬리에 흥행중인 페츨 리브소나 블랙다이아몬드 atc-xp에서도 톱니가 달려있는 까닭을 염두에 두면 더더욱....)

외국의 어느 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듯이 확보기의 제동력은 팔자하강기 < 튜브하강기 < 빌레이 스티히트 순이다. 다이나믹 빌레이방법에 관해서는 논외로 친다고 하더라도 하강기와 확보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방식-마찰 또는 꺽임-이기에 서로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팔자하강기로는 확보시 제동력을 높이는 방법으로 빌레이스티히트 방식을 차용하려 했고 그결과 팔자하강기의 모양이 더욱더 다기해졌다.

요컨데 팔자하강기의 작은 구멍이 길쭉해졌다.

또하나의 방식은 평평한 팔자하강기를 기울임(bent)으로써 마찰역을 변화를 주는 방식도 등장했다.

6) 자일이 꼬인다.

자일이 꼬임에 관한 예는 73년 한국산악회 연감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국산S자일을 썼는데 꼬임이 너무 심해 심한 곤란을 느꼈다…. ”꼬임은 단순히 꼬임의 문제가 아니라 하강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방식으로는 하강할 때 틈틈히 자일을 털어주고 장비자체로는 페츨의 하강기처럼 팔자하강기에서 하강하는 부분을 직선으로 만들어 자일이 가운데로 쏠리는 현상을 막기도 하였다.

본질적으로 팔자하강기는 자일이 반듯하게 수직으로 통과하게 되는 튜브형 하강기에 비해 약점을 갖고 있다.

하지만 자일제조기술이 진보되고, 자일의 꼬임을 막기위해 이런저런 방식이 도입됨으로써 많이 개선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상 잡설이 너무 길어서 논지가 흐려졌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한번 요약을 해볼까 한다.

지난 삼십여년간 팔자하강기는 동종의 하강장비들, 그리고 확보장비와 경쟁하는 동안 많은 모양의 변화가 가져왔다.

다시말해, 필요성유무, 경량화, 착탈여부, 거스히치매듭의 우려, 제동력. 자일의 꼬임 등의 문제점이 노출될 때마다  그 모양을 스스로 적응(adaptability)해 왔다.

이는 마치 무미(無味)의 감자가 그 다양한 요리법을 요리사에게 맡겨둠으로써 전세계에 자기의 씨앗을 퍼뜨리는, 진화에 성공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처음에 제기한 질문 – 과연 팔자하강기는 억세게 팔자좋은 장비인가? 또는 명예롭게 하강시킬 장비인가?-라는 질문을 약간 바꾸어 다시 던져본다

<사진첨부>

이 하강기가 무엇처럼 보이는가? 하트(heart)모양으로 또는 어린아이가 양팔을 한껏벌여 머리위에서 손끝을 맞닫는 모습인가?

아니면... 필자처럼 가슴이 풍만하고 허리선이 늘씬한 미인으로 보이는가?

이 디자인 뒤에 감쳐져 있는 이야기들이 조금이라도 읽혀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며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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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호에서는(가능하다면^^)

ㅁ 한국에서의 팔자하강기 개발역사

ㅁ 착탈할 필요가 없고 후등자확보시 자동제동이 되는  새로운  팔자하강기- 비록 엔지니어가 아니더라도 팔자하강기의 과거에서 자연스레!! 추론되는-에 관해.

ㅁ 팔자하강기를 안전벨트 어느쪽에 달아야 하는지

ㅁ 팔자하강기시 제동방식이 어떻게 , 왜 그렇게 변해왔는지- 제동손(오른손)의 모양새가  어떻게 되는게 정상인지….등 팔자하강기의 세세한 점에 관해 쓰볼까 합니다.

끼워넣어야 할 이야기

1 개발업자의 고민이 제대로 공유되지 못했다.

2.하나의 결핍 해결이 절대선만이 아니다.

3.결핍은 그때그때 우선순위가달라진다.

4. 다른 장비의 발달과 결합되어.

5.보수적인 산악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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