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창간호 "금수강산"을 소개합니다.

산에 가는 길|2019. 11. 25. 19:23

있는 줄도 몰랐던 등산잡지 창간호 1972년 3월 1일 "금수강산"을 소장하게 되었습니다. 1970년대 그당시 산을 어떻게 보았는지 좋은 자료인데, 과문해서인지 그동안 이 잡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과연 재미있는 구절이 적지 않은데, 차근차근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창간호의 소개와 함께 몇몇 부분을 언급해 볼까 합니다.

 

 

 

"금수강산"은 한국국립공원협회에서 만든 기관지입니다. 이 단체는 당시 건설부 산하 사단법인이었습니다. 국립공원 설립 및 운영 그리고 환경보호라는 시대적 사명에 발맞추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만큼 당시 국무총리였던 김종필이 축사를 했습니다.

 

회원들은 대체로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한 명망가들입니다. 중앙 산악계 인사들은 거의 없습니다. 노산 이은상 선생(한국산악회 회장 역임)과 이숭녕 박사(대한산악연맹 회장 역임)이 눈에 띱니다.

 

저자 중 서정주 시인과 이규태 조선일보 기자와 함께 거문고 인간문화재인 성경린 선생이 눈에 띱니다. 일반인들은 그가 왜 여기에 동참할까 궁금하겠습니다. 그는 당시 음악가 중에 대표적인 등산애호가였고,  북한산과 도봉산을 예찬하며 규칙적으로 찾았습니다.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또다른 산악계 인사로는 우종수 선생입니다. 우종수 선생은 지리산이 우리나라 최초로 국립공원이 되는데에 말그대로 큰 힘이 된 구례의 등산가입니다.

 

 

중앙 산악계를 일끌어 온 수많은 인사들이 있어왔지만 사실상 그들을 조명하는 전기문이나 평전은 없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우종수 선생은 지역 산악계에서 정당하게 평가하는 책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행히 지리산 문화연구단에서 "지리산과 구례 연하반"이라고, 그가 이끌던 구례의 산악회인 연하반에 관한 글이 두껍게 나와 있고 생전에 함께 활동한 분들이 많습니다.

 

순천대학교 지리산 문화연구단에서는 꾸준히 설악산 관련해서 주목할만한 책들을 펴내고 있는데, 분명 우종수 선생에 대한 글도 준비하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금수강산"이 언제 어떻게 사라졌는지는 더이상 알 수 없습니다. 이후 좌측처럼 계간지 "국립공원"으로 제호를 바꾸고 이후 2000년 전후에는 다시 제호를 "국립공원문화"로 바뀐 걸 확인할 있습니다.

 

 

계간지인데 도봉산 선인봉이 아름다운 1994년 여름편이 통권 61호이니, 언제 처음 나왔는지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저자들이 대부분 실제 산악인이 아니라 학계 인사들이고 '환경'에 포인트를 맞춘 터라 저시절 산 모습이나 논점 등을 알 글들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립공원문화"는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졌고요. 내용과 논조가 위의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그래도 한권 한권 모은게 제법 됩니다. 당장 찾은게 이정도이니 아마 책장 곳곳에 더 있을거라 봅니다.

 

 

재미있는 것은 두 잡지 모두 자연과학자들이 중심으로, 인문학과 국립공원을 연결 시킨 글들은 그리 없습니다. "한국명산기"와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등으로 필명을 날린  동국대 김장호 교수가 산악계 인사로는 단연 눈에 띱니다.

 

 

그의 글 중 "한국명산기"의 글들이 양쪽 모두에 똑같이 실려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이면 산악계에도 필자들이 군웅할거를 했는데, 국립공원협회에서 미쳐 필자의 발굴에 신경을 못써서이겠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지리산 국립공원 특집 편에 노산 이은상의 "두류찬가"가 실려 있습니다. 언제 지리산을 오르고 언제 씌여진것인지 해제가 없어 아쉽습니다. 인터넷에 1938년 이은상 저 "천왕봉찬가"가 있는 걸 보면 이때일거라는 짐작이 듭니다.

 

 

 

 

한국국립공원협회는 지금은 환경부 산하로 옮기고 "한국자연공원협회"라고 개명을 했습니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면 상당한 규모의 단체로 보입니다.

 

 

 

역대 회장단을 보면 재미있는 걸 알게 됩니다. 초대 회장부터 13대 회장까지는 정부측 장관급 인사나 국립공원 인사로 이어져 왔습니다. 14대에 들어서서야 조규배 당시 서울특별시 산악연맹 회장이 맡았습니다.

 

자연공원협회는 아무래도 보존이 우선이다 보니, 산의 첨예한 이용 또는 전문등반을 지향하는 산악계와 입장이 민감하게 겹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설악산에는 케이블카 설치 찬반운동이 치열했죠. 그리고 북한산에도 있었는데 야영금지였나 하여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역대 회장의 면면을 보면 산악계 출신이라고 해서 조규배회장이 산악계의 입장을 옹호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게 역력하게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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