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 아담스가 떠오르는 대둔산 흑백사진 한장.

장비의 세계|2019. 11. 11. 16:24

 산사진작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안셀 아담스(Ansel Adams)라는 이름은 알겠다.

이른 달아래 차갑게 서 있는 하프돔의 거벽 사진 때문에 말이다.


1971년 대둔산을 찍은 사진을 만나면서 그동안 잊고 있던 그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어느 겨울 오후, 청명한 하늘 아래 이른 달이 요세미티의 하프돔 위로 떠올랐다.

처음에는 이 사진이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것도 몰랐다.

다만 암벽등반에 빠지면서 산보다 바위에 더 관심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고,

요세미티의 엘 캐피탄과 함께 거대한 벽의 대명사인 하프돔을 모를 순 없다.


그런데 구글에서 검색하는 여느 하프돔 사진과 달리, 이 사진이 묘하게 잔상이 남아 있다.

차가운 기운 때문에 하프돔을 등반하고자 하는 욕망을 좌절시키면서 동시에

적적하고 고요한 기운이 가득한 저 절벽에 있고 싶다는 희망을 품게 해주니 말이다.

그러다가 이 사진 '작가'가 안셀 아담스라는 걸 알게 된다.


한국에서 하프돔처럼 두루 원만하면서 위압적인 바위로는 북한산 인수봉이 첫손일 것이다.

안승일 사진작가의 "삼각산"이나 최근 임채욱 작가의 작품집 "인수봉"도 가까이 두곤 있지만,

아직 잘 모르겠다.


최근 1971년 11월 20일(목)에 찍은 대둔산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한국의 산에는 안셀 아담스가 아니라 한국의 사진작가가 더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게 어느 산일까?

미리 대둔산이라고 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장가계나 베트남의 계림가 떠올랐을 지도 모르겠다.

미국의 요세미티나 유럽 알프스의 침봉과 협곡이 만들어낸 걸작품이라고 짐작했을 수도 있다. 


지금 구글에서 대둔산 구름다리라고 검색하면 8만여건의 글들이 있다.

사진도 엄청나다.

그러나 이렇게 귀기()스러우면서도 적요()한 기운이 가득한 사진은 없다.


사진 앨범에서 떼어 내다보니 곳곳에 주름과 얼룩이 생겨났다.

그런 거친 가로의 선들이 하프돔과 달리 잘게잘게 세로로 침식된 바위들과 잘 어울린다.


오른쪽 상단의 파리똥같은 얼룩이 마치 안셀 아담스의 달과도 닮았다.

그런데 이 사진을 보면서 안셀 아담스를 조금은 잊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셀 아담스의 산도 아름답지만, 매끈한게 독일의 아리안족같은 느낌이 강하다.

멋있기는 하지만, 우리를 받아들이거나 정들기엔 부족한 것 말이다.

한국의 산은 그의 앵글을 따라해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좋은 사진을 위한 법칙은 없다. 단지 좋은 사진만이 존재할 뿐이다."

좋은 사진은 순간포착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산의 깊이는 한국의 산을 제일 많이 본 한국의 사진작가가 표현해 낼 수 있으리라 본다.



사진 뒷면에 메모가 있다.


"1970년 11월 20일(토요일)

대둔산의 금강 구름다리. 

이 전경 가을의 티없이 높은 가을 하늘과 옛날 옛날부터, 대전 계룡산이 운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대둔산이 남아(?) 땅에 널리 이름 떨치기 때문이다.

정말 계암으로 이루어진 대둔산의 멋.... 무어라 말로 표현을 못할 정도다.

멋있는 대둔산.


대둔산의 금강 구름다리 또는 구름다리는 1970년이 막 지나면서 만들어졌다.

관광사업을 위해서이다.

그때 대둔산은 국립공원은 커녕 도립공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감히 역사와 전통깊은 국립공원 계룡산을 끌고와서는, 

'옛날 대전 계룡산이 운다'라는 신화를 새롭게 만들어 냈다.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었다.


대둔산은 물론 바위와 계곡의 탐승미가 뛰어나지만, 지방의 작은 산이 일약 전국구가 되었다.

바로 구름다리 때문이었다.

그 시절 스릴을 즐길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다.

당시 표현으로 하자면 "200여척 높이에 금강문 근처의 큰 바위사이로 걸쳐 놓은 구름다리. 

현기증이 나고 오금이 저려서 마음이 약한 사람은 건너기가 힘들지만, '안전한 모험'을 즐기는 스릴 또한 버릴 수 없다"라고 하고 있다.


자연을 즐기니, 자연과의 합일이니, 관조이니, 자기와의 대화이니 하는 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산을 즐기는 자세이지만, 그때는 달랐다. 

구름다리 하나로, 구름다리 사진 한장으로 대둔산은 누구나 한번쯤 올라야 할, 블랙홀이 되었다.



그 시절 이 앵글은 대둔산 구름다리를 찍는 대표적인 장소 중의 하나였다.

이 사진을 찍은 이는 사진작가가 아니라 여느 평범한 등산객으로 보인다.

그러나 세월이 덧보태져서일까.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



안셀 아담스를 떠올렸지만, 안셀 아담스를 잊게 만드는 사진 한장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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