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의자 X의 헌신"에서 보이는 등산 이야기

장비의 세계|2019. 11. 13. 17:14

 

일본 영화는 왠지 관심이 가지 않았다.

 

DJ정권때 추진한 일본 수입영화의  1호, '러브 레터'도 요 몇년사이 일본어 공부삼아 처음 보았다.영화에는 유명한 일본 산노래 '山男の歌'가 있는 것도 20여년전 개봉 때 보았다면 몰랐을 것이다.

 

'산남가 山男の歌'는 '산사나이'로 번역되어 70년대 전후 한국산악계에 널리 애창곡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박정희 정권이 추진한 왜색 청산 운동의 유탄을 맞았다. 왜색가요라는게 밝혀저서이다.

 

최근 '용의자 X의 헌신'이라는 영화를 일본어 공부삼아 보았다.

흔히 일본어 공부용 영화라고 추천하는 나긋나긋한 일본 영화들이 있다. 좀 더 고급일본어가 들어간 영화를 보려 선택했는데, 영화에는 고맙게도 등산 장면이 있고 다소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여 올려본다.

 

 

베스트 셀러 제조기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이다.

3부작으로 된 소설은 자그마치 500만부가 팔렸고, TV드라마에서는 역시 21%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올렸다고 한다. 그 이후 2008년 영화로 만들어졌고,  국내에서도 류승범 주연으로 같은 영화가 만들어졌다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원작에는 없는 '설산 등산' 장면을 어떻게 찍었는지 이야기가 DVD에 들어 있어 등산영화 또는 산악영화를 어떻게 만드는지도 조금 알게 된다.

 

 

천재적인 수학자인 주인공이 하는 말씀이 이렇다.

"등산은 수학과 비슷해"

 

이 주장이 처음엔 갸웃거렸다.

수많은 예외와 이변으로 가득한 등산이 어떻게 명쾌한 답을 낳는 수학과 같을까 말이다.

그런데 이때의 수학을 초급수학이 아니라 고등수학이라고 본다면 그럴 듯 하다.

등산의 수많은 예외라는 것도 결국 고등수학에서의 수많은 변수 X를 다루는 것과 다름 없기 때문이겠다.

 

 

현장은 북알프스의 중심인 나가노현의 하쿠바(白馬)이다.

하쿠바는 일본에서 근대 등산의 발상지이다.

3월인데도 온산에는 눈이 가득하다. 스키장에는 한사람도 없다.

 

까닭은 이렇다.

일본에서 스키와 스노우보드는 사양산업이라는 거다.

컴퓨터 게임에 빠진 젊은 친구들이 더이상 스키와 스노보드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눈의 고장인 북알프스의 수많은 스키장 중 40퍼센트 이상이 폐장 또는 방치되고 있다고 읽었다.

 

우리나라도 곧 이 현상이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노란색 스패츠를 신은 이가 두명인데 왼쪽이 주인공이고, 오른쪽이 레슨 중인 클라이머이다.

설상 보행기술을 알려주고 있다.

 

 

인공 눈보라를 이렇게 연출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1번은 눈을 날리기 위해 준비하는 스탭이고,

2번은 운무 또는 개스(gas)를 연출하기 위한 드라이아이스이다.

 

실제 장면은 그럴 듯하다.

 

 

남자 주인공 2명 중의 한명인데, 3월인데도 저만치 눈이 가득한 백마악 설산이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산이 하나만 있다면 고산원정등반력을 배양하는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나.

 

 

백마악의 정상 부분을 찍고 있는데, 여기서도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다.

높이가 겨우 1,676m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4번째 높은 덕유산 향적봉 높이에 불과하다.

 

저만치 돌탑이 있다.

 

 

고개마루에 돌을 던져 얼기설기 만든 건 우리나라 어디에건 있었다.

그러나 산꼭대기에 돌탑을 쌓는 문화는 없던 걸로 보인다.

일제 시대때부터, 그것도 유럽의 근대알피니즘의 한 문화로서 시작된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일본의 산에는 이렇게 돌탑이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런데 이게 세트인지 실물인지 모르겠는데, 우리보다 돌탑이 정교하지 않다.

얼기설기 쌓고, 심지어 시멘트로 붙여놓은 것 같기도 하다. 실제가 궁금하다.

 

 

두 남자 주인공의 등산의류에 관심이 간다.

좌측은 이탈리아의 몬츄라같고 오른쪽은 노스페이스이다. 배낭은 카리모아를 메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등산의류는 알다시피 몽벨인데, 협찬을 하지 않은 걸로 보인다.

 

 

등산 장면을 찍는데 필요한 스탭이 이정도인가 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석훈 감독, 황정민 주연의 상업등반영화로 '히말라야' 가 있다.

DVD를 빌려서 제작현장에 얼마나 많은 스탭이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두 주인공 중 범죄인을 도와주는 천재 수학자인데, 오늘 이장면을 끝으로 더이상 촬영이 없다고 해서 받은 선물인데 사케이다.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아 아쉬운데, 일본의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케중에 핫카이산(八海山)이 있다. 세계 최초로 알프스의 3대북벽을 동계 초등한 하세가와 츠네오는 일본에서 국민적 영웅이기도 하다. 그는 수통에 술을 담고 오르기도 하는 등 기인의 풍모를 가졌는데, 생전에 그가 좋아한 사케이기도 하다. 많은 사케 매니아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걸로 안다.

 

"두근두근 혼자가는 등산여행 - 여자를 위한 등산입문서"(스즈키 미키)가 그린 일본의 산장에서도 이 술 핫카이산을 본 적이 있다. 일본의 산장에서는 심지어 생맥주까지 판다. 

 

 

 

 

일본의 산은 우리보다 더 높고 산장은 더 많다. 우리보다 눈도 많고 기후도 변화무쌍한 일본의 높의 산의 산장들은 맛있는 술과 그지방 특유의 음식을 제공한다.

 

한국의 산은 일본의 산보다 낮고 훨씬 안전하다. 그런데도 겨우 '대피소'의 역할에 그친다. '산장에서의 하룻밤'이라는 기대 또는 낭만적인 상상을 하는 이 아무도 없다. 그놈의 술도 못마시게 한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아무튼 한국의 산장문화라는 게 없다. '산장문화'라는 말 자체에 낯설아 하는 이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어쩌면 무엇을 두고서 '그럴듯한' 등산문화라고 말할 수 있는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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