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육거리에 대한 단상.
진주를 여행하는 이들은 진주성과 촉석루를 반나절 돌아다니면 진주를 가보았다 할 거다.
그들은 절대 모르고 진주사람들만 아는 고유명사가 있으니 그게 바로 '육거리'이다.
고등학교 다닐때 듣자하니 좀 으시으시하고 무시무시한 동네인 듯 했다.
학교를 좁다고 여기는 학생들만 돌아다닐 수 있는 곳 말이다.
나야 세상에 별로 호기심도 없고, 학교가 넓다고 생각한지라 육거리를 가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대학생이 된 후 진주역에 내려 육거리를 지나칠 일이 있었다.
생김새가 정말로 육(6)거리같이 생겼네 하고서는 지금까지 다시 떠올려 본 적이 없다.
얼마 전 육거리 아줌마를 만났다.
길을 걷다가 육거리 아줌마 명함을 받았다.
오거리 아줌마였다면 가리봉 오거리인줄 알고 그냥 지나쳤을텐데 말이다.
고등학교 3년만 진주에 머물렀던지라 사실 육거리에 대해 하나의 추억도 없다.
그래도 육거리는 진주 육거리라 순식간에 진주에서 학교 다니던 시절이 떠오른다.
사람이 좁은 세상에 살다보면 보통명사를 고유명사로 알게 된다.
진주에서 고등학교 다닐 무렵 진주성 안에 있는 '서장대'가 서쪽에 있어서라는 건 상상도 못했다.
안내판을 읽어보지도 않았고, 그냥 '서'가 서쪽 서(西)가 아니라 상서로울 서(瑞)로만 여겼다.
서울로 올라와 북한산성과 남한산성에서 동장대라는 걸 알기 전까지 말이다.
육거리도 진주 육거리로만 알고 있다. 혹시라도 싶어 이 참에 육거리를 검색해 보았다.
까마귀도 동네 까마귀가 좋다더니, 네이버에 육거리로 검색하니 경남 진주시 망경로에 있는 육거리 곰탕이 전국 1번이다.
전국에 육거리라는 이름이 제법 있어 몇군데 검색해보니 포항, 대구, 영주 그리고 청주시의 육거리가 육거리답다. 그래도 고향인 진주 육거리의 생김새가 제일 그럴싸하게 생겼다.
육거리 중 메인 도로는 내 기억에 왕복 2차선이었던 것 같다.
따라서 6개가 도로인 것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골목길에 가깝다. 이게 딱 좋다.
대구나 포항처럼 너무 넓으면 길건너 친구를 어떻게 불러 함께 할 수 있을까.
진주의 핵심인 남강이 휘돌아 나가는데, 그 복쪽에 진주성과 촉석루 그리고 진주박물관이 있다.
지리산을 등산하고 내려오거나 할 경우에도, 이정도 돌아보고 동방관광호텔 옆의 버스 터미널에서 버스타고 떠나면 될 것이다.
외지인들이야 그래서 육거리를 갈 일이 하나도 없다. 관광 명소도 없고, 짐작컨대 맛집도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예전같으면야 진주역 옆이니 산책삼아 지나칠 수 있겠다만, 무시무시한 '육거리의 전설'을 알지 못한 다음에야 아무런 상념도 있기 어려우니 말이다.
진주에도 중심가가 있어 서울과 별반 차이없이 휘황찬란하다고 들었다.
언젠가 진주에 갈 일이 있으면, 그쪽 거리나 인사동이나 진주성에 갈일이 무어 있을까.
다만 이곳 육거리에서 빙빙돌며 육거리 곰탕에서 저녁먹고, 육거리 호프에서 맥주 마시고, 육거리 노래방이 있으면 노래 부르고 육거리 여관에서 하룻밤 자고 싶다.
육거리의 전설들이 모두 늙고 사라진 그곳에서 눈치 안살피고, 겁 안먹고 돌아다니며 말이다.
1971년 김상진이 부른 '고향아줌마'가 있다.
"술잔을 들다말고 우는 사람아. 두고온 님 생각에 눈물 뿌리며 망향가 불러주는 고향 아줌마.
동동주 술타령에 밤이 섧구나"로 시작하는 트로트 말이다.
그러고보면 트로트 중에 육거리 아줌마라는 노래도 있으면 좋겠다.
서울 어느 노래방의 옆방에서 '육거리 아줌마' 노래가 나오면 진주 사람인줄 알겠다.
외지인들도 진주에 오면 누구나 들를테니 육거리가 명소가 되겠지.
이 참에 태진아나 현철하고 연결해서 노래 취입시키고, 육거리 땅좀 사 놓을까나...
오늘 아침 첫추위에 종종걸음을 치다가 다시 육거리 아줌마 명함을 '받았다'가 아니고 주었다.
전화번호가 바뀌었다.
육거리 아줌마에게 무슨 일이 있어서일까.....
육거리에 추억이 있는 이들은 더 궁금해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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