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수덕사를 수선하며...

등산의 재구성|2020. 1. 10. 01:47

제일 의외다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예산 수덕사입니다. 지금은 어떨까 싶은데, 그시절 수덕사는 상당히 인기 높았습니다. 근대불교의 큰 인물인 만공 큰스님과 '청춘을 불사르고'의 근대 여성 선구자인 일엽스님의 힘이 컸다고 봅니다.

 

수덕사 관광기념 사진첩은 그래서 60년대 초반에도 제작되었습니다. 지리산 화엄사도 아직 그시절까지 올라가는 사진첩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시절 사진첩을 몇년 전 소장했습니다. 당시 사찰을 표현하는데 무슨까닭인지 일주문을 제일 앞세웠습니다.  특히 해인사는 팔만대장경이 아니라 일주문만 있어도 사람들은 해인사인줄 알았습니다.

 

구입할 때부터 보시다시피 표지도 엉망이었고, 표지가 떨어져 있습니다. 몇장은 습기먹어 바스락거리고, 물을 어떻게 먹었는지 회색의 곰팡이도 페이지마다 마치 분처럼 곱게(?) 피어 있더군요.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내처 비닐에 넣어 구석에 처박아 두었습니다. 몇년만에 우연히 눈에 띠어 꺼냈다가 이번에도 다시 넣자니 뭐해서 수선을 했습니다.

 

곰팡이는 꺼려하는데다, 피곤이 몰려와 얼기설기 막 한 까닭에 끝내고 나니 미안한 마음이 적지 않게 드네요. 곰팡이를 제거하고 그나마 페이지를 넘길 수 있다는 점에 위안을 합니다.

 

 

당장 찾으니 딱풀이 말라붙어 물에 불려서 살살 발라서 표지를 붙였습니다. 귀한 자료인데 대접을 제대로 못해 미안해. 그래도 나름 유물보존처리를 했으니 더이상 곰팡이와 습기에 눅눅해지지 않을테니 마음을 풀길 바래.

 

이 참에 속지에 있는 1960년대 수덕사 사진들, 그러니까 너가 품고 있는 1960년대 우리네 정조, 우리네 여행문화를 소개해 줄께. 그런다음 깨끗한 박스 - 정관장 류의 홍삼제품 박스가 제일 좋음 - 에 담아서 다음을 기약할께. 그때 화려하게 부활하길 바랄께.

 

 

관광기념사진첩은 그 처음부터 명소와 가이드북을 겸한 터라 첫페이지는 개념도가 들어가 있습니다. 1970년대 넘어서면 제법 화려하게 표현하는 데, 때가 때이니만큼 선을 긋고 명소를 표기하는데에 그칩니다.

 

수덕사는 보시다시피 덕산온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는 온천문화가 여행의 한 축이었던 시절입니다. 그로부터 당시 처량한 처지의 윤봉길의사댁으로부터 육괴정으로 이어집니다. 수덕사에서 오른쪽에 있는 소림초당은 만공 큰스님이 주석하던 곳이죠.

 

여기서 잠간 지금 우리네 수덕사 포인트가 빠져 있습니다. 수덕사 일주문 지나면 대웅전 가기 전에 그 유명한 수덕여관이 이른바 '인문'학적 여행의 필수 코스죠.  고암 이응노선생, 화가 나혜석 등이 한때 머물던 곳 말이죠. 저는 가보지 못해 어디쯤에 있는지 모르겠는데, 저시절에는 우리 관심범위 안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이런게 옛 지도와 옛책을 보는 즐거움입니다.

 

 

여기서 잠간,  요즘 별 높지도 않는 산에조차 자세하고 곳곳에 표지판을 지나치게 세워놓는 세태에 생각이 미칩니다. 그럴수록 산은 낮고 볼품없어지고 유현(幽玄)해야 할 계곡은 너무 드러나 깊은 맛이 사라지게 됩니다.

 

외국의 지하철에는 '손을 잡아라', '뛰지 마라' '우측통행해라' 등등의 방송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건 당연한 시민윤리이고 '시민'들에겐 그렇게 시시콜콜히 잔소리를 하는 법이 아니라고 하죠. 산에서도 너무 자상해서는 안됩니다.

 

 

어랏. 그러고보니 기껏 60년 되었는데, 마치 2,3천년된 파피루스 종이같네.

일부러 만들려고 해도 만들기 어려운데, 요즘 유행하는 노래처럼 '버릴까말까버릴까말까' 하다가 버리지 않길 잘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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